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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너머의 통찰

운과 실력의 경계가 흐려지는 건 인간의 습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이클 모부신의 ‘운 + 실력’ 공식은 처음 접하면 당연해 보이지만, 막상 투자나 트레이딩 현장에 뛰어들면 머릿속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다. 그저 오늘 주가가 급등했다는 사실만 존재한다. 본인은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이런 착시는 종종 깊은 함정을 준비한다.

 

투자는 순간적인 승패보다도 긴 여정을 다룬다. 일정 기간 운이 좋게 작용해 기대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고 해서 나의 전략 전체가 완벽하게 검증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문제는 수익과 실력을 동일시하는 오판이 쌓이고, 어쩌다 맞아떨어진 성공에 취해 의사결정 과정이 점차 이성적 통제에서 벗어난다는 점이다.

 

마이클 모부신이 말했듯, 실력이 작용할 수 있는 영역과 순전히 운에 의해 결정되는 영역 사이의 지형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정교한 투자 기법을 갖췄다고 자부해도 실제 시장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이벤트가 늘 벌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성과를 내는 투자자는 대부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요소를 최대한 관리하고 나머지를 운으로 간주해 일정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지닌다.

 

이는 비단 트레이딩 시장에만 통하는 룰은 아니다. 스포츠 선수의 기량, 예술가의 영감, 심지어 하루하루의 직장 생활에도 운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성과가 좋았다고 모든 것이 내 덕이라는 섣부른 믿음은 지나친 자기중심주의로 이어지고 한 번의 실패만으로도 회복하기 어려운 심리적 충격을 유발한다. 모부신은 이를 “결과 편향의 함정”이라 부르며 실력과 운을 분리하는 노력이야말로 성과의 진짜 근원을 파악하는 열쇠라고 강조한다.


전략의 과정을 기록하고 점검하라

투자 분야에서 운과 실력을 구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록이다. 모부신이 거듭 강조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인간은 결과가 좋으면 과정을 잊고 결과가 나쁘면 과정을 곱씹으며 괴로워하기 쉽다. 이 악순환을 피하려면 결과와 관계없이 트레이딩 과정 자체를 꼼꼼히 적어두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특정 종목을 매수하거나 매도할 때,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논리와 데이터를 구체적으로 메모한다. 그리고 목표한 손익 비율, 진입 및 청산 조건, 해당 결정을 뒷받침했던 시장 지표, 나아가 당시 감정 상태까지 기록한다면 더욱 좋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는 곧 자기 성찰의 재료가 된다.

 

운에 기댄 매매였는지, 아니면 근거가 분명한 전략을 수행했는지 구분하기 위해서는 재현 가능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번에는 큰 수익을 냈으니 문제없다는 태도만으로는 한계를 알 수 없다. 운에 의한 일시적 수익일 뿐이라는 반증이 언제든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록을 바탕으로 곰곰이 돌아보면 잦은 감정 개입이나 시장 루머에 흔들리는 순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본인이 애초에 세운 룰을 지키지 않고 무분별하게 진입·청산을 반복했다면 결국 그 과정을 실력이라고 부를 순 없다. 단기적 행운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분석 없이는 비슷한 오류가 계속 재현된다. 반면 손실이 나더라도 의사결정이 기록해둔 전략대로 이뤄졌다면 과감히 실패를 감수하며 학습할 가치가 있다. 운이 따라주지 않아 생긴 손실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살아남는 투자자들은 대체로 이 과정을 진지하게 실행한다. 수익을 냈어도 결정 과정에서 과신은 없었는지를 반성하고 손실을 봤어도 전략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곱씹는다. 그렇게 운과 실력을 분리하는 훈련을 지속하면서 장기적으로 운의 노이즈를 걸러내고 실력을 축적한다.


운을 수긍하는 용기, 실력을 갈고닦는 겸손

모부신의 통찰에는 역설적 대목이 존재한다. 운이 대거 개입하는 영역일수록 더 철저하게 실력을 갈고닦아야 한다는 점이다. 언뜻 보면 운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실력이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오히려 운이 판치는 분야일수록 작은 실력 차이가 누적되어 큰 격차를 만든다.

 

예를 들어 카지노에서의 게임은 운의 영향이 지배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통계적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은 잃더라도 적게 잃고 이길 때 크게 이길 수 있는 확률적 접근 방식을 채택한다. 아무리 도박이 운으로 결정된다고 해도 그 운을 적극적으로 통제하거나 최소화하는 방법이 있으며 이러한 실력의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각종 운에 맞서기 위해서는 확률, 통계, 거시경제의 흐름, 심리 편향 등에 대한 준비가 중요하다. 의사결정이 체계적으로 작동하도록 시스템을 마련하고 일관된 규칙 안에서 자신을 시험한다. 모든 것이 운이라 여기며 무책임하게 행동하기보다 운과 실력을 분리하려 애쓰는 태도가 바로 미래 성과의 기반이 된다.

 

운을 온전히 제거할 수는 없으나 운으로 인한 오해나 왜곡을 없애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것은 한 편으로는 겸손의 문제이기도 하다. 예측 불가능한 시장에서 잠시 거둔 성공을 자신의 재능 전부로 돌리지 않고 운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운을 인정하는 태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제한적 힘을 인식하게 만들고 그 한계를 보완하는 실력의 영역을 더욱 공고히 다지도록 돕는다.

 

결국 마이클 모부신의 조언은 투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통찰은 팀 프로젝트, 예술 창작, 스포츠 경기 등 결과에 목매는 모든 영역에서 빛을 발한다. 운의 영향이 큰 환경일수록 의사결정 과정을 구조화하고, 운으로 귀결될 부분과 실력으로 구축할 부분을 냉정히 분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걸 바탕으로 일관성과 재현 가능한 근거가 뒷받침되면, 비록 당장은 손실이나 실패로 보일지라도 장기적으로 높은 확률의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

 

조금만 성찰해보면, 스스로 놓치고 있던 허점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성공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쉽고 잘못된 교훈을 학습하게 된다. 재정적 손실을 떠나, 결과 편향의 덫에 걸린 투자자나 조직은 다음 번 거대한 변동장세에 급격히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운을 인정하되 실력을 갈고닦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모부신이 제안한 핵심 메시지다. 무작정 매매로 이룬 작은 성공을 스스로의 능력이라 자랑하기보다는 그 속에 어떤 운이 작용했는지를 살펴보며 동시에 나의 전략적 판단이 일관되게 유지되었는지를 성찰하는 행위. 여기에 본질적인 투자자의 자세가 깃들어 있다.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는 이유, 성공해도 자만하지 않는 이유가 모두 여기서 출발한다. 운의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서 있으려면 결국 자신만의 투명하고 재현 가능한 의사결정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운과 실력을 구분해내고 운의 세찬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을 전략의 기틀을 마련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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