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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초면 차트 분석 끝
동전 그림자에 숨은 숫자들
3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20명의 초보 트레이더가 차트를 들여다본다. 열 명은 매수·매도를 결정하기 전에 주술처럼 차트 위에 이평선과 MACD를 얹어 본다. 나머지 열 명은 말 그대로 동전을 튕겨 ‘앞면이면 롱, 뒷면이면 숏’을 외친다. 영국 옥스퍼드 로드의 한 연구소에서 시작된 이 실험은 처음엔 가벼운 농담처럼 들렸다. 하지만 최종 결과가 공개되는 순간 농담은 금융 교육계의 일침이 되었다. 양쪽의 평균 수익률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숫자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더 흥미롭다. 기술적 분석 그룹은 평균적으로 46.8%의 승률을 기록했지만, 한 번의 손절 미달 사고로 계좌가 반 토막 난 참가자가 있었다. 반면 동전 그룹의 승률은 49.2%로 살짝 웃돌았으나, 표준편차가 컸다. 어느 날은 12%를 벌어 환호했지만, 이틀 뒤 15%를 잃고 다시 바닥을 쳤다. 그런데도 실험 책임자는 “성공과 실패를 갈랐던 유일한 변수는 1% 룰”이라고 단언했다. 모든 참가자에게 거래마다 계좌의 1% 이상을 잃지 말라는 규칙을 줬지만 이를 끝까지 지킨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여기서 핵심은 무작위성이 아닌 일관성이다. 시장 가격이 본질적으로 랜덤워크 특성을 띤다는 전통적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하지만 이 작은 실험에서 드러난 것은, 애써 찾은 패턴도 큰 손실 한 방이면 무력화되고, 반대로 아무런 패턴이 없어도 손실이 억제되면 계좌는 서서히 우상향한다는 단순한 진실이었다.
영국 금융행위감독청이 2024년 말 발표한 리테일 트레이딩 보고서를 떠올려 보자.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개인투자자가 2년 내 계좌를 유지할 생존율은 21%에 불과했다. 반면 리스크 한도를 미리 자동화한 계좌(손절과 포지션 조절 알고리즘으로 고정된 계좌)의 생존율은 54%였다. 동전 던지기 참가자들은 우연히도 후자와 유사한 환경을 체험한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적 분석 자체가 무익할까? 이 질문은 한때 월가의 함성을 갈라놓았다. 1980년대 월스트리트저널의 다트보드 콘테스트에서 편집국 기자들이 다트를 던져 고른 종목이 전문가 포트폴리오와 엎치락뒤치락하자, 효율적 시장 가설의 지지자는 “그렇다”고 외쳤다. 반면 퀀트 펀드의 선구자 에드워드 소프는 “무작위 전략이 맞붙어 승부가 나지 않는 건 전략이 조악하기 때문”이라며 미소 지었다. 이번 실험 역시 그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사용된 분석 기법으로는 고작 세 개(모멘텀, RSI, MACD)였고 모두 고정 파라미터를 사용하였다.
시장 회귀가 극심했던 2022년 같은 구간에선 14일 모멘텀 신호가 뒷북을 칠 수밖에 없다. 반면 고빈도 변동성이 폭발했던 2023년 초, 12+26+9 조합의 MACD는 과거 데이터에 과적합돼 신호 오염이 심했다. 결국 참가자들은 유명한 도구를 갖고 있기는 했지만 도구 사용법을 잘 알지는 못한 채 실험대에 올랐다. 결과가 동전과 비슷했던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렇다면 시장을 이기는 알파, 과연 어디에서 올까?
모험은 끝났지만 논쟁은 이어진다. 기술적 분석 무용론의 주장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복잡한 챠트 대신 인덱스 펀드나 채권 ETF를 장기 보유하라는 조언은 교과서처럼 깔끔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헤지펀드 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코드 속 패턴을 찾는 데 열중한다. 차트 위 선을 그리는 대신 초단타 호가 잔량 정보를 머신러닝 모델에 먹이는 방식으로 진화했을 뿐이다.
예를 들어, 퀀트 헤지펀드 AQR의 2024년 실적을 보자. 그들은 가치, 모멘텀, 퀄리티, 저변동성, 짧은 기간 리버설 등 최소 다섯 개 팩터를 조합한다. 단일 지표가 아니라, 서로 반대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있는 팩터를 합쳐 계좌 변동성을 줄인다. 손실 한도 역시 ‘1% 룰’을 넘어 분산 추정값에 기반한 동적 베팅 크기로 세밀하게 조정한다. 그러자 2024년 한 해만 시장 수익률보다 3.4% 포인트를 앞섰다.
이는 개인 트레이더에게 어떤 교훈을 줄까? 첫째, 전략의 복잡성보다 복원력을 점검해야 한다. 복원력은 적정 비율의 포트폴리오, 손절 규칙 자동화, 거래 수수료 예측 정확도 등에서 나온다. 둘째, 무작위성을 부정하기보다 포용해야 한다. 동전 던지기의 50% 확률은 우리 모두가 맞닥뜨리는 시장의 기본 확률이다. 여기에 미세한 확률 우위를 더하는 작업이 전략 설계다. 셋째, 심리적 결함을 제어해야 한다. 실험 참가자 중 절반이 1% 룰을 어겼다. 그 순간 전략은 결국 무작위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
유명 트레이더 폴 튜더 존스는 “내가 시장에서 살아남은 건 매번 잃을 준비를 했기 때문”이라 말했다. 잃을 준비란 곧 리스크 관리다. 정교한 신호가 계좌의 미래라면, 리스크 관리는 그 미래로 가는 운명 공동체다. 오늘날의 시장은 AI, ETF, 토큰화 자산이 뒤섞여 과거보다 복잡해졌고 잡음도 더 심해졌다. 그러나 리스크 관리의 원칙만큼은 17세기 투기 거품 시대의 조나단 프리드먼이 남긴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정도로 견고하다.
결국 우리는 두 가지 질문 앞에 선다. “나는 어떤 우위를 갖고 있는가?” 그리고 “그 우위를 잃지 않으려면 무엇을 제한해야 하는가?” 동전 던지기가 주는 교훈은, 후자의 질문이 선행되지 않는 전략은 언제든 첫 질문을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동전은 여전히 공평하게 공중을 선회한다. 그 공평함을 이기고 싶은가, 아니면 공평함에 올라타고 싶은가? 선택은 우리의 리스크 관리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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