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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문턱, 투자 철학을 끌어안다
하워드 막스라는 이름에는 묘한 아우라가 깃들어 있다. 투자 업계에서 그의 존재감은 단순히 눈에 띄는 몇 번의 딜이나 눈부신 수익률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는 시장 사이클을 꿰뚫어보는 예리함과 투자라는 예술을 바라보는 깊이 있는 통찰을 동시에 지닌 인물로 알려져 있다.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투자 세계에서 막스가 오랜 시간 뿌리내려온 토양은 위험을 관리하면서 수익을 얻는 균형 감각이다.
워렌 버핏도 “하워드 막스가 펴내는 메모는 항상 읽는다”고 했다고 전해진다. 현실적으로 수많은 투자 전략가와 애널리스트가 쏟아져 나온 글을 생산하지만, 막스의 글에는 독보적인 무게가 있다. 이는 단순한 시장 예측이나 기교적 포트폴리오 구성이 아니라 ‘왜 시장이 이 방향으로 움직이는가’를 밝히는 한편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를 사색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요컨대 그는 단순히 경제지표를 늘어놓는 게 아닌, 시장과 인간 심리가 함께 춤추는 장면을 조명해왔다.
특히 그가 설립한 오크트리 캐피탈(Oaktree Capital)은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해온 사례가 많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자본시장이 공포에 질렸을 때, 막스는 부실채권에 뛰어들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이는 위험이 최고조로 치달을 때 찾아오는 역설적 기회를 놓치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모든 투자자가 공포와 회의로 뒷걸음질칠 때 막스는 신중하면서도 과감하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말이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막스는 이를 실제 포트폴리오로 증명해냈다. 그가 투자 세계에 끼친 영향력은 탁월한 성과뿐 아니라 시장 흐름을 꿰뚫는 사고방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수십년 간 그의 투자 메모가 전하는 통찰
막스의 명성과 함께 떠오르는 대표적 키워드는 바로 ‘투자 메모’다.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이 메모는 지금까지 수십년 간 이어져 왔다. 누구나 장기 투자나 가치투자 같은 기조를 표방할 수 있다. 그러나 막스의 메모가 남다른 가치를 띠는 이유는 그 안에 녹아 있는 문장 하나하나가 단순 정보 전달이 아니라 통찰을 전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특정 산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때로는 시장 전체의 심리 흐름을 해부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막스가 투자자들에게 리스크를 보다 능동적으로 이해하도록 이끈다는 점이다.
그 메모들은 예측을 넘어 준비를 강조한다.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완벽히 맞추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대신 예측보다 중요한 것은 대비라는 메시지를 반복한다. 일견 식상해 보이지만 거대 금융회사들이 탐욕에 빠져있을 때, 개인 투자자들이 한정된 정보만으로 무작정 달려들 때 그의 메모는 진중한 목소리로 경고를 던졌다. 이 경고는 위기의 순간에 반짝였다. ‘리스크는 손실 그 자체가 아니라, 예상보다 나쁜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이라는 그의 정의는 메모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이를테면 어떤 산업의 주가가 폭등할 때, 막스는 시장이 제대로 된 대가를 받고 있는지를 묻는다. 여기서 대가는 단순한 주식가격이 아니라 리스크를 부담하는 데 합당한 보상을 의미한다. 군중이 흥분에 휩싸이면 시장은 대체로 리스크 비용을 저평가하게 된다. 막스는 그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투자자들에게 “지금 이 리스크가 저평가되는 만큼, 머지않아 격렬한 회귀가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바로 이런 각성의 모멘트가 메모마다 녹아들어 있어 읽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메모의 깊이 있는 문체 역시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딱딱한 보고서 형식보다는 현장감 넘치는 일기 같은 느낌에 가깝다. 그는 시장의 분위기, 사람들의 심리, 그리고 자신이 이뤄낸 실제 거래 과정을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이를 통해 재무제표나 차트로는 드러나지 않는 투자 세계의 물밑 흐름을 실감하게 만든다. 이처럼 개인 투자자들도 막스의 메모를 읽다 보면 “저점에서의 공포와 고점에서의 욕심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위기에서 기회를, 막스가 남긴 매매의 원칙
막스가 지향하는 매매법은 크게 세 갈래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리스크 관리가 최우선이라는 대원칙이다. 그는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다면 반대로 큰 이익을 얻는 시나리오에도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령 고수익 채권에 투자할 때도 아무런 담보나 구조화 장치 없이 무모하게 뛰어들지 않는다. 각 채권의 조건을 면밀히 살핀 뒤 부도 혹은 구조조정이 현실화해도 일정 부분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다. 덕분에 시장이 폭락해도 치명타를 피할 수 있다.
둘째, 사이클을 이해하는 일이 곧 투자의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막스는 시장이 극단적 공포에 빠지면 해당 시점이야말로 자산을 저렴하게 살 기회라고 파악했다. 반대로 시장이 너도나도 공격적 매수에 나서는 과열 상태라고 느끼면 투자 비중을 줄이고 현금을 확보한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대부분의 투자자가 패닉에 빠져 주식을 내던지던 시기에도 막스는 장기 가치가 살아 있는 기업들을 분할매수해 수익을 실현했다. 이는 사이클의 정점과 저점을 현실적으로 예측하기보다는 투자 심리가 어디로 쏠려 있는가를 면밀히 살펴보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셋째, 군중과 반대로 움직이는 과정에서 확신이 뒤따라야 한다. 군중심리와 정반대로 매수 혹은 매도 포지션을 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공포 상황에서 지금이 매수 기회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구조 분석과 심리적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막스가 자주 말하는 2차 사고(Second-level thinking)는 바로 이 시점에 빛난다. 모두가 어떤 자산에 뛰어들 때 왜 그 자산이 실제 가치보다 비싸게 거래될 수 있는지 그리고 반대로 저평가된 자산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아내는 사고해야 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결국 그의 매매 원칙은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통찰은 한순간에 얻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막스가 오랜 기간 쌓아온 경험과 실전 성과는 그저 운이나 단순 선택의 결과물이 아니라 끊임없는 사고와 관찰로부터 온 결실이다. 누구나 리스크를 말하고 가치투자를 흉내 낼 수 있다. 하지만 막스의 진가는 위기 상황에서 발휘된다. 위기에서 움츠러들지 않고 기회를 봐야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가 달성해온 기록은 이 구호에 생생한 현실성을 부여했다.
그의 메모를 자주 읽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보이지 않던 부분을 보았다고 증언한다. 과연 시장의 한가운데서 그는 어떻게 이러한 심리와 사이클을 파악해왔을까. 그 답은 그의 긴 호흡에서 찾을 수 있다. 예측이 아니라 대비를 중시하고, 공포가 찾아오면 머뭇거리지 않으며, 군중이 즐거운 비명을 지를 때 차분히 자리를 잡는다. 리스크는 예측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철학이 그의 모든 행보에 담겨 있다.
오늘날 수많은 시장 정보가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오고 인간의 감정조차 알고리즘에 의해 해석되는 시기에도 막스의 통찰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다. 언제나 같은 지점으로 귀결된다. “원칙을 지키고, 군중의 심리에 휘둘리지 않으며, 내 앞에 놓인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하라.” 이렇게 보면 막스가 남긴 발자취는 단순한 투자 성공담을 넘어 삶의 태도와도 맥이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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