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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감정도 진통제를 필요로 할까?

머리가 아플 때, 허리가 삐걱거릴 때, 우리는 손쉽게 약국에서 진통제를 구한다. 그런데 마음이 흔들리고, 누군가에게서 받은 상처가 가슴에 쑤실 때도 진통제가 통할까? 놀랍게도 일부 연구에서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이 감정적 통증까지 완화한다고 보고했다. 거절당했을 때의 마음 아픔, 죄책감, 외로움 같은 감정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타이레놀이 사랑의 상처까지 꿰매는 만능 약이라는 결론이 나온 것은 아니다. 실제로 정확한 기전이나 연구 규모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효과가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왜 그런지는 연구원들도 아직 모른다. 다만 신체적 통증과 심리적 고통이 뇌에서 일부 겹치는 부위를 활성화한다는 사실이 핵심 단서로 꼽힌다. 관련하여 거절의 아픔이든 무릎 통증이든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상호 연관성이 알려지면서 감정적 통증에도 진통제가 개입할 여지가 확인된 셈이다.

 

살다 보면 마음이 아플 때 몸까지 저리는 경험을 하곤 한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을 한 직후 이별 통보를 받은 사람의 심전도나 뇌파가 실제 통증 상황과 유사하게 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머릿속은 어질어질해진다. 이럴 때 진통제 한 알로 싹 달랜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실제로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제한된 상황에서의 이야기다. 타이레놀은 애초에 감정적으로 힘들 때 복용하라고 허가받은 의약품이 아니다. 삶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단순히 통증만 가리면 나중에 더 큰 상처가 남을 수 있다. 게다가 마음의 아픔이 무뎌지는 동시에 기쁨이나 즐거움도 함께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이 보고된 부분도 있다. 감정이 전반적으로 무뎌지는 것이다. 고통을 눌러버리는 대신 감정의 톤 전체가 평평해진다면 그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술과 타이레놀의 위험한 동행? 같이 먹으면 병원 간다고?

타이레놀을 감기 기운이나 가벼운 통증에 사용하는 이들은 많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 하나. 통계적으로 미국에서 급성 간부전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원인 1위가 바로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이다. 물론 무분별한 과량 복용이 문제이지만, 때로는 자각하지 못한 병용 섭취가 더 위험한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술과 함께 먹는 경우다.

 

간이 해독을 담당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알코올도, 타이레놀도 모두 간에서 대사된다. 그런데 이 두 요소가 동시에 혹은 짧은 간격으로 투입되면 간세포가 독성 물질을 처리할 수 있는 글루타치온 저장고를 빠르게 소진한다. 술을 적당히 마시더라도 깜빡하고 타이레놀을 섭취하면 치명적 결말로 이어질 수 있다. 실험적으로 매일 소주 한 병씩 3일 연속 마신 집단보다, 소량의 소주와 소량의 타이레놀을 함께한 집단에서 간 수치가 훨씬 급등했다는 임상 연구도 보고된 적이 있다. 즉, 조금씩 섞는 게 가장 위험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술 취한 상태에서는 몸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가벼운 메스꺼움이나 복통조차도 단순히 술 때문에 그런 걸로 치부할 수 있다. 간 손상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숙취정도로 넘겨버릴 위험이 큰 것이다. 작은 신호를 무시하면 이미 중증 단계로 진입했을 때에야 비로소 눈치채게 된다.


타이레놀의 안전한 사용, 어떻게 가능할까?

타이레놀에 대해 기사의 제목을 보면 독하다부터 안전하다까지 엇갈린다. 실제로 정량, 정기간을 지키면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약이다. 성인의 하루 최대 복용량 4,000mg을 넘기지 않고, 4~6시간 간격을 두며, 연속 3일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안전수칙이다. 술을 마실 때는 최소 24시간 이상 간격을 두고 복용해야 한다. 그마저도 음주량이 컸다면 48시간 정도가 바람직하다.

 

만약 술과 타이레놀을 병용해서라도 통증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자체가 이미 비정상적이다. 더 심각한 질환이 숨어 있을 수 있으므로 병원에서 진단받는 편이 좋다.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단순히 진통제로 덮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작 허리나 어깨 통증일 경우, 물리치료나 운동이 필요할 수 있다. 감기 기운에는 적절한 휴식과 수분 보충이 우선되어야 하고, 감정적 통증이라면 상담이나 휴식,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흥미롭게도, 타이레놀이 감정적 고통을 어느 정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해서 이를 일상의 고민 해결 수단으로 삼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마음속 고통은 단순 통증 신호가 아니다. 때로는 중요한 경고이자 자아 성장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나침반이기도 하다. 약으로 무마해버리면 ‘왜 이 감정이 생겼는가’라는 근본 질문을 놓칠 수 있다.

 

이 문제는 개인의 습관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흔히 스트레스가 심하면 술 한 잔으로 털어버린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일이 많은데, 한 잔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날 두통을 잡는 등의 이유로 타이레놀을 찾게 된다면 악순환이 된다. 잠시 해소되는 듯한 기분에 의존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간이 한계점을 넘어 버리는 날이 온다. 그날이 오면 후회해도 늦다.

 

결국 안전한 복용의 원칙은 단순하다. 통증과 술을 같이 관리하지 않는 것이다. 술을 마시는 날엔 진통제를 되도록 피하고, 반대로 진통제를 먹고 있는 상황이라면 술을 멀리해야 한다. 감정적 고통을 달래려고 타이레놀을 습관처럼 사용하기보다는 그 고통이 발생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고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좋은 휴식, 따뜻한 말 한마디, 전문 상담 등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타이레놀은 몸과 마음의 통증을 일시적으로 무뎌지게 하지만 결코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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