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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블록체인을 종종 완벽하게 밀폐된, 순수한 논리의 공간으로 상상한다. 외부와 단절되어 그 어떤 오염에도 노출되지 않는 곳. 철학적 사고 실험인 수조 속의 뇌처럼, 블록체인은 그 자체로 완전한 디지털 우주다. 이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은 결정론이다. 동일한 입력값은 언제나 동일한 결과값을 낳는다. 이 절대적인 신뢰성, 이 예측 가능성이야말로 블록체인이 가진 힘의 원천이다.

하지만 이 완벽한 고립은 치명적인 한계를 동반한다. 수조 속의 뇌는 자신이 수조 속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블록체인은 자신의 코드 바깥에 존재하는 현실 세계를 전혀 알지 못한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얼마인지, 뉴욕의 날씨가 어떤지, 특정 선거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블록체인은 스스로 알 길이 없다. 그저 자신의 원장 안에 기록된 데이터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연산을 수행할 뿐이다.

이 고결한 순수성은 블록체인을 현실 세계와 무관한, 그저 강력한 계산기나 디지털 금고 정도로 머무르게 만든다. 만약 블록체인이 현실 세계의 사건에 반응하고, 나아가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고립된 뇌에 감각과 팔다리를 연결해야 하는 과제가 발생한다.

감각기관의 연결: 외부의 소리를 듣다

첫 번째 과제는 외부 세계의 정보를 뇌, 즉 블록체인 내부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라클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이며, 우리는 이를 인바운드 오라클이라 부른다.

수조 속의 뇌에 청각 센서를 연결하는 것과 같다. 이 센서를 통해 뇌는 비로소 바깥 세상의 소리를 듣게 된다. 특정 거래소의 API를 통해 전달되는 이더리움의 달러 가격, 기상청 서버에서 송출되는 서울의 현재 온도, 혹은 스포츠 경기의 최종 스코어. 이 모든 비정형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외부의 데이터가 인바운드 오라클이라는 통로를 통해 블록체인 내부로 흘러 들어간다.

스마트 컨트랙트는 이 데이터를 입력값으로 삼아 작동한다. 예를 들어, 날씨 파생상품 계약은 오라클이 전달한 기온 데이터가 특정 온도를 넘어서면 자동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설계될 수 있다. 이처럼 인바운드 오라클은 블록체인이라는 뇌에 현실 세계의 맥락을 인지시키는 감각기관의 역할을 수행한다.

들은 정보가 진짜인지 확인하는 과정

하지만 이 감각기관이 고장 나거나 거짓말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단 하나의 오라클이 해킹당하거나 악의적으로 조작된 가격 정보를 블록체인에 전송한다면, 수천억 원의 자금이 걸린 디파이 프로토콜은 순식간에 붕괴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오라클 문제의 핵심이다. 뇌는 자신이 들은 정보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스스로 판별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탈중앙화 오라클 네트워크, 즉 DON이 등장했다. 이는 단 하나의 감각기관에 의존하는 대신, 수십, 수백 개의 독립적인 감각기관(오라클 노드)을 동시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들 노드는 각기 다른 데이터 소스에서 동일한 정보를 수집한다. 예를 들어 100개의 노드가 100개의 다른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가격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 값들을 네트워크 상에서 집계하고 검증하여 하나의 합의된 값, 예컨대 중간값을 도출한다.

이 과정에서 거짓된 정보를 보고하는 노드는 즉각 식별된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경제적 페널티를 받는다. 노드 운영자는 네트워크에 참여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토큰을 담보로 예치하는데, 부정확한 데이터를 전송할 경우 이 담보가 몰수(슬래싱)된다. 이는 감각기관이 거짓 정보를 전달할 경우 즉각적인 고통을 느끼게 하여, 정직하게 행동할 경제적 유인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뇌는 비로소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수신하게 된다.

뇌의 명령: 결정을 내리다

이제 뇌는 검증된 외부 감각(데이터)을 갖추었다. 인바운드 오라클을 통해 전달된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예를 들어 비트코인의 가격이 5만 달러로 확정되었다는 데이터를 입력받는다.

수조 속의 뇌, 즉 스마트 컨트랙트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내부의 논리 연산을 시작한다. 만약 계약의 조건이 비트코인 가격이 5만 달러에 도달하면 특정 주소로 100개의 스테이블코인을 전송하라는 것이었다면, 드디어 이 조건이 충족된다.

뇌는 결정을 내린다. 명령을 실행하라.

이 결정은 블록체인 내부의 상태를 변경한다. A의 잔고에서 100이 차감되고 B의 잔고에 100이 더해진다. 여기까지는 여전히 수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 연산은 완벽하게 결정론적이며 블록체인 원장에 영구히 기록된다. 하지만 이 결정이 수조 바깥의 현실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신경망을 통한 명령 전달: 외부로 말하다

뇌가 내린 결정을 외부 세계로 전달하여 실제 행동을 유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아웃바운드 오라클의 역할이다. 뇌가 감각기관(인바운드)을 통해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신경망(아웃바운드)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팔다리에 전달하여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스마트 컨트랙트가 100개의 스테이블코인을 전송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하자. 이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디지털 자산이 아니라, 실제 은행 계좌의 잔고와 연동되어야 한다면 어떨까. 블록체인 내부의 트랜잭션은 외부 은행 시스템에 자동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때 아웃바운드 오라클이 작동한다. 스마트 컨트랙트의 실행(100 전송) 이벤트를 감지한 오라클 노드는, 이 이벤트를 외부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명령으로 번역한다. 그리고 외부의 레거시 결제 시스템 API를 호출하여 B의 실제 은행 계좌에 100달러를 입금하라는 명령을 전송한다.

이것은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외부 세계를 향해 능동적으로 말하고 명령하는 행위다. 뇌의 의지가 신경망을 타고 실제 팔다리를 움직이는 순간이다.

이더스캔 API와 아웃바운드 오라클의 결정적 차이

여기서 흔한 오해가 발생한다. 블록체인의 모든 기록은 투명하게 공개되니, 이더스캔 같은 탐색기 API를 통해 외부 시스템이 그냥 읽어가면 되지 않는가? 왜 굳이 아웃바운드 오라클이라는 복잡한 장치가 필요한가?

이는 읽기(Read)와 쓰기(Write), 혹은 당기기(Pull)와 밀어내기(Push)의 근본적인 차이다.

이더스캔 API를 이용하는 것은 외부 시스템이 수조 안을 들여다보는 행위(Pull)다. 은행 시스템이 1초마다 이더스캔을 감시하며 B에게 입금할 돈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는 지극히 수동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블록체인의 상태가 변경되는 즉시 반응할 수 없다. 외부 시스템이 끊임없이 블록체인의 눈치를 봐야 하는 구조다.

반면 아웃바운드 오라클은 뇌가 외부 시스템에 직접 명령을 내리는 행위(Push)다. 스마트 컨트랙트가 실행되는 즉시, 오라클은 능동적으로 외부 API를 호출하여 행동을 촉발시킨다. 은행 시스템은 가만히 있다가 오라클의 명령을 수신하는 즉시 입금 처리를 하면 된다.

이더스캔이 과거의 기록을 읽는 관찰자라면, 아웃바운드 오라클은 미래의 행동을 지시하는 행위자인 셈이다.

외부 세계의 팔다리를 움직이는 블록체인

인바운드 오라클이 블록체인에 눈과 귀를, 즉 감각을 부여했다면, 아웃바운드 오라클은 블록체인에 목소리와 팔다리, 즉 행동력을 부여한다.

수조 속의 뇌는 이제 더 이상 고립되어 있지 않다. 양방향 오라클이라는 완벽한 신경계를 통해 현실 세계와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상호작용한다.

현실 세계의 날씨를 듣고(인바운드), 스마트 컨트랙트로 판단하여, 현실 세계의 은행 계좌로 송금하라고 명령한다(아웃바운드). 물류창고 IoT 센서의 데이터를 듣고(인바운드), 재고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공급업체에 자동으로 발주 명령을 보낸다(아웃바운드).

이 양방향 통신이야말로 블록체인이 단순한 디지털 장부 기록 시스템을 넘어, 현실 세계의 비즈니스 로직을 자동화하고 실행하는 진정한 월드 컴퓨터로 거듭나기 위한 핵심 열쇠다. 수조 속에서만 완벽했던 뇌는, 이제 신경망을 통해 감각하고 행동하며 현실 세계를 재편하기 시작했다.

3줄 요약

  1. 블록체인은 고립된 '수조 속의 뇌'와 같아 외부 세계를 인지(인바운드)하거나 명령(아웃바운드)할 수 없다.
  2. 인바운드 오라클은 외부의 가격, 날씨 등 데이터를 '듣는' 감각기관이며, DON은 이 정보의 진실성을 검증한다.
  3. 아웃바운드 오라클은 스마트 컨트랙트의 실행 결과를 외부 은행, IoT 등 현실 세계에 '명령'하는 신경망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