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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오래된 사진 편집 프로그램 하나가 있었다. 지금의 화려한 앱들처럼 인공지능이 알아서 피사체를 골라주거나 하늘을 바꿔주는 재주는 없었다. 대신, 투박하지만 정직한 도구들이 손에 익숙하게 잡혔다. 미세한 색온도를 조절하기 위해 슬라이드 바를 아주 천천히 움직일 때의 감각, 특정 영역을 선택하기 위해 ‘올가미 도구’로 숨을 참아가며 경계선을 그리던 순간들. 그 프로그램은 내게 단순한 소프트웨어가 아니었다. 내 디지털 사진에 대한 철학이자, 수만 번의 클릭으로 쌓아 올린 나만의 작은 성채였다. 그 안에서 나는 창조주이자 노동자였고, 결과물은 온전히 나의 시간이자 노력이었다.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새 노트북을 장만하면서부터였다. 얇고 가벼우며, 팬 소음 하나 없이 하루 종일 간다는 그 기계는 미래에서 온 물건처럼 느껴졌다. 나는 가장 먼저 나의 오랜 친구, 그 사진 편집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설치는 순조로웠다. 익숙한 아이콘이 화면에 떠올랐을 때 나는 안도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순간, 아주 미세한 위화감이 나를 감쌌다. 늘 즉각적으로 열리던 창이 아주 잠깐, 1초도 안 되는 시간을 망설였다.

그것은 불길한 전조였다. 프로그램은 작동했지만, 예전의 그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한 박자씩 느렸다. 브러시로 칠을 하면 화면에 반영되기까지 찰나의 지연이 있었고, 필터를 적용하면 진행 막대가 예전보다 더디게 움직였다. 처음에는 기분 탓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명확한 신호를 보내왔다. 늘 차갑고 고요하던 노트북의 하판이 처음으로 미지근하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아주 작은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화면 우측 상단의 배터리 아이콘이었다. 자유의 상징과도 같던 그 숫자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고작 사진 몇 장을 편집했을 뿐인데, 남은 시간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나의 오랜 친구는, 나의 새로운 노트북을 병들게 하고 있었다.

네이티브가 아니면 죄악이 되는 시대

그제야 나는 내 오랜 친구가 이 새로운 세계에서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 노트북은 ARM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소통하는데, 나의 옛 프로그램은 x64라는 낡은 언어만을 구사할 줄 알았다. 노트북은 이 옛 언어를 알아듣기 위해 ‘에뮬레이션’이라는 통역사를 중간에 세워야만 했다. 모든 소통은 이 피곤한 통역 과정을 거쳐야 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었다. 내 노트북이 내뿜던 열기와 팬 소음, 급격히 소모되던 배터리는 바로 그 통역사가 흘리는 땀이자 비명이었다.

과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노트북을 늘 전원에 연결해 사용했고, 팬 소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상시 연결’과 ‘긴 배-터리’의 쾌적함을 이미 학습했다. 이제 사용자들은 더 이상 느리고, 뜨겁고, 시끄러운 앱을 용납하지 않는다. 배터리를 눈에 띄게 소모시키는 앱은 바이러스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다. ‘네이티브가 아니면 죄악’이 되는 시대, 효율성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

더욱 근본적인 변화는 NPU, 즉 인공지능 칩의 등장이었다. 새 시대의 프로그램들은 NPU와 직접 소통하며 마법 같은 일들을 해내기 시작했다. 사진 속 머리카락 한 올까지 순식간에 골라내고, 영상 통화 중에 내 눈동자를 바라보도록 실시간으로 시선을 교정해 주었다. 나의 옛 친구는 이런 새로운 언어를 배울 능력 자체가 없었다. 통역사를 거치는 것만으로도 벅찬 그에게 AI라는 새로운 대화법은 외계어와 같았다.



진화하거나, 혹은 잊히거나

결국 나는 그 오래된 사진 편집 프로그램을 삭제해야만 했다. 그것은 슬픈 작별이었다. 나는 프로그램을 탓하지 않았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을 뿐이다. 새로운 환경은 너무나 조용하고, 효율적이며, 똑똑했다. 그 세계에서 통역사를 대동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나의 오랜 친구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수많은 개발사들이 내가 겪은 딜레마와 마주하고 있다. 그들의 손에는 수백만 명이 사랑하는, 그러나 낡은 x64 언어로 만들어진 소중한 프로그램들이 들려 있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 두 가지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프로그램을 ARM/NPU라는 새로운 언어로 다시 쓰는 ‘진화’의 길을 택하거나, 혹은 에뮬레이션이라는 비상 탈출 보트에 태운 채 서서히 느려지고 뜨거워지며 사용자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현상 유지’의 길을 걷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와도 같다. 환경이 변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종만이 살아남는다. ‘소프트웨어 대멸종’은 누군가의 악의가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기술 진화의 과정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수많은 프로그램들은 에뮬레이션이라는 고립된 섬 위에서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다 조용히 사라져 갈 것이다. 그 섬은 죽음의 장소는 아니지만, 혁신이 멈추고 새로운 세대와 단절된, 쓸쓸하고 고립된 공간이 될 것이다. 이제 어떤 프로그램의 생존 여부는 그것이 얼마나 훌륭한 기능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언어와 얼마나 유창하게 대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 3줄 요약 >
[1] ARM/NPU 기반의 새 노트북 시대는 과거 x64 프로그램들과의 결별을 의미하며, 이는 ‘에뮬레이션’이라는 비효율적 통역 과정 때문이다.
[2] 사용자들은 긴 배터리 시간과 AI 기능 등 네이티브 앱이 제공하는 월등한 경험에 익숙해져, 느리고 비효율적인 에뮬레이션 앱을 더는 용납하지 않는다.
[3] 결국 소프트웨어들은 ARM/NPU 네이티브로 진화하거나, 에뮬레이션 환경에서 서서히 도태되는 ‘대멸종’과 유사한 생태계 재편을 겪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