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시장은 심플하다, 복잡한 건 마음이다. morgan021 2025.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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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보조지표에서 하나씩 끄니 선만 남아
아무것도 없는 캔버스처럼 비어 있는 화면 위에 첫 캔들이 뜬 순간, 시장은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간다. 19세기 후반 찰스 다우가 테이프의 숫자를 바라보며 “가격은 모든 것을 담는다”고 선언했을 때조차, 우리는 여전히 무엇이 가격을 움직이는지 궁금해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넘도록 수천 개의 지표가 등장했고 컴퓨터는 빛의 속도로 신호를 토해냈다.
그런데 익숙한 화면에서 지표를 하나둘 지우고 나면, 차트는 뜻밖에도 더 선명해진다. 색이 사라진 자리엔 거래량이 남고 짙은 음영의 추세선이 방향성을 정렬한다. 토마스 불코우스키가 「Chart Pattern Review」 연재를 통해 파동이 자주 그리던 섬(Island Tops & Bottoms)을 수집하던 순간이나, 알렉산더 엘더가 『Trading for a Living』에서 트리플 스크린을 도식화하던 순간 모두 이 단순한 선과 캔들을 복잡한 인간 심리를 꿰뚫는 도구로 활용하였다.
가격 움직임이라는 원초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매매하는 프라이스 액션(Price Action)은 현장에서 매수·매도 버튼을 누른 트레이더의 종합적 숨결을 읽는 일이다. 핀바 캔들의 가느다란 심지가 보여 주는 건 망설임, 장악형 캔들의 넓은 몸통이 보여 주는 건 마침내 터진 결단이다. 한 트레이더가 지표를 꺼내려 할수록 차트가 내게 말을 건다고 고백했듯이 우리는 이 간결한 산문에 귀 기울일수록 데이터를 넘어서 정서까지 읽는다.
하지만 시장은 예측할 수 없는 폭풍우와 같다. 지지선이라 부르던 평원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추세라 믿은 강물은 예고 없이 물길을 바꾼다. 그런 페이크는 희망 회로를 태우며 차가운 선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엘더는 세 번의 필터링을 거치는 트리플 스크린을 제안했다. “장기 조류를 먼저 확인하라, 중기 파도를 기다려라, 단기 잔물결에서 들어가라.” 조류, 파도, 물결의 비유는 바다를 보며 자란 의사 출신 저자의 삶과 맞닿아 있다.
세 번째 물결을 넘어, 네 번째 스크린이 들려준 이야기
엘더가 세 개의 스크린으로 열었던 창을 누군가는 네 개로 확장하고 싶어 한다. 분기(Quarterly) 봉을 열어 보면 해당 종목의 장기 체력이 콘크리트처럼 두껍게 다져진 움직임 속에 숨어 있다. 초장기 프리 스크린이라 부르는 이 단계는 주간, 일간, 시간 기반 스크린 위에 겹겹이 올려지는 투명 보호막과도 같다.
그러나 보호막은 무게를 가져온다. 흰 종이에 네 개의 시간 층위를 그어 놓고 보면, 기회는 마치 체에 걸린 모래처럼 빠져나간다. 부지런히 조건을 추가할수록 승률은 오를지 몰라도 연간 거래 수는 줄어드는 단점이 있다. 데이 트레이더라면 놓친 기회 탭에 배치된 빨간 숫자들이 스트리밍처럼 올라가는 광경을 견뎌야 한다. 그러면 이 초장기 흐름을 무시해도 될까?
2023년 봄, 한 외환 트레이더는 달러·엔(USD/JPY)을 다루며 이 쿼드 스크린 전략을 실험했다. 그의 연구 노트엔 분기차트 300일 이동평균선 위·아래를 가르는 두꺼운 색연필 선이 먼저 그려져 있었다. “위쪽이면 매수 준비, 아래쪽이면 매도만 고려”라는 간단한 문장을 그는 룰이라 불렀다. 그리고 4개월 뒤, 그의 승률 그래프는 60%에서 78%로 점프했다. 그러나 월간 거래 횟수는 120회를 겨우 넘겼다. 길어진 기다림만큼 수익곡선은 완만해졌다.
쿼드 스크린은 엘더의 바다에 심해 탐사정을 하나 더 넣는 일에 가깝다. 새벽 다섯 시, 심해의 수온을 재기 위해 센서를 던지면 표면의 파도는 잠잠해도 해저에서는 미세한 난류가 맴돈다는 걸 알게 된다. 선박을 움직이는 선장은 종종 이 데이터를 노이즈라 부르지만 깊은 바다를 건너야 하는 잠수정 조종사에겐 생존선이다. 트레이더 역시 그렇다. 연간 손익곡선이 롤러코스터를 그리는 해에는 작은 변동에도 흔들리지 않는 초장기 스크린이 나침반이 된다.
그러나 그 나침반이 모든 상황에 절대적이라고 오해하면 또한 안 된다. 2020년 3월, 코로나19라는 이름의 변이가 세계 증시에 패닉을 퍼뜨렸을 때 분기차트는 레이더에 초록불을 켠 채 넋 놓고 있었다. 반면 4시간 스크린은 무력감에 찬 매도 물결을 시시각각 기록했다. 이 충돌은 트레이더에게 질문을 남긴다. 큰 추세를 믿어야 하는지 아니면 작은 추세를 믿어야 하는가를 말이다. 우리는 흔히 상위 프레임 우선 원칙을 거론하지만, 그 원칙은 예외조차 품는 성숙한 원칙이어야 한다. 데이터 엔지니어라면 이럴 때 가중 합산 같은 방식을 들이밀지만 가중치를 정하는 순간 우리는 다시 인간적 직관의 영역으로 빠져드는 오류를 안게 된다.
그래서 쿼드 스크린을 꿈꾸는 이들은 두 갈래 길목에 선다. 첫째 길은 조건을 더 두텁게 쌓는 것이다. 분기차트에 EPS 성장률, 매출 모멘텀 같은 펀더멘털 확인을 위한 추가 필터링을 활용하면서 주간 스크린에서는 변동성 지수에 집중하는 것이다. 정교함이 중요하기에 계산은 복잡해지고 백테스트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둘째 길은, 정반대로 장기 스크린을 레퍼런스로서 보기만 한다. 물놀이 시작 전 바다 수온을 손등으로 찍어 보는 정도의 의식. 초장기 흐름을 대략 가늠하되, 최종 결단은 여전히 트리플 스크린의 손에 남기는 방식이다.
안타깝게도 각 전략의 장단점이 있기에 완벽한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시장은 유동하는 유기체이고 스크린은 그 신경망에 꽂힌 전극이다. 결국 그 스크린 개수는 트레이더가 감당할 수 있는 두려움과 욕망을 보여주는 임시 방편이다. 숫자가 셋이든 넷이든, 가격 그 자체가 힌트를 속삭인다는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프라이스 액션을 사랑하는 이들이 지표의 안락함을 거부하고 다시 빈 화면을 택할 때, 그들은 해석을 타인에게 위임하는 것을 저버리고 직접 책임지는 생존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이 방식은 두렵고도 고단하지만 동시에 자유롭다. 자유는 불완전함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우리가 시장과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 가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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