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 구조를 뜯어보면 참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 같지만, 생존을 위해 설계된 우리의 유전자는 행복 따위에는 큰 관심이 없다. 원시 시대의 초원에서 꽃향기를 맡으며 행복해하는 건 생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 뒤에서 다가오는 맹수의 발소리를 듣지 못해 죽을 확률만 높일 뿐이다. 그래서 인류는 '긍정적인 자극'보다는 '부정적인 자극'에 월등히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부정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부른다.

현대 사회라고 다를까? 천만에. SNS 타임라인을 보라. 누군가가 로또에 당첨되었다거나 승진했다는 소식에는 영혼 없는 '좋아요' 하나가 찍히고 끝난다. 배 아픈 질투심이 섞인 침묵만이 흐른다. 하지만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이물질이 나왔다"거나 "어떤 연예인이 학창 시절 폭력을 휘둘렀다"는 소식이 올라오는 순간, 반응은 폭발적이다. 뇌의 편도체가 비상벨을 울리기 때문이다. "이건 위험해", "이건 잘못됐어", "이건 바로잡아야 해".

이 원초적인 경보 시스템이 작동하면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못한다. 옆 사람을 찔러서라도 이 사실을 알려야 직성이 풀린다. 행복은 혼자 음미하는 차 한 잔이지만, 분노는 광장에 뿌려지는 휘발유다. 마케터나 콘텐츠 제작자가 이 지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예쁜 이미지를 만들어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배경 화면만 양산하게 된다. 바이럴의 핵심은 감동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 그리고 그 반응의 가장 강력한 트리거는 언제나 분노다.

'좋아요'보다 강력한 트리거: "이건 말도 안 돼!"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이 가장 사랑하는 지표는 무엇일까? 단순 조회수? 체류 시간? 다 중요하다. 하지만 콘텐츠의 생명력을 결정짓는 유일한 신은 '공유(Share)'다. 알고리즘은 공유되는 콘텐츠를 왕좌에 앉힌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언제 공유 버튼을 누를까.

생각해 보라. 당신이 마지막으로 단체 대화방에 링크를 퍼다 날랐던 때가 언제인지. 아마도 "이거 봤어? 진짜 웃기지 않아?"라며 유머를 공유했거나, "이거 봤어? 진짜 미친 거 아냐?"라며 분노를 공유했을 때일 것이다. 후자의 전파력이 전자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좋아요'는 공유보다 수동적인 의사표시다.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다. 내 평판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공유'는 능동적인 개입이다. 내 지인들에게 "이것 좀 봐라"라고 외치는 행위다. 여기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재미없는 걸 공유하면 센스 없는 사람이 되고, 가짜 뉴스를 공유하면 멍청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유하기 전에 본능적으로 검열한다.

그런데 이 검열을 무력화시키는 감정이 바로 분노다. "이건 말도 안 돼!"라는 감정이 치솟으면, 사람들은 이것을 빨리 알리는 것이 '공익'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자신의 공유 행위가 정의 구현의 일부라고 믿는다. 기업의 갑질, 정치인의 부패, 사회적 불공정. 이런 소재들이 바이럴의 단골 손님인 이유는 명확하다. 사람들이 공유 버튼을 누르는 행위를 '정의로운 행동'으로 포장해주기 때문이다. 당신의 콘텐츠가 사람들의 입을 근질거리게 만들고 싶다면, 그들의 정의감을 자극하라. 혹은 억울함을 건드려라. 평온한 호수에는 돌을 던져야 파문이 인다.

분노한 대중은 자신이 영웅인 줄 안다

분노 마케팅이 무서운 점은, 그것이 소비자에게 쾌락을 준다는 사실이다. 화를 내는데 무슨 쾌락이냐고? 모르는 소리. 타인을 비난할 때 인간의 뇌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된다. 명백한 악당을 설정하고 그를 향해 돌을 던질 때, 대중은 자신이 그 악당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나는 저렇게 몰상식하지 않아", "나는 상식을 지키는 시민이야".
이 도덕적 우월감은 마약과 같다. 한 번 맛보면 끊을 수가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하루가 멀다 하고 '마녀사냥' 대상을 찾아 헤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사냥감이 필요하다. 합법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공격해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그런 대상.

이 심리를 잘 이용하는 브랜드나 인플루언서들은 교묘하게 '공공의 적'을 만든다. 그것은 경쟁사일 수도 있고, 시대에 뒤떨어진 관습일 수도 있고, 특정 세대의 꼰대 문화일 수도 있다. "우리는 저들과 다릅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순간, 소비자들은 단순한 구매자가 아니라 그 브랜드와 함께 악을 무찌르는 동지가 된다. 팬덤은 그렇게 형성된다. 단순히 물건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같은 대상을 향해 함께 분노하고 비웃으며 결속된 집단. 이 결속력은 콘크리트보다 단단하다.

정치 유튜버와 황색 언론이 돈을 버는 공식

이제 조금 더 어두운 곳을 들여다보자. 분노와 혐오를 아예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으로 삼은 부류들이 있다. 바로 극단적인 정치 유튜버들과 황색 언론이다. 이들에게 팩트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화나게 만들 수 있는가'이다.

그들은 제목 장사의 달인들이다. "충격", "경악", "폭로". 이런 단어들로 도배된 썸네일은 클릭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든다.

이들의 알고리즘은 단순하다.

  1. 대중이 싫어할 만한 타겟을 설정한다 (특정 정치인, 연예인, 외국인 등).
  2. 그 타겟의 행동 중 가장 자극적인 부분만 오려내어 확대 해석한다 (악마의 편집).
  3. 여기에 온갖 음모론과 추측을 더해 거대한 악의 축으로 둔갑시킨다.
  4. 시청자들에게 "당신이 화내는 것은 당연하며, 우리는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입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슈퍼챗과 광고 수익은 상상을 초월한다. 혐오는 돈이 된다. 그것도 아주 많이. 사람들은 불안할수록, 화가 날수록 지갑을 연다. 내 불안을 해소해 주고 내 분노를 대변해 주는 스피커에게 아낌없이 후원한다. 이것은 비단 정치판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노이즈 마케팅을 일삼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논란을 일으켜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고, 욕을 먹더라도 인지도를 높이는 전략.

"악플보다 무서운 건 무플"이라는 말은 이 바닥의 진리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처럼, 사람들은 욕하면서 그 제품을 검색해 본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구매한다. 혐오 비즈니스는 도덕적으로는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는 소름 끼치게 효율적인 전략이다.

성인군자가 되려면 분노를 참아라

결론을 내리자. 나는 지금 당신에게 악당이 되라고 권하는 것이 아니다. 없는 사실을 지어내거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라는 소리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인간이라는 동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차가운 메커니즘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당신이 비영리 단체를 운영하며 사랑과 평화를 전파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 글은 잊어도 좋다. 하지만 당신이 무언가를 팔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내 이야기를 세상에 퍼뜨려야 하는 사람이라면, 대중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들은 미지근한 물에 반응하지 않는다. 뜨겁거나 차가워야 한다. 당신의 메시지는 사람들의 혈압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는가? "맞아, 이게 문제야!"라고 무릎을 치게 만들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콘텐츠는 데이터 쓰레기장에 묻힐 운명이다.

분노는 가장 가성비 좋은 연료다. 적은 양으로도 폭발적인 에너지를 낸다. 물론 위험하다. 자칫하면 그 불길이 당신을 덮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고 불을 다루는 자만이, 이 시끄러운 세상에서 사람들의 고개를 돌리게 만들 수 있다.

착한 척 고상 떨지 마라. 대중은 당신의 점잔 빼는 모습에 하품만 할 뿐이다. 그들의 가슴속에 잠들어 있는 뇌관을 찾아라. 그리고 아주 살짝, 건드려라. 폭발음과 함께 당신의 성공도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