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한복판에 생긴 틈새, 리걸 그레이 존의 얼굴도시 한복판에서 일은 늘 분주하게 일어난다. 불법과 합법의 선은 신호등처럼 빨간불과 초록불로 정확히 나뉘는 부분도 있지만 막상 보면 노란불 구간이 길게 이어지기도 한다. 그 노란불이 바로 리걸 그레이 존이다. 법조문에는 허용도 금지도 또렷하게 적히지 않은 영역이 생각보다 많다. 버스를 기다리다 옆에서 누군가 전동 킥보드를 탄 채 인도와 차도를 번갈아 달리는 걸 보면 이게 맞는지 헷갈린다. 경찰차가 지나가도 그냥 지나친다. 이유는 단순하다. 단속 근거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말들은 하지만, 사실 법은 빠르게 달리는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다. 에어비앤비가 처음 등장했을 때 "집을 빌려주면 불법 숙박업인가?”라는 질문이 빗발쳤다. 허가를 받..
얼어붙은 모래폭풍, 남극남극은 끝없이 펼쳐진 빙하와 찬바람으로만 묘사되곤 했다. 그러나 지리학적으로 남극은 연간 강수량이 250mm 미만인 사막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보통 사막이라 하면 사하라 같은 뜨거운 모래바다를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정작 남극 내부는 공기가 건조하고 비나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다. 표면을 덮은 눈은 수천, 수만 년에 걸쳐 조금씩 내린 눈이 녹지 않았을 뿐이다. 이 초건조 환경의 한복판에선 ‘카타바틱 바람’이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빙하와 맞닿아 서늘해진 공기가 무거워져 언덕을 따라 하강하는 바람인데 여기에는 모래바람 대신 얼어붙은 결정이나 미세한 파쇄암 입자가 휩쓸려 다닌다. 그렇게 사막적 특징은 단순히 더위나 모래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극지 사막이라는 단어가 생소할 수..
오래된 풍요의 환상, 그리고 현실의 균열한국 사회가 몇 번의 경제적 고비와 국제적 갈등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안착했다고들 말한다. 1960년대를 회상하는 목소리에서는 가난했지만 정은 넘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더불어 국가적 목표가 명확했고 온 동네가 아이를 함께 돌봐주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한다. 구체적 통계와 기록을 보면 그 시절에도 사람들이 느끼던 불안이 결코 작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고 필수 물자나 생활 환경도 열악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자녀를 낳고 키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지금과 달리 공동체가 촘촘했고 아이를 기르는 데 따르는 부담이 가족과 이웃으로 분산되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런 과거의 안락함은 다소 미화된 기억에 가깝다. 당시에도 삶은 치열했고 교육 기회나..
스펀지 같은 어린 아이의 뇌붉게 물드는 노을을 보는 아이가 호기심에 가득 차 질문을 퍼붓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왜 하늘은 붉어지는가, 구름은 어디로 가는가, 태양은 언제까지 뜨거운가. 아이의 뇌는 짧은 순간에 스펀지처럼 정보를 흡수하고 또 흘려보낸다. 마치 빗속에서 종이컵을 들고 서 있으면 물이 금세 넘치듯이 아이의 뇌 안에는 수많은 시냅스 연결이 동시에 폭발해 정리 없이 쌓인다. 학자들은 이 현상을 두고 시냅스 가지치기 전 단계라고 부른다.뇌가 모든 자극을 빠르게 잡아채는 덕에 아이는 새로운 단어나 개념을 놀라울 정도로 쉽게 배운다. 하지만 그만큼 유지하기도 힘들다. 발가락으로 종이비행기를 접는 법을 익혔다고 해도 며칠 뒤에는 완벽히 잊어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어른들은 이 과정을 그저 어린아이니까라는..
반짝이는 음식? 식용 금의 세계금이라는 금속은 인류가 발견한 초창기부터 매혹의 상징이었다. 고대 사회에서 금은 단순한 화폐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때로는 태양을 닮은 빛깔로 영원성과 권위를 나타냈고 때로는 신과 소통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왕관이나 성궤, 귀걸이와 반지처럼 역사 속 문화유산을 살펴보면 황금은 어느 곳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이런 역사를 떠올릴 때 식탁에서 금을 맛볼 수 있다는 발상은 놀라움을 준다. 미묘하게 빛나는 금박이 뿌려진 디저트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 진귀한 장면을 오래 기억하게 된다. 초콜릿 표면을 감싸는 얇은 금박 혹은 시럽 위에 살짝 흩뿌려진 금가루가 만들어내는 비주얼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누군가에게는 과시적일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상징적 기쁨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