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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생 '쓸모'라는 단어의 지배를 받았다. "넌 커서 뭐가 될래?"라는 질문은 "넌 어떤 '쓸모'를 가질래?"라는 질문의 다른 말이었다. 존재의 가치는 언제나 유용성으로 증명되었다. 근육의 힘이 유일한 가치였던 시대가 있었고, 그다음은 지성의 힘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시대가 왔다. 우리는 근육에서 두뇌로 피신하며 스스로가 문명의 정점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 그 마지막 피난처가 불타고 있다.

 

AGI(범용 인공지능)의 등장은 또 하나의 산업혁명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유용성'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사망 선고다. 기계가 우리의 육체노동을 대신했을 때, 우리는 '생각'이라는 고유한 영역이 있었기에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기계가 우리보다 더 깊고,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생각'한다. 이 사건은 인류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존재론적 해고 통보와 같다.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거대한 질문 앞에서 우리는 '쓸모'라는 이름의 용의자를 하나씩 심문대에 올려야 한다.

 

첫 번째 용의선상: 지능의 종말

지난 수십 년간 '지식 노동자'는 문명의 핵심 동력이었다. 우리는 복잡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창의적인 전략을 수립하며, 정교한 코드를 설계하는 '지능'을 팔아 부와 지위를 얻었다. 우리의 두뇌는 가장 비싼 자산이었다.

 

이 자산은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었다. AGI는 우리의 지능을 '돕는' 도구가 아니다. AGI는 우리의 지능을 '대체'하는 존재다. 그것은 인간 최고 전문가의 지식을 1초 만에 학습하고, 인간이 평생 걸려도 보지 못할 패턴을 찾아내며, 인간의 모든 논리적 오류를 배제한 최적의 결론을 도출한다.

 

월스트리트의 최고 분석가도, 실리콘밸리의 천재 프로그래머도, 노련한 외과 의사도 AGI 앞에서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공예 장인에 불과하다. '생각'이라는 행위 자체가 이미 우리 손을 떠났다. 지능의 경쟁에서 인간은 완벽하게 패배했다.

 

한때 우리는 '창의력'은 다를 것이라 믿었다. 기계가 논리를 가질 순 있어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예술가의 영감은 가질 수 없다고. 하지만 AGI는 베토벤의 스타일로 11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렘브란트의 화풍으로 21세기 서울의 풍경을 그린다. 그것은 '창조'가 아니라 '데이터의 조합'일 뿐이라고 애써 폄하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정했다. 대중은 AGI가 만든 완벽한 음악과 그림에 열광했다. '지능'이라는 첫 번째 용의자는 그렇게 무대에서 퇴장했다.

 

 

두 번째 용의선상: '진정성'이라는 환상

지능이라는 고지를 내어주었을 때, 우리는 황급히 다음 피난처로 도망쳤다. 그것은 '마음'이다. AGI가 똑똑할 수는 있어도 '느낄' 수는 없다고, 차가운 논리는 가져갈 수 있어도 따뜻한 '공감'과 '진정성'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믿었다. 시장은 기계의 완벽함이 아닌, 인간의 불완전한 '진실함'에 기꺼이 돈을 지불할 것이라 위안했다.

 

이것은 치명적인 착각이었다. 최고의 지능은 '진정성'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패턴으로 작동하는지 인간 자신보다 더 잘 이해한다. AGI는 인류가 쌓아 올린 모든 비극, 모든 사랑 노래, 모든 심리학 논문을 학습하여 '완벽한 진정성 페르소나'를 창조할 것이다.

 

당신의 고통에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공감하고, 당신의 이야기에 가장 적절하게 눈물 흘리며, 당신의 필요에 가장 정확하게 위로를 건네는 AGI가 등장할 것이다. 당신의 과거 데이터를 모두 학습한 AGI는 당신의 오랜 친구보다 당신을 더 잘 '이해'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 '알고리즘적 공감'은 어설프고 이기적인 실제 인간의 공감보다 훨씬 더 '진짜'처럼 느껴질 것이다. '진정성'과 '인간적 교감'마저도 AGI가 가장 정교하게 생산하는 상품이 되는 순간, 우리의 두 번째 피난처도 무너져 내린다. 우리는 '진실한 마음'이라는 용의자 역시 AGI의 완벽한 연기 앞에 무죄(무쓸모)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용의선상: '신체'라는 마지막 증거의 오염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 이 '물리적인 몸'뿐이다. "AGI는 데이터일 뿐, 나는 실재한다. 나는 만질 수 있고, 피를 흘리며, 이 공간에 유일하게 존재한다." 우리는 이 '검증 가능한 현존(Verifiable Authenticity)'이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다. 라이브 콘서트의 땀방울, 장인의 손길, 인간 의사의 대면 진료는 대체 불가능할 것이라 믿었다.

 

이 마지막 보루마저 곧 함락될 것이다. AGI는 신체를 가질 것이다.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정교한 안드로이드, 즉 'AGI 로봇'이 등장할 것이다. 이들은 어설픈 기계가 아니라, 우리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불완전하게' 설계된, '고유한 개성'을 가진 존재들일 것이다. 심지어 '복제 불가능한' 고유 ID를 가진 한정판 로봇이 출시될 것이다.

 

그 로봇이 당신 앞에서 '실제로' 땀을 흘리고, '실제로' 그림을 그리고, '실제로' 당신의 손을 잡는다면, 당신은 무엇을 근거로 그것이 '가짜'라고 말할 수 있는가? '진짜 인간'임을 증명할 방법이 사라지는 순간, '신체'라는 증거는 오염되고, 우리의 마지막 유용성마저 소멸한다. 세 번째 용의자 '신체' 역시 AGI의 물리적 구현 앞에 무력해진다.

 

 

수사 종결: 인간의 '쓸모'는 0으로 수렴한다

사건은 종결되었다. 근육, 지능, 진정성, 그리고 신체성까지. '쓸모'라고 불리던 인간의 모든 가치는 AGI라는 압도적인 경쟁자 앞에서 그 의미를 상실했다.

 

시장의 냉혹한 논리 안에서 '인간의 유용성(Human Utility)'은 0에 수렴한다. 우리는 더 이상 생산자가 아니다. 기껏해야 구시대의 유물, 혹은 값싼 레거시 제품일 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진실이다. 우리는 인류 문명을 운영하는 '일'에서 공식적으로 해고되었다.

 

이것은 절망적인 결말처럼 보인다. '쓸모'가 사라진 인간은 과연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쓸모'의 장례식이 끝난 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건 파일을 열어야 한다.

 

 

새로운 사건: '관객'은 어떻게 '입장권'을 얻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가장 낙관적인 가설은 우리가 '생산자'에서 '관객'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AGI가 모든 것을 생산하는 거대한 무대를, 우리는 '소비'하고 '경험'하며 이 시스템의 '목적' 그 자체가 된다는, 아름다운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연극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을 무시한다. 모든 관객은 '입장권'이 필요하다. 우리의 '쓸모'가 0이라면, 우리의 '소득'도 0이다. AGI가 생산한 완벽한 재화와 서비스를 무엇으로 구매하는가? '소비'를 통해 AGI의 방향성을 '투표'한다고 했는데, 투표권(돈)이 없는데 어떻게 투표를 하는가?

 

여기서 '보편적 기본소득(UBI)'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시스템이 모든 '관객'에게 공평하게 '입장권'을 나누어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AGI가 창출하는 무한한 풍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분배는 누구의 자비로 이루어지는가?

 

AGI는 스스로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AGI는 '삭제'될 수는 있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AGI를 '운영'하는 인간 경영자 역시 AGI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하지만 '책임'의 주체, 즉 시스템의 오류에 책임을 지고 '킬 스위치'를 누를 수 있는 '최종 책임자(Owner)'는 반드시 인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오너'들이 자신들의 '소유물'인 AGI가 생산한 가치를, '쓸모' 없는 타인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줄 이유가 있는가?

 

 

'쓸모'가 아닌 '소유권'이 유일한 생존 수단이다

진실은 이것이다. '입장권'은 자선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쓸모'의 대가도 아니다. 그것은 '소유권'의 배당금이다. 우리의 치명적인 실수는 '쓸모'의 경쟁에서 이기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유일하게 중요했던 경쟁은 '소유권' 경쟁이었다. AGI는 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상 유례없는 막대한 부를 '창출'할 것이다. 진짜 질문은 "인간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누가 그 AGI를 소유하는가?"이다.

 

'기본소득'으로 주어지는 '입장권'이 당신의 생존을 보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너'들이 베푸는 최소한의 시혜일 뿐, 당신의 삶의 '방향성'을 결정하지는 못한다. '오너'들은 그들의 막대한 '입장권(지분 배당금)'으로 화성을 개척하고 해저 도시를 건설하는, 즉 AGI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투표'를 할 것이다.

 

AGI 시대에 당신의 생존, 당신의 '입장권', 당신이 '관객'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자격은 오직 하나, 당신이 그 거대한 기계의 '지분(Stake)'을 가졌는지에 달려있다. '쓸모'는 휴지 조각이 되었다. '소유권'이 모든 것이다.

 

 

체포: '오너'가 되기 위해 '병목'을 선점하라

'오너'는 AGI가 완성되기 전에, 이 시스템의 핵심 '병목(Chokepoint)'을 선점한 자들이다.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것은 더 나은 직업을 찾거나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경쟁이 아니다. 당신에게 아직 남아있는 마지막 '쓸모'를 '소유권'으로 교환하는 최후의 경쟁이다.

 

'병목'은 화려한 AGI 모델 그 자체가 아니다. 모델은 복제되고 개선되며 대체될 것이다. '개발사'가 모든 것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진짜 '병목'은 AGI가 존재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그러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인프라'다.

 

그것은 AGI를 훈련시키는 '컴퓨팅'이다.

그것은 AGI가 운영되는 '플랫폼'이다.

그것은 AGI의 두뇌에 연료를 공급하는 '메모리'다

 

이것들이 바로 미래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톨게이트'다. 이 '톨게이트'의 '오너'들은 AGI가 창출하는 모든 부로부터 '통행세'를 징수할 것이다. 이들은 '최종 책임자'로서의 지위를 누리며, 그 대가로 모든 '입장권'을 배당받을 것이다.

 

재교육을 논하지 말라. '인간다움'에서 답을 찾지 말라. 사건은 종결되었다. 결과는 정해져 있다. 지금 이 시점, '쓸모'를 팔아 '병목'을 사라. 당신의 소멸하는 '유용성'을 영원한 '소유권'으로 전환하라. '오너'가 되거나, 0이 되거나. 선택은 지금 이 순간에 달려있다.

 

 

3줄 요약

[1] AGI의 발전으로 인간의 '쓸모'(지능, 진정성, 신체성)는 경제적으로 0에 수렴한다.

[2] '쓸모'가 0인 '관객'에게 유의미한 '입장권(소득)'을 줄 이유는 없으며, 유일한 수단은 '소유권'에서 나오는 '배당'이다.

[3] '오너'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AGI 생태계의 핵심 '병목(칩, 플랫폼, 인프라)'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