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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짜리 비싼 트레이딩 교육?
1.5초면 차트 분석 끝

직감은 맥박이 들려주는 비트였다?

과거 로이터 사진 속 시카고 선물거래소의 피트(pit)에서는 이따금 단어 대신 손짓과 외마디 함성으로 가득 찼다. 파란 조끼를 입은 중개인들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현하고, 순간적으로 가격이 튀면 욕설과 환호가 뒤얽힌다. 언듯 보면 원시적인 광경이지만 이 아드레날린 범벅의 소음 아래에는 놀랍게도 매우 아날로그한 신호가 숨어 있다. 심장 박동이다.

 

2016년 네이처 자매지 Scientific Reports에 실린 「Interoceptive Ability Predicts Survival on a London Trading Floor」는 18명의 런던 파생상품 트레이더를 데려다 심장 박동 인지 능력(HDS, Heartbeat Detection Score)을 재고, 그 결과를 일일 손익, 누적 수익, 생존 연수와 비교했다. 결론은 단순했지만 파격적이었다. 자신의 맥박을 더 정확히 세는 사람일수록 더 오래, 그리고 더 많이 벌었다. HDS 하나로 수익 순위 분산의 22% 이상, 시장 생존 기간의 34%를 설명한다는 회귀계수가 나왔으니, 흔히 말하는 운빨과 분석력이 승부를 가른다는 전통 서사에 금이 갔다.

 

하지만 여기서 섣부른 인과관계 도약은 금물이다. 해당 연구가 제시한 것은 상관관계이며, “심박 세기 훈련을 하면 주식계의 워런 버핏이 된다”는 식의 처방전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통계가 왜 월가의 베테랑들이 직감(gut feeling)을 입버릇처럼 말했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흥미롭게도, 파나마 운하처럼 협소한 뇌와 몸의 경로들을 파헤치던 신경과학자들은 이미 1990년대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체성 표지자 가설을 통해 비슷한 힌트를 냈다. 눈앞의 숫자 대신 손바닥 땀, 가슴 두근거림, 위장 수축 같은 생리 신호가 좋거나 나쁜 결정을 미리 표시한다는 이야기다. 아이오와 도박 과제(IGT)에서 좋은 덱을 고르기 전에 피부 전도도가 이미 요동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런던 트레이더 논문은 이 실험실 증거를 실제 공포와 탐욕이 뒤섞인 마켓에까지 확장한 필드 버전이라 볼 수 있다.

 

한 옵션 딜러는 이렇게 말했다. “숫자는 차트에 다 나오죠. 문제는 숫자 사이 공백을 보느냐예요. 저는 포지션이 틀릴 때 미세하게 숨이 가빠지는 걸 느끼면 그게 손절 타이밍이라는 신호가 됩니다.” 그의 설명은 과학 논문이 아닌 단순 경험담이지만, 인터로셉션(interoception, 신체 반응 인지)이라는 단어를 모른 채 삶으로 터득한 셈이다.

 

한편 비판도 만만치 않다. 표본이 18명에 불과해 일반화하기 어려우며, HDS 검사가 실제로 인터로셉션 정확도를 온전히 반영하는지에 대한 방법론 논쟁도 뜨겁다. HDS 점수를 올리는 연습이 특별한 효과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니 맥박 세기 명상을 트레이딩 교육 항목으로 넣기 전에, 우선은 통계가 보여 주는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곱씹을 필요가 있다.


숫자와 직감 사이의 메커니즘, 찾아낼 수 있을까?

월가 출신으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 Coates는 “시장에 오래 남은 자는 뇌가 아니라 내장이 빅데이터를 먼저 읽어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인터로셉션이 트레이딩에서 선행지표 역할을 한다면, 기업들은 당장 인사평가 시트를 고쳐야 할까? 인사 담당자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인성, 코딩, 직무 지식만으로도 면접이 과포화인데 여기에 심박 테스트까지 얹자는 건가?

 

실제 사례는 복합적이다. 미국 거대 증권사 몇 곳은 리스크 관리 교육에 바이오피드백 세션을 시범 도입했다. 예를 들어, 고주파 심박 변이도(HRV)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극단적인 스트레스에 놓인 바이어들에게 10초 호흡법을 적용하게 하는 식이다. 초기 결과는 스트레스 지표 감소 정도만 확인됐고, 손익 개선 효과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다. HRV가 HDS와 동일 개념은 아니지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사례도 있다. 영국의 한 사설 트레이딩 회사는 면접 마지막 단계에서 지원자에게 포커 게임을 시킨다. 상대의 미묘한 표정 변화, 손 떨림, 말투 등을 읽어 리스크 대비 기댓값을 재빨리 계산하는 시험이다. 포커는 인터로셉션 자체를 측정하진 않지만, 무의식적 단서를 포착하는 감각이 수익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믿음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맥박 세기 훈련은 어떨까? 브라이턴 대학 팀은 불안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3주간 햅틱 피드백 기반 심박 카운팅 세션을 실시했더니 HDS 점수가 평균 12% 상승했다. 불안 증세는 완화됐지만, 금융 실적과의 연결 고리는 특별히 연구되지 않았다. 상관 관계에 오묘한 부분이 있어서일까, 심박을 더 잘 맞춘다는 것이 더 정확히 감정을 읽는다는 뜻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심박을 정확히 세는 훈련은 주의 집중, 기억 전략, 계산 요령의 산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심장과 두뇌 사이 회로가 실제로 깔렸는지 아니면 시험 요령을 익혔는지 구분하기 어렵다.

 

정리하자면, HDS가 높은 트레이더가 평균적으로 더 오래 살아남았다는 결과는 위험 감수와 생존 편향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다. 시장에서 호흡이 긴 사람일수록 자연히 노하우가 쌓이고 손실을 견딜 자본력도 클 수 있다. 또 해당 연구에서는 단기 변동성에 노출된 고빈도 옵션 트레이더를 표본으로 삼았는데, 장기 가치투자 펀드매니저에게도 같은 법칙이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체성 표지자는 시간 압박이 극심할 때 더 빛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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