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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창에 묘한 틈새가 생기면?
‘가격은 모든 것을 반영한다’는 월가의 격언은 스프레드(호가 차이)에 이르면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 사이에 놓인 작은 간극은, 거래소의 전광판보다 시장 참여자의 심리를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금리 인상 한 마디에 스프레드가 한순간 벌어지면, 그것은 유동성 도피 본능이 실시간으로 응답한 결과다. 반대로, 한낮의 채권 장이 꾸벅꾸벅 졸 때처럼 스프레드가 종잇장처럼 얇아질 때는 살 사람, 팔 사람이 충분하다는 신호다.
스프레드는 눈에 보이는 만큼 계산이 간단해 보이지만, 그 뒤편엔 복잡한 생태계가 산다. 전통 주식 시장의 지정가 주문 한 줄과, AMM이 풀을 유지하려고 조정하는 유동성 곡선은 겉으론 호가라는 동일 언어를 쓰지만, 스프레드가 형성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가 스프레드를 좁히려면 인적, 물적 자본을 계획하고 동원해야 하지만, 디파이(DeFi) 플랫폼에선 예치된 자산의 양과 프로토콜 수수료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스프레드가 거래 비용이라면, 마켓메이커에게는 수익원이다. 호가를 쌓아두고 매초 스프레드만큼의 차익을 수확하지만, 스프레드가 급격히 축소되는 순간 그들은 비용을 부담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2024년 미 CPI 발표 0.2% 서프라이즈에 5초 만에 S&P 500 E-mini 호가가 15틱 좁혀졌을 때, 고빈도의 마켓메이커들은 천문학적인 포지션을 눈 깜짝할 새 없이 날리기도 했다. 스프레드라는 트랩은 양날의 칼이기에 화려한 수익 곡선 뒤에 숨은 손실 곡선도 길다.
스프레드와는 또 다른 슬리피지
스프레드가 거래 직전의 ‘공표된 가격 차이’라면, 슬리피지는 거래 직후에야 모습을 드러낸다. 기대했던 가격은 호가창에 남지만 포지션은 전혀 다른 호가로 체결되어버리는 마술 같은 현상을 말한다. 2023년 크레디트스위스 구제금융 새벽, 유럽 ETF를 시장가로 사들인 아시아계 연기금은 평균 0.37% 부정적 슬리피지를 기록했다. 그들이 눈으로 확인한 스프레드는 작다고 판단하였지만 실제 체결가는 호가가 뜯기고 뜯긴 잔해 위에서 형성됐다.
슬리피지를 유발하는 요인은 문턱을 높이는 계단처럼 여러 층으로 쌓인다.
- 호가 깊이 부족: 얇은 호가창은 한 번의 클릭으로도 바닥이 드러난다.
- 시장 충격(임팩트): 대형 연기금이나 쿼런트 펀드의 한 방 주문은 스스로 가격을 움직여버린다.
- 변동성 급증: 고용지표, FOMC, 지정학적 뉴스는 평균 호가 체류 시간을 10분의 1로 단축시킨다.
- 가격 갭: 장 시작 종소리와 동시에 튀어 오른 호가는, 어제 낸 예약주문을 과거의 유물로 만들 수 있다.
- 기술적 지연(latency): 밀리초 단위 지연은 알고리즘 트레이더의 ‘마이크로 슬리피지’로, 개미투자자의 ‘매크로 슬리피지’로 증식한다.
흥미로운 것은, 슬리피지가 반드시 비극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급락장에서 시장가 청산이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체결되는 ‘긍정적 슬리피지’는 트레이더에게 즉각적인 이익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복불복 게임에 모든 전략을 걸 수는 없다. 그런 이유로 보통 트레이더가 슬리피지를 통제하기 위해 쓰는 무기는 세 가지다. 첫째, 전용 알고리즘(VWAP·TWAP)으로 주문을 세분화하여 시장 충격을 억제한다. 둘째, 리밸런싱 시간 분산으로 변동성 고점을 우회한다. 셋째, 한도 주문(limit‧stop-limit) 으로 허용 가능한 최대 편차를 사전에 못 박아둔다.
고빈도 매매는 또 다른 차원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서버와 거래소 간 광섬유 거리를 줄이는 방식도 이론적으로 가능한데, 예를 들어 가용한 조치를 통해 레이턴시를 5μs 아래로 깎아내리면 슬리피지 곡선은 눈에 띄게 납작해질 수 있다. 문제는 인프라 비용인데, 예를 들어 2025년 현재 뉴저지 세카우커스 데이터센터의 10랙 정도를 임대하면 연 700만 달러가 넘는다. 슬리피지 이점을 취하려다 더 큰 비용에 치일 수 있다.
조각난 비용의 퍼즐 모아보기
스프레드와 슬리피지는 체스판 위 두 말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투자 성과를 좌우하는 것은 그 둘이 포함된 총 거래 비용(Implementation Shortfall)이다. 이것은 스프레드 뿐만 아니라 슬리피지, 시장 임팩트, 수수료까지 총합해 보여주는 최종적인 손익계산서다.
해당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세 가지 정도를 고려할 수 있다. 첫째, 수수료 구조 혁신이다. 2024년 말 일본 도쿄증권거래소는 중개 수수료를 5bps에서 3bps로 인하했다. 덕분에 단순 매매 전략이라도 명시적 비용이 40% 가까이 절감되었다. 둘째, 다크 풀과 라이팅 풀의 하이브리드 체결이다. 공시 위험을 줄이면서도 가격 개선 기회를 노리는 스마트 주문은 10~25bp 개선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연구되었다. 셋째, AI 기반 실행 알고리즘의 활용이다. 강화학습 모델이 과거 체결 데이터 수백억 건을 학습해하여 호가 스냅샷 → 실행 → 체결 결과의 사이클을 효과적으로 재구성한다.
코인 시장은 또 다른 실험실이다. 유동성을 알고리즘이 곡선 하나로 그려내는 유니스왑의 V4 스타일 AMM은 유동성 제공자(LP)가 곡선 경사를 조정하는 순간 실시간으로 스프레드를 재편한다. 이용자는 슬리피지 허용 범위를 0.05~1%로 직접 지정할 수도 있다. 흥미로운 것 하나는, 일부 펀드들이 헤지 전략으로 슬리피지 차익 수익 모델을 설계하고 있다는 점이다. AMM 풀의 예약 체결 메커니즘 덕분에 타 거래소보다 슬리피지가 유리하게 형성되는 찰나를 포착해 차익을 실현한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자동화만이 완벽한 답은 아니다. 2025년 2월, 기술적인 문제(레이어2 롤업 체인의 컨센서스 지연)로 거래소들의 주문 3만 건이 무더기로 재매칭되면서, 슬리피지 허용 한도 0.5%를 넘어선 체결이 속출하기도 했다. 스마트컨트랙트는 법적인 강제가 아닌 코드화된 룰 정도로 머무르기에 예외 상황에선 사람의 개입 없이는 손실을 제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결국 비용과 관련하여 시장 참여자는 세 가지 질문으로 돌아간다. “얼마나 빨리 체결할 것인가?”, “얼마나 많이 주문할 것인가?”, “얼마까지 비용을 감수할 것인가?” 예전에는 트레이더의 직감과 거래소의 데시벨이 이 해답을 쥐고 있었다. 지금은 서버 팜, 강화학습 알고리즘, 그리고 프로토콜 파라미터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메커니즘은 변하지 않았다. 이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결국 시장이라는 미로에서 비용의 퍼즐을 완성할 한 칸을 찾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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