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궤적을 가두는 모래, 혹은 그 이상하루를 쉼 없이 쪼개는 디지털 시계 옆에 작은 모래시계를 두는 일은 이제 낭만적 취향처럼 보인다. 손안에 스마트폰이 들어온 뒤로 분침과 초침도 잘 안 보는데 하물며 모래시계라니.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래시계는 단순한 골동품이 아니라 독특한 물리적 매개체로서 가치가 높다. 투명한 유리관 안을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가루 입자는 사실 천연 모래보다 균일하게 가공된 유리 비드나 금속 분말일 때가 많다. 균등한 흐름을 위해 습기를 흡수하기 쉬운 자연 모래 대신 정교하게 처리한 인공 입자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고대부터 이어온 전통이라 해서 고집스럽게 사막이나 광산에서 채취한 모래만 담아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흥미롭다.사람들은 왜 모래시계에 정교함을 요구했을까. 항해 ..
낯선 문턱, 투자 철학을 끌어안다하워드 막스라는 이름에는 묘한 아우라가 깃들어 있다. 투자 업계에서 그의 존재감은 단순히 눈에 띄는 몇 번의 딜이나 눈부신 수익률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는 시장 사이클을 꿰뚫어보는 예리함과 투자라는 예술을 바라보는 깊이 있는 통찰을 동시에 지닌 인물로 알려져 있다.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투자 세계에서 막스가 오랜 시간 뿌리내려온 토양은 위험을 관리하면서 수익을 얻는 균형 감각이다. 워렌 버핏도 “하워드 막스가 펴내는 메모는 항상 읽는다”고 했다고 전해진다. 현실적으로 수많은 투자 전략가와 애널리스트가 쏟아져 나온 글을 생산하지만, 막스의 글에는 독보적인 무게가 있다. 이는 단순한 시장 예측이나 기교적 포트폴리오 구성이 아니라 ‘왜 시장이 이 방향으로 움직이는가’를 밝..
위인들도 인정한 걷기의 특별한 효과바쁜 일상 속에서 가볍게 걷고 싶은 충동이 찾아올 때가 있다. 출근길 지하철 대신 한 정거장 정도 미리 내려 걷고 싶어지는 순간, 혹은 머릿속이 어지러울 때 휴대전화를 잠시 무시하고 바깥 공기를 마시며 한 바퀴 돌고 싶을 때. 이 사소한 선택이 삶의 방향을 바꿀 만한 크고 작은 ‘통찰’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흥미롭다.걷기는 몸을 움직인다는 기초적인 정의에서 벗어나 머릿속을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등 뇌를 활성화한다. 몸이 다소 자동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숨 가쁘지 않기에 생각이 흘러가도록 열어두는 여백이 생기기 때문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산책 학파(페리파토스)에서 걸으며 강의를 했다는 사실이나 독일 철학자 칸트가 매일 같은 코스를 느긋하게 걸으며 사유를 정련했다는..
왜 감정도 진통제를 필요로 할까?머리가 아플 때, 허리가 삐걱거릴 때, 우리는 손쉽게 약국에서 진통제를 구한다. 그런데 마음이 흔들리고, 누군가에게서 받은 상처가 가슴에 쑤실 때도 진통제가 통할까? 놀랍게도 일부 연구에서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이 감정적 통증까지 완화한다고 보고했다. 거절당했을 때의 마음 아픔, 죄책감, 외로움 같은 감정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타이레놀이 사랑의 상처까지 꿰매는 만능 약이라는 결론이 나온 것은 아니다. 실제로 정확한 기전이나 연구 규모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효과가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왜 그런지는 연구원들도 아직 모른다. 다만 신체적 통증과 심리적 고통이 뇌에서 일부 겹치는 부위를 활성화한다는 사실이 핵심 단서로 꼽힌다. 관련하여 거절의 아픔이..
어느 날 누군가와 톡을 주고받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번 만나자”라는 문장이 화면에 보였을 때, 문득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이 문장을 “한 번 만나자”로 써도 맞는 말일까.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전혀 다른 뉘앙스를 주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어에서 “한번”과 “한 번”의 간극은 발음으로 구분되지 않는 탓에 더 그렇다. 규범에서 제공하는 품사적 구분과 실제 언중이 느끼는 언어적 직관 사이에 긴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문법적 차이가, 오늘날 정보화와 AI 시대를 만나며 새로운 의미가 되기도 한다. 과연 이 미묘한 차이는 어디에서 왔고, 우리 언어생활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까.왜 이렇게 헷갈리게 만들어 놨을까?국립국어원의 표준 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