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안녕하세요. 오늘은 색상이 정치에서 어떤 의미로 쓰이고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뤄보려고 합니다. 특히 ‘빨간색’이 공산주의와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당에서 사용되는 배경,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다양한 논란과 수용 과정을 꼼꼼하게 살펴볼 예정이에요. 이 글을 통해 색상 하나가 가진 상징이 시간과 문화, 그리고 국제정치의 흐름 속에서 얼마나 쉽게 바뀔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 왜 하필 ‘빨간색’이었을까?

빨간색이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색이 된 계기는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노동자와 농민의 ‘피와 희생’을 상징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볼셰비키 혁명 세력이 기존 체제(러시아 제국)을 전복하고 새 국가(소비에트 연방)를 수립할 때, 붉은 깃발이 하나의 ‘투쟁의 아이콘’ 역할을 했죠. 여기서 비롯된 ‘레드(RED)’는 이후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상징색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 “빨갛다”는 상징이 어떻게 미국 공화당의 공식 색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요? 사실 처음부터 공화당이 “공산주의는 싫지만 빨강은 괜찮아”라고 선언한 건 아니었어요.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언론사들이 선거 지도를 쉽게 구분하려고 공화당을 빨간색, 민주당을 파란색으로 통일하여 사용하면서 시작된 ‘우연’에 더 가깝습니다. 그 이전에는 방송사마다 색상 배정이 달랐고, 크게 신경 쓰는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 대선이 워낙 박빙이었던 까닭에 “빨간 주(red states), 파란 주(blue states)”라는 표현이 수백만 번 반복 보도되면서 자연스럽게 각 정당의 색이 굳어져 버린 것이죠.

 

미국 국기에서 빨간색이 용기와 희생을 상징해왔고, 오랫동안 ‘반공’의 최전선에 있던 미국에서조차 "빨간색=공산당"이라는 직접적인 반감이 생기지 않았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오히려 “빨간색은 자유를 위해 흘린 피와 용기의 색”이라는 애국적 관념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공산주의 연계 이미지를 눌러버리고 나름대로 ‘강인함, 투쟁심, 뚜렷한 보수성’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이죠.


❓ 한국 보수 정당은 왜 이 강인한 색상을 선택했을까?

한국에서는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빨갱이’란 말이 공산주의와 연관된 비하 용어로 쓰였기 때문에, “빨간색=공산주의”라는 공식이 거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실제로 보수 정당(과거 한나라당 등)은 한동안 파란색을 상징색으로 활용하면서 반공주의에 기반하여 빨간색 같은 건 쳐다볼 이유도 없다는 분위기를 어느 정도 갖고 있었죠.

 

하지만 2012년 대선 때, 당시 새누리당이 당색을 빨간색으로 교체하면서 큰 변곡점이 생겼습니다. 일부 보수 성향 지지층에서는 “도대체 공산당 색깔을 왜 쓰느냐”는 반발도 있었지만, “보수 정당이 변화·혁신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과 “빨간색은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준다”는 홍보 논리가 더 크게 작용했어요. 정치 마케팅 측면에서 볼 때, 빨간색은 시각적 주목도를 높이고 열정적·강인한 인상을 줍니다. “안정적이고 무난하지만 다소 심심한 파란색”에서 “확실하고 눈에 띄는 빨간색”으로 상징색을 갈아탄 셈이죠.

 

결국 이 전략은 젊은 층과 중도층에게 ‘좀 더 강렬한 보수의 새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고, 대선 승리까지 겹치면서 보수=빨강 구도가 빠르게 고착되었습니다. 이제는 선거철이 되면 TV 화면에서 파란색 선거 운동원들이 진보 정당을 상징하고, 빨간색 물결이 보수 정당을 대표하는 진풍경을 쉽게 볼 수 있어요.


❓ 공산주의 국가에서의 빨간색, 정말 다 똑같을까?

소련에서의 빨간색은 크게 ‘혁명’과 ‘희생’의 이미지가 강했어요. 러시아 혁명의 피어린 투쟁, 노동자와 농민이 세상을 바꿔낸 힘, 그리고 그 힘을 이어받은 국가 권위의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소련이 해체된 후, 러시아에서는 종종 빨간색이 과거를 회고하는 ‘향수’의 정서로 남기도 했죠. 반면에 중국의 경우, 전통적으로도 붉은색을 길상(吉祥)과 축복의 색으로 여겨 왔습니다. 결혼식, 설날, 축하 행사 등에서 이미 붉은 천과 장식을 사용하던 문화가 공산주의 이념과 결합해, “행복과 번영을 주는 당”이라는 이미지를 통합적으로 완성해냈어요.

 

북한도 마찬가지로 빨간색이 조선노동당과 혁명 투쟁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항일 무장 투쟁”과 “미 제국주의에 맞선 전쟁 승리”의 상징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나라마다 역사적·문화적 맥락이 달라 의미도 조금씩 다르게 활용되는 것이죠.


❓ 정치적 색상의 역설: 잘못된 연상과 새로운 해석

색상은 ‘문화적으로 학습된 심리적 기호’이기 때문에, 동일한 색이라도 어디에서, 언제, 누구에게 쓰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빨간색을 보면 공산주의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고, 힘과 열정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으며, 애국심이나 국가 행사(미국 성조기 속 붉은 줄무늬)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어요.

 

때로는 이러한 ‘색의 정치화’가 편견을 낳기도 합니다. 예컨대 빨간색을 정치 슬로건에 쓰는 순간, 공산주의 사상과 꼭 결부되는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의 보수 정당이 이미 빨간색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주요 선거전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은, “색상은 고정된 이념 표지가 아니다”라는 걸 잘 보여줍니다. 바꿔 말하면, 정치적 색상의 의미는 의외로 쉽게 재해석되고, 그 의미 역시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뜻이죠.


❓ 궁금해지는 또 다른 나라의 사례들

유럽 국가들 역시 각 정당이 사용하는 대표 색이 다채롭습니다. 예컨대 영국 노동당은 빨간색 계열을, 보수당은 파란색 계열을 쓰는 것이 전통이에요. 그런데 영국의 빨간색은 ‘노동 계급의 연대’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보수 정당이 사용하는 빨간색과는 맥락이 상반됩니다. 독일 역시 사회민주당(SPD)은 빨간색, 기독민주연합(CDU)은 검정과 오렌지빛을 사용해 구별해 왔어요. 즉, 국제적으로 보면 ‘빨간색=좌파, 파란색=우파’가 보편적으로 더 익숙한 구도이지만, 한국에서는 2012년 이후 정반대의 구도가 성립한 셈이죠.

 

더 흥미로운 점은 특정 지역이나 세대에 따라 색상 인식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냉전 시절 반공 교육을 강하게 받았던 세대에게 빨간색은 여전히 불편한 이미지일 수 있지만, 젊은 세대에게 빨간색은 이제 “그냥 튀고 화려하고 강렬한 색” 혹은 “보수 정당의 이미지” 정도로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이죠.


❓ 정치색을 넘어선 색상 심리학

정치 영역을 벗어나 색상 심리학적으로도 빨간색은 매우 강한 자극을 주는 색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시선이 가장 먼저 포착하는 색 중 하나로, 혈액의 색이기도 해서 ‘생명’과 ‘위험’을 동시에 상징하는 면이 있다고 해요. 의학적으로도 빨간색을 보면 심박수가 조금씩 올라가고, 뇌가 ‘경계 태세’나 ‘흥분 상태’를 준비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스포츠 경기에서 빨간색 유니폼을 입으면 무의식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플레이하게 된다는 얘기도 있죠.

 

한편, 빨간색이 “눈에 잘 띄고 강렬함을 준다”는 점 때문에 광고·마케팅에서는 오래전부터 선호돼 왔습니다. 다만 정치에서 이 색을 쓰는 순간, 특정 이념과 연관된 해석이 덧씌워질 수밖에 없다는 함정이 존재합니다. 결국, 보수 정당이든 진보 정당이든 빨간색을 선택할 때는 “색이 주는 시각적 효과 VS 이념적 상징” 사이에서 고민하고, 그 결과와 반응을 면밀히 살펴야 하죠.


❓ 마무리: 빨강은 빨강일 뿐, 그 너머를 보자

이처럼 하나의 색상이 시대, 문화, 이념, 심리 등의 요소와 뒤섞이면서 다양한 의미로 변주되는 현상은 흥미롭습니다. 처음에는 공산주의 투쟁의 깃발이었던 붉은색이, 미국에서는 보수주의를 상징하게 되었고, 한국에서도 결국 보수 정당의 시그니처 컬러가 되어버렸으니까요.

 

결국 색상은 절대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지는 않으며, ‘어떤 역사를 거쳐, 누가, 언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정치 캠페인, 국가 행사, 사회 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색상이 점점 더 전략적으로 쓰이고 있는 만큼, 그 배경과 맥락을 읽어낼 줄 아는 눈이 중요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