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기 위해 태어난 보석, 폴더블폰 morgan021 2025.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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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계를 상자에서 꺼내는 순간의 경건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떨어뜨리고, 막 다루고, 물에 빠뜨려도 괜찮은 시대를 살았다. 기술의 발전은 곧 내구성의 역사였고, 사용자는 주머니 속 검은 사각형이 총알이라도 막아줄 듯한 맹목적인 신뢰를 쌓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인류의 기술이 정점에 달했다는 듯 홀연히 나타난 폴더블폰은 이 모든 믿음을 배신했다. 인류는 다시 휴대폰을 솜털처럼 다루던 20년 전의 과거로 회귀했다. 화면을 펼칠 때마다, 주머니에 넣을 때마다 우리는 기도한다. 모래알 한 톨 들어가지 않기를, 너무 꽉 쥐어 멍들지 않기를. 미래적인 외형과 가장 원시적인 불안감의 공존. 이 기묘한 퇴행은 과연 기술의 한계일까, 아니면 치밀하게 계산된 성공 전략일까.
완벽함의 저주, 고장 나지 않는 기계는 팔리지 않는다
이야기는 스마트폰이 더 이상 발전할 곳이 없던 시점에서 시작된다. 방수방진은 기본 사양이 되었고, 웬만한 충격은 우습게 견뎌내는 강화 유리가 화면을 지켰다. 스마트폰은 완벽한 도구가 되었지만, 제조사에게 완벽함은 저주와 동의어다. 고장 나지 않고 3년, 4년을 거뜬히 버텨내는 스마트폰은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죽은 고객'을 양산할 뿐이다. 교체 주기는 길어지고, 시장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혁신은 멈췄고, 소비자들은 더 이상 새 스마트폰을 갈망하지 않았다. ‘더 빠른 프로세서’, ‘더 좋은 카메라’라는 주문은 힘을 잃었다. 제조사들은 이 교착 상태를 타개할, 즉 멀쩡한 기존의 것을 구식으로 만들고 새로운 것을 갈망하게 할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그들이 내놓은 답은 역설적이게도 ‘완벽함의 파괴’였다. 그들은 기술을 후퇴시킨 것처럼 보이는 가장 진보한 형태의 물건을 만들어냈다. 바로 폴더블폰이다. 이 기계는 처음부터 견고함을 목표로 설계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필연적으로 약점을 가질 수밖에 없는 ‘힌지’와 ‘접히는 화면’을 품고 태어났다. 이것은 기술적 한계에 대한 타협이 아니라, 시장을 구원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심장이었다. 고장 나지 않는 견고한 벽돌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섬세하고 연약한 보석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의도된 약점, ‘관리의 대상’이 된 하드웨어
폴더블폰을 소유하는 것은 기계를 사용하는 경험이라기보다, 값비싼 혈통의 애완동물을 기르거나 예민한 기계식 시계를 관리하는 경험에 가깝다. 그 약점들은 명확하고 또렷하다.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는 미세한 주름은 이 기계가 언젠가 접히는 부분을 따라 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운명을 암시한다. 수만 번의 개폐를 견딘다는 광고는, 반대로 말하면 개폐 횟수에 ‘수명’이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힌지 사이의 미세한 틈은 언제나 이물질의 침투 가능성을 열어둔다.

이 모든 약점은 사용자에게 끊임없는 불안과 긴장을 선사한다. 그리고 바로 그 긴장감이 폴더블폰을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막 다루는 공산품이 아니라, 애지중지 관리해야 하는 ‘작품’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제조사들은 이 약점을 ‘결함’이라 부르지 않는다. ‘제품의 특성’이라고 말한다. 이 교묘한 언어의 전환을 통해, 내구성의 책임은 제조사에서 사용자에게로 은밀하게 이전된다. 이제 고장은 사용자가 ‘관리를 소홀히 한’ 결과가 된다. 이로써 제조사는 두 가지를 동시에 얻는다. 하나는 사용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는 명분, 다른 하나는 그 경험의 대가로 수리비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수리비라는 이름의 구독료, ‘케어+’라는 이름의 세금
결국 모든 폴더블폰 사용자는 필연적으로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비싼 돈을 내고 사설 보험 격인 ‘케어 프로그램’에 가입하거나, 언젠가 닥쳐올 막대한 수리비를 감당할 각오를 하거나. 이것이 바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 ‘구독형 하드웨어’의 실체다. 기기값은 일종의 가입비다. 진짜 수익은 그 이후부터 발생한다.
화면을 한번 교체하는 데 드는 비용은 어지간한 중저가 스마트폰 한 대 값이다. 사용자들은 이 엄청난 수리비를 피하기 위해 매달 보험료를 납부한다. 결국 폴더블폰 사용자는 기기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월세를 내고 사용하는 것과 같은 처지가 된다. 하드웨어의 감가상각 위험을 고스란히 사용자가 떠안는 구조다. 제조사는 더 이상 기기를 파는 것만으로 수익을 내지 않는다. 그들이 판매한 기기가 고장 나기를 기다렸다가,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파손을 막아주는 보험 상품을 팔면서 지속적으로 돈을 번다. 한번 팔고 끝나는 관계가 아니라, 사용자의 지갑에 영구적인 자동이체 라인을 연결하는 것에 가깝다.
더욱 교묘한 것은 그 다음 단계다. 막상 수십만 원의 수리비 청구서를 받아 든 사용자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이 돈을 내고 1년 쓴 낡은 폰을 고칠 것인가, 아니면 조금 더 보태서 ‘힌지 내구성이 개선되었다는’ 신제품으로 갈아탈 것인가. 대부분의 선택은 후자로 기운다. 구형 모델의 취약성은 그렇게 신형 모델의 가장 강력한 구매 촉진제가 된다. 파손된 당신의 폰은 슬픈 실패작이 아니라, 다음 세대 제품의 판매를 위한 가장 완벽한 마케팅 도구였던 셈이다.
부서짐으로써 완성되는 비즈니스
폴더블폰의 약점은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시장 포화의 위기를 돌파하고, 소비자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 설계한 가장 정교한 형태의 ‘계획적 구식화’다. 견고함으로 무장했던 스마트폰 시대를 종식시키고, 연약함을 무기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사용자는 미래를 손에 쥔 듯한 착각에 빠지지만, 실제로는 제조사가 설계한 수익의 굴레 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구독자가 될 뿐이다.
결론적으로 폴더블폰은 한번 팔고 끝나는 제품이 아니다. 구매, 보험 가입, 수리, 그리고 신제품으로의 교체라는 사이클을 통해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영리한 플랫폼이다. 우리는 화면을 접는 그 숭고한 행위에 감탄했지만, 정작 그 행위가 접고 있었던 것은 우리의 지갑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아름다운 보석은 부서짐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그 파편 위에서 거대한 비즈니스는 완성된다.
< 3줄 요약 >
[1] 폴더블폰의 취약한 내구성은 의도된 설계이며, 이는 새로운 수익 모델을 위한 핵심 전략이다.
[2] 높은 수리비와 보험 상품은 기기 판매 이후에도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구독형 하드웨어'를 만든다.
[3] 결국 내구성 문제는 사용자가 수리 대신 신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가장 강력한 마케팅 도구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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