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정보를 끊고, 가격만 본 남자
니콜라스 다바스라는 이름은 주식 투자 역사에서 전설로 통한다. 1950년대 후반, 무용수 출신이었던 그는 공연을 위해 온 대륙을 넘나들었다. 이동이 잦았기에 시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다바스는 전신 전보로 전달되는 마감 후 주가만 바라보면서도 기계적이고 단순한 규칙을 바탕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그는 복잡한 경제지표나 애널리스트의 분석을 철저히 무시하고 오로지 캔들이 그날 어디서 마감됐는지에 집중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그의 ‘박스 이론(Box Theory)’은 지금도 추세 추종 전략의 대표 격으로 불린다.
그 이론의 정수는 간단하다. 일정 기간 동안 주가가 머무는 구역을 박스라 칭하고 이 박스의 상단을 종가 기준으로 강하게 돌파하면 매수한다. 하단을 이탈하면 매도하거나 손절한다. 거래량이 급증하거나 종가가 확실히 박스 상단을 넘어서는지를 주목한다. 가령 10일간 3만 원에서 3만 3천 원 사이를 움직이던 종목이 3만 4천 원에 장을 마쳤다면 박스 상단을 돌파했다고 보는 방식이다. 물리적인 시간차가 있던 다바스는 장중 변동을 포착할 수 없었다. 대신 종가라는 데드라인이 모든 하루의 심리를 집약한다고 믿었다. 그는 하루 장이 끝난 시점이야말로 매수·매도의 의지가 종결된 순간이라는 철학을 실천에 옮겼다.
박스 이론은 진입과 청산 기준을 단순화한다. 그는 수많은 기업 정보를 전혀 참고하지 않았다. 오로지 가격만으로 투자한 것이다. 시장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었기에 별도의 경제 지표나 애널리스트 의견은 군더더기에 불과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매일같이 뉴스를 읽고, 종목을 분석하고, 지표를 뒤적이는 사람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다바스는 잡음을 배제함으로써 몰입도를 높였다. 그 결과, 몇 년 만에 원금을 천 배 이상 불렸다는 기록을 달성하였다. 단순함이 때로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몸소 증명한 것이다.
그의 방식은 오늘날에도 화제가 된다. 잔뜩 복잡해진 현대 시장에 각종 파생지표 등 수많은 분석 도구가 등장했어도 박스 이론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예측이 아니라 대응,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 이는 모든 추세 매매자가 귀담아들을 만한 핵심 메시지다. 특히 다바스가 고수했던 종가 기준의 원칙은 심리적으로 미련을 덜어낸다는 이점이 있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불확실성을 일정 부분 걷어낸 상태에서 돌파 여부를 확정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돌파란 무엇인가, 종가는 왜 유일한가
그렇다면 다바스의 박스 이론에 깃든 돌파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흔히 강한 돌파라 하면 주가가 이전 고점을 넘어서는 것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다바스의 기준은 더 엄격하다. 단순히 장중에 순식간 고점을 달성한 뒤 밀리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종가가 박스 상단을 분명히 넘어서야 진짜 돌파라고 본다. 거래량이 뒤따르지 않는 높이뛰기는 거짓 돌파인 경우가 있으므로 매수세가 폭발적으로 유입되는지도 함께 살핀다. 이를테면 마루보즈 캔들 형태로 장을 마쳤다거나 그날 거래량이 평균치의 몇 배로 폭증했다면 다바스가 말하는 진성 돌파에 부합한다.
이 돌파 지점에서 뛰어드는 것은, 쉽게 말해 ‘나는 상승을 믿는다’는 선언이다. 이런 방식으로 가격이 더 높은 단계로 비상하는 시나리오에 도전하는 것은 손익비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성공 시 큰 수익을 거두지만 실패 시에는 박스 하단에서 손절하면 되기 때문이다. 비록 비추세를 그리며 거짓 돌파가 여러 차례 반복될 수 있다는 약점이 있지만 강세장에선 이만큼 폭발력 있는 무기가 드물다. 필요하면 캔들 패턴, 체결 강도, 호가창 분석 등 현대적 도구를 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바스의 핵심은 종가에 대한 믿음이었다. 장을 마감하는 시점이야말로 온갖 정보와 심리가 혼합된 결정적 순간이라 여겼다.
오늘날에는 초단타부터 알고리즘 매매까지 각양각색의 방법이 등장했다. 하지만 다바스의 접근은 여전히 유효하다. 시장 참여자의 심리는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한 돌파는 치열한 매수세가 뒷받침될 때만 유효하다. 아무리 기묘한 팁이나 지표가 늘어난다고 해도 결국 돈을 내는 건 사람이니 심리는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 그래서 박스 이론은 반복적으로 재발견된다. 노후된 기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성공 사례가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때로는 단순함이 가장 크게 빛나기도 한다.
시장을 믿고 나를 버리는 법
박스 이론은 단순히 ‘상단 돌파 매수, 하단 이탈 손절’의 공식만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확신을 제거하고 시장에 맡겨라’는 통찰을 담고 있다. 다바스는 스스로의 감정이나 기대를 최대한 배제했다. 정보가 폭주하는 시대에, 정보 소음에서 벗어나 기계적인 규칙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그가 몸소 보여준 성과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박스 이론은 감정을 억제하는 방파제 구실을 한다.
물론 어느 시대든 한 가지 방법이 모든 상황에서 통하지 않는다. 횡보장에서는 손절 빈도가 잦아질 것이고, 초단타 시장에선 타이밍이 늦어 손해가 커질 수 있다. 그럼에도 다바스가 남긴 유산은 가치가 있다. 시장을 파고드는 거대한 흐름에 올라타고 이를 위해 일정 수준의 손실은 감수한다는 부분이다. 이는 심플하면서도 인상적인 투자 관점이다. 가짜 돌파나 거짓 시그널이 넘쳐나는 요즘 시장에, 정교함보다는 단순함으로 무장하는 전략이 때때로 더 빛을 발한다.
다바스가 공연 무대에서 이룬 성공은 범상치 않았다. 첨단 통신도 없던 시절, 단순한 규칙만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린 이유는 그가 흔들림 없이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 투자자가 이 철학을 완벽히 따르긴 어렵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종가만 보는 결단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다바스의 접근법은 시장의 종합적 판단을 한눈에 파악하겠다는 통찰을 일깨운다. 합리적인 의심을 거쳐 위험을 통제하면서도 큰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 박스 이론은 그 자리에 여전히 존재하며, 시장이 변해도 인간 심리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무용수였던 그가 혹독한 주식시장의 강자로 거듭날 수 있었던 비밀은 단순함과 확신의 결합이었다. 종가 중심의 박스 돌파 매매는 일견 우직해 보이지만, 큰 맥락을 놓치지 않는 법을 보여준다. 과학적 데이터나 예측 모델이 넘쳐나도 결국 시장을 움직이는 건 한 건 한 건 거래되는 실제 매수·매도다. 종가는 그 집약체이며 다바스가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취미로 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리가 아프면 주가에 위기가 온다? 소로스가 말하는 허리 통증 매매법 (0) | 2025.04.14 |
---|---|
성공적인 트레이더는 잘 맞히는 사람이 아니다. 틀렸음을 빠르게 인정하는 사람이다 (0) | 2025.04.13 |
손절 기준을 미리 정해두지 않으면 시장이 대신 결정해준다 (0) | 2025.04.11 |
운과 실력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는? 투자 성과의 비밀 (0) | 2025.04.10 |
소비자심리지수, 소비자신뢰지수의 하락은 진짜 위험 신호일까? (0) | 2025.04.08 |
숏 자리가 많이 나오네요 BSV 도전(매매일지) (0) | 2025.04.06 |
차트에서 다중 타임 프레임 분석은 왜 더 신뢰할 수 있을까? (0) | 2025.04.05 |
선반영, 정말 존재하는가? 가격이 움직이는 결정적 순간 (0) | 2025.04.05 |
말도 안 되는 3년 뒤 원달러 환율 전망. 일단 추세는 시작했는데 (0) | 2025.04.04 |
워렌 버핏도 기다리는 그 메모, 하워드 막스의 트레이딩 세계 (0) | 2025.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