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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풍요의 환상, 그리고 현실의 균열
한국 사회가 몇 번의 경제적 고비와 국제적 갈등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안착했다고들 말한다. 1960년대를 회상하는 목소리에서는 가난했지만 정은 넘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더불어 국가적 목표가 명확했고 온 동네가 아이를 함께 돌봐주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한다. 구체적 통계와 기록을 보면 그 시절에도 사람들이 느끼던 불안이 결코 작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고 필수 물자나 생활 환경도 열악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자녀를 낳고 키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지금과 달리 공동체가 촘촘했고 아이를 기르는 데 따르는 부담이 가족과 이웃으로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과거의 안락함은 다소 미화된 기억에 가깝다. 당시에도 삶은 치열했고 교육 기회나 의료 수준은 훨씬 뒤떨어졌다. 그럼에도 앞으로는 나아질 것이라는 집단적 확신이 있었다. 모두가 빈곤하던 시대에는 상대적 박탈감도 덜했다. 노력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희망의 동력이었다. 사회 전체가 더 나은 미래를 믿었고 자녀가 그 희망이기도 했다. 낳고 기르는 희생이 향후 가족의 발전과 국가적 성장으로 이어질 거라는 마음이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누군가는 인구가 줄고 저출산이 심각하다고 호소하고 또 다른 이는 열심히 해도 미래가 나아지지 않는다며 청년층의 좌절을 토로한다. 부모 세대가 겪었던 어려움에 견주어도, 오늘날의 불안정성은 더 구조적이고 복합적이다. 세계화와 기술 혁신이 가속될수록 경쟁은 극심해지고 승자독식의 흐름이 강해졌다. 이러한 경쟁 구도는 교육·취업·자산 형성 등 인생의 모든 단계에 스며들었다. 과거의 집단적 가난이 오늘날 개인적, 상대적 박탈감으로 치환된 상황이다.
고립된 불안, 무너진 사다리
최근 수년간 가장 많이 등장한 표현 중 하나가 노력해도 안 된다는 말이다. 그 배경에는 몇 가지 굵직한 계기가 있다. 첫째, 외환위기 이후 고용 안정성은 급격히 흔들렸고 비정규직은 일상적인 노동 형태가 되었다. 둘째, 부동산 가격 폭등은 중산층을 위협했고 부모 자산의 영향력이 미래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로 자리 잡았다. 셋째, 공정성 담론이 터져 나오면서 시험과 같은 제도적 경쟁 이외에 다른 통로로 이득을 얻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바로 예를 들어 인천국제공항(인국공) 사태는 공정에 대한 분노가 한껏 분출된 대표 사례였다. 보안검색 요원들의 직접 고용 전환 정책이 쉽게 정규직이 되는 특혜로 비치면서 공기업 취업을 위해 기나긴 스펙 쌓기를 감수하던 청년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 자체는 취약 계층을 보호하려는 의도였지만 정작 청년층은 그러한 기회를 누가 부여했느냐라는 과정적 공정성의 결핍에 반응했다.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는 핵심에는 학습된 무기력이 깔려 있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가 따라오지 않거나 주위에 성공 사례가 소수 엘리트에게만 편중되는 상황이 반복되면 무기력이 쌓이게 된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다라는 공감이 사회적 연대로 이어지면 다행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나만 낙오한 것이 아니라는 냉소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그 결과가 역대급 저출산, 결혼 기피, 심리적 고립 등으로 이어진다.
한편, 과거가 안정적이었다기보다 희생을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국가적 성장이라는 서사와 공동체 돌봄이 개인의 희생을 상대적으로 덜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지금은 사회가 개인에게 알아서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상황이 많다. 자녀를 낳는 순간 요구되는 경쟁과 비용이 과거에 비해 급격히 늘어났지만 제도가 따라오지 못하여 공동체보다 개인의 의지가 더 강조되는 실정이다.
미래에 대한 작은 확신이 필요한 이유
유럽 일부 국가가 비교적 출산율을 유지하는 이유를 보면 경제적 풍요만이 전부가 아니다. 프랑스, 스웨덴 등은 오랜 기간 육아 지원이 확실한 제도적 장치로 자리 잡았다. 부모가 되어도 경력 단절을 크게 우려하지 않고, 아이를 단독으로 키우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을 사회가 심어준 것이다. 개인의 노력이 국가와 공동체의 지지 위에서 보상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낳아도 되겠다는 결정을 가능하게 만든다.
한국 사회가 누적된 불안과 경쟁 속에서 숨통을 트이게 하려면 노력과 보상의 간극을 좁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청년층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주거·고용·교육 분야에서 현실성 있는 사다리를 제공해야 한다. 사회이동성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불안정은 계속 커질 것이다. 또한 부모가 된다는 것이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모두가 재인식해야 한다. 공동체 차원에서 돌봄과 안전망을 구축하지 않으면 저출산과 고립은 더 가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미 곳곳에서 지역 공동육아가 활발해지고 자발적 연대를 통해 돌봄 리소스를 나누는 긍정적인 실험이 진행 중에 있다. 회사 내에서도 육아휴직을 점점 더 권장하고 복귀 후 처우를 개선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청년들이 모여 공정을 토론하며 더욱 정교한 해법을 제시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이 모든 변화가 쌓여 집단적 무기력을 씻어내고 작은 확신을 되찾는 길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새로운 길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공동체가 나서야 할 시점이다.
공동체가 무너진 자리에 다시 공동체를 세우고 무기력이 자랄 틈을 제도적으로 좁히며, 무엇보다 기회의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 그때야말로 열심히 해봐야 미래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냉소적인 마인드가 함께 노력하면 미래가 조금씩 열릴 수 있다는 확신으로 바뀔 것이다. 작은 희망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순간을 위해 지금 이 사회가 얼마나 절실한가를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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