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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TO ONE #4
오늘날 많은 이들이 사이버 공간으로의 이주를 마쳤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IT 장치 속에서 보냅니다. 음식을 주문할 때도 쇼핑할 때도 여가를 즐길 때도 항상 따라다닙니다. 최소한 음악이라도 하나 틀어야 하니까요. IT는 과거 작은 변화로 시작하였지만 마치 피보나치처럼 불어나면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모든 곳에 AI가 깃드는 것은 물론, 기억이나 의식을 드라이브에 저장하고 불러오는 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나아가 세계
저자
장용하 021스쿼드
출판
부크크(Bookk)
출판일
2024.11.15

 

거대한 프로젝트의 문을 열 때마다 어딘가에선 ‘완벽한 코드’를 추구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기능 구현부터 구조 설계, 디자인 패턴에 이르기까지 빈틈없는 결과물을 만들겠다는 열망이다. 하지만 출시가 무한정 지연되고 예산이 바닥나기 직전까지 코드 품질만 붙들고 있는 모습은 위험하다. 빠르게 움직이는 시장에서 누군가는 이미 비슷한 아이디어를 MVP로 내놓고 사용자 의견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완벽을 향해 내달리던 이들은 자칫 아무도 쓰지 않는 ‘멋진 설계도’만 남길 수 있다.


‘완벽함’이란 환상에 가깝다.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변화하는 실제 환경 속에서 완벽한 코드는 순간의 착각에 불과하다. 로켓을 쏘아 올린 뒤에야 알게 되는 우주 환경처럼, 애플리케이션 역시 배포가 이뤄진 뒤에야 현실적인 문제들이 드러난다. 그래서 지연 없는 실험과 지속적인 개선이 언제나 강조된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가 초반부터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면 필연적으로 ‘버그 없음’이라는 허상을 좇게 된다. 그런데 한번에 모든 버그를 몰아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완벽을 주장하는 순간 에너지는 대부분 테스트 범위를 넓히는 데 쓰이고, 정작 사용자 경험 개선이나 시장 반응을 살피는 기회가 사라진다. 게다가 기다리던 완벽의 순간에조차 새로운 문제나 요구 사항이 발생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 모든 과정을 되짚어 보면, 탁상공론에 매몰된 ‘이상적 코드’보다 일단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이 훨씬 많은 것을 보여 준다.


속도의 가치와 MVP 전략

현실의 여러 비즈니스 사례가 ‘빠른 배포’의 가치를 증명한다. 구글은 지메일을 무려 5년 넘게 베타 상태로 운영했고, 에어비앤비는 작은 사이트로 시작해 여행과 숙박 업계를 재편하는 거대한 서비스로 확장했다. 핵심은 ‘구동 가능한 상태’로 시장에 내놓고, 가장 중요한 기능을 실험하며 사용자의 반응을 직접 받았다는 점에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MVP(Minimum Viable Product)다. 처음부터 완벽을 노리면 모든 기능을 한꺼번에 구현하려 하다가 오히려 지쳐버린다. 하지만 MVP 전략은 제한된 자원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다. ‘가장 중요한 기능을 가장 빠르게 배포하고, 사용자 의견을 발 빠르게 수용’하는 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주요 기능만 빠르게 동작시켜 보면 예상치 못한 사용자 반응과 시장 흐름이 단숨에 드러난다.


특히 MVP는 극단적 예산 소모를 막는 방어 기제로도 작동한다. 자금이 풍부하지 않은 스타트업이라면, 모든 기능을 완벽히 준비해놓고 출시하기보다 핵심만 담은 제품으로 빠르게 진출해야 한다. 초반부터 모든 버그를 없애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사용자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검증하는 편이 낫다. MVP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규모를 확장하면 된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MVP가 이상적인 전략은 아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 시스템이나 우주 항공 분야처럼 오류가 치명적일 수 있는 영역에선 MVP로 ‘대충 출시’한다는 개념이 성립하기 어려운 편이다. 그렇다 해도 한 번의 완벽한 배포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사전에 충분한 시뮬레이션과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점진적 검증을 병행해 속도와 안전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 부채라는 그림자

너무 빠른 배포는 ‘기술 부채(Technical Debt)’를 남긴다. 이 부채의 주된 원인은 ‘일단 굴러가게 만든 뒤에 나중에 정리하자’는 태도다. 초기에는 버그를 대충 땜질하고, 구조를 적당히 덧대서 빠른 시일 내에 작동시키기에 집중한다. 짧은 시점에는 효율적일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누적된 미완성, 누더기 코드가 거대한 골칫덩어리가 된다는 점이다.


기술 부채가 심해지면 프로젝트의 성장 잠재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새로운 기능 하나 추가할 때마다 기존 코드 전반의 의존성을 손봐야 하고, 버그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지기 시작한다. 한 번에 많은 고객을 수용하기 위해 인프라를 확장하려고 해도, 코드 구조가 이를 허용하지 않아 문제가 되곤 한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선 꾸준한 리팩토링과 자동화된 테스트가 필수다. 단순히 ‘코드가 돌아간다’고 안심하기보다, 주기적인 점검을 통해 불필요한 복잡성을 제거해야 한다. 프로젝트 초기부터 테스팅 문화가 자리 잡으면, 빠른 배포와 품질 관리를 동시에 지향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기술 부채 자체를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렵다. 다만 부채가 쌓일 때마다 조금씩 갚아 나가는 태도가 중요하다. MVP 출시 후 일정 시간을 투자해 코드 구조를 다듬고, 급하게 만든 기능들을 안정화하는 단계를 거치는 식이다. 필요하다면 애자일(Agile)이나 스크럼(Scrum)처럼 짧은 반복 주기로 계획과 실행, 검토, 회고를 진행해 점진적으로 품질을 높일 수 있다.


사용자 피드백이 만드는 진정한 진화

개발자는 때때로 완벽한 설계를 꿈꾼다. 내부 구조가 아름답고 테스트가 모든 케이스를 커버하는 상태를 이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실제 서비스의 가치는 사용자 경험이 결정한다. 현란한 아키텍처가 존재해도 사용자가 기능을 쓰지 않거나, 성능이 열악하다고 느낀다면 그 서비스는 외면당한다.


결국 성장의 단계는 사용자의 피드백으로부터 시작한다. 기능이 불편하다는 불만이 접수되면 왜 불편해했는지 탐색하고 개선점을 찾는 과정이 뒤따른다. 이 과정을 통해 코드 구조가 좀 뒤죽박죽이어도, 우선순위가 높은 영역부터 집중적으로 다듬으며 변화를 이어간다. 그 결과 전체적인 사용자 만족도가 점진적으로 상승한다.


특히 급변하는 시장 흐름에선 조금 불안정하더라도 빠르게 피드백을 받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이미 완벽하다고 판단해 오랜 시간 아껴둔 코드를 내놓았는데, 막상 사용자들은 엉뚱한 부분을 불편해하거나 기능 자체를 원치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때는 이미 막대한 자원이 투입된 상태라 적절히 대응하기가 더 어렵다.


그래서 ‘완벽한 코드’보다 ‘빠르게 작동하는 코드’가 더 빛을 발한다. 물론 모든 프로젝트가 무작정 속도만 앞세울 순 없다. 중요 기능과 보안, 안전성은 적정 수준 이상으로 지켜야 하며, 치명적 문제로 이어질 만한 결함이 방치되면 심각한 신뢰도 하락이 찾아온다. 그럼에도 시대적 흐름은 ‘일단 작동시키고 개선하는 쪽'이다.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정해야 품질과 사용자 만족을 함께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개발 과정에서는 빠른 배포와 품질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적절한 MVP 전략을 통해 핵심 가치를 앞세우고, 기술 부채를 최소화하는 리팩토링 문화를 구축하며, 사용자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리듬이 합쳐져야 한다. 무조건 완벽함을 추구하며 출시 시점을 놓치는 일보다, 어느 정도 불완전함을 감수하더라도 현실 세계에서 검증하는 쪽이 훨씬 매력적이다.

 

사람들은 화려한 구호보다는 지금 당장 해결되는 작은 기능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다. 완벽을 소리 높여 외치는 대신, 살아 숨 쉬는 시장 속에서 ‘지금 사용자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방향도 충분히 고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