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지자. 당신은 사랑받고 싶어 한다. 당신의 브랜드가, 당신의 글이, 당신의 서비스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미소를 받기를 원한다. 안티가 하나도 없는 청정 구역, 악플 하나 없는 깨끗한 댓글창, 모두가 "좋아요"를 누르는 평화로운 유토피아. 만약 당신이 지금 그런 그림을 그리며 비즈니스 전략을 짜고 있다면, 미안하지만 당신은 이미 졌다. 그건 비즈니스라기보다는 자선단체의 모금 행사나 유치원 학예회에 어울리는 태도다. 아니, 냉정하게 말해서 그건 '전략'이 아니라 '겁쟁이의 도피'다.

누군가 나에게 와서 "나는 모든 사람과 친구예요"라고 말한다고 쳐보자. 당신은 그 사람에게서 매력을 느끼나? 아니면 묘한 불신감을 느끼나? 십중팔구 후자일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맞춘다는 건, 그 누구에게도 맞추지 않았다는 뜻이다. 색깔이 없다는 뜻이고, 향기가 없다는 뜻이며, 결정적으로 '자아'가 없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무색무취한 회색분자에게 지갑을 열지 않는다. 하물며 마음을 열 리가 있겠나.

우리가 사는 이 정글 같은 자본주의 생태계에서, 소비는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투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세상에 외치는 정체성의 선언이다. 그리고 그 정체성을 가장 빠르고, 가장 선명하고,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방법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말하는 게 아니다. 바로 '내가 무엇을 혐오하는가', '나는 무엇을 거부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평화로운 무관심보다 시끄러운 혐오가 낫다

마케팅 회의실의 풍경은 지겨울 정도로 똑같다. 조금이라도 날이 서 있는 카피나,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이미지를 가져가면 점잖은 임원들은 기겁을 한다. "이건 너무 과격해.", "불편해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떡해?", "우리는 모두를 포용해야 해." 그렇게 그들은 날카로운 송곳을 뭉툭하게 갈아버리고, 뜨거운 불을 미지근한 물로 식혀버린다.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은 어떤가? 안전하다. 아주 안전해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예쁜 쓰레기가 된다.

기억해라. 시장에서 가장 끔찍한 형벌은 비난이 아니다. '무관심'이다. 차라리 욕을 먹는 게 낫다. 욕을 먹는다는 건 최소한 누군가의 감정을 건드렸다는 증거니까. 당신의 메시지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모두를 만족시키려 한다면, 그 메시지는 공기처럼 투명해져서 누구의 가슴에도 꽂히지 않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반면, 누군가를 열렬히 분노하게 만드는 메시지는 반드시 그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를 열렬히 열광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것을 진화심리학적 용어로 '부족주의(Tribalism)'라고 부른다. 인간은 수백만 년 동안 무리 지어 살아왔다. 사바나 초원에서 홀로 떨어진 개체는 곧 죽음이었다. 그래서 우리 뇌에는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싶어 하는 강력한 본능이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무리는 경계선이 있을 때만 성립한다. 그 경계선 밖에는 반드시 '우리가 아닌 존재', 즉 '그들(Them)'이 있어야 한다.

강력한 팬덤은 단순히 어떤 대상을 좋아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 결집할 때 가장 강력해진다. 그리고 그 결집력을 극대화하는 촉매제는 역설적이게도 외부의 적이다. 적이 선명할수록, 위협이 구체적일수록, 우리 내부의 결속은 강철처럼 단단해진다. 종교, 정치, 스포츠, 그리고 위대한 브랜드들은 모두 이 메커니즘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빅브라더를 부수고 신화가 된 사과

이 전략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례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1984년의 애플을 꼽겠다. 당시 컴퓨터 시장은 'IBM'이라는 거인이 지배하고 있었다. IBM은 효율적이고, 거대하고, 질서 정연했으며, 기업을 위한 기계였다. 평범한 마케터라면 이렇게 광고했을 것이다. "우리는 IBM보다 램 용량이 조금 더 크고요, 부팅 속도가 2초 더 빠릅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그런 시시한 스펙 싸움을 하지 않았다. 그는 판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잡스는 IBM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통제광 독재자, '빅브라더'로 규정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맥킨토시를 그 억압적인 체제에 저항하는 유일한 희망, '혁명군'으로 포지셔닝했다. 리들리 스콧이 감독한 그 전설적인 슈퍼볼 광고를 떠올려보라. 무채색의 좀비 같은 군중들이 빅브라더의 연설을 듣고 있을 때, 컬러풀한 옷을 입은 여전사가 달려와 스크린을 해머로 부숴버린다.

이 순간, 애플은 단순한 컴퓨터 제조사가 아니게 되었다. 애플은 '자유'가 되었고, '창의성'이 되었으며, '개인'이 되었다. 사람들은 맥킨토시를 구매함으로써 단순히 기계를 산 것이 아니다. 그들은 IBM이라는 거대한 적에 맞서는 저항군의 일원이 되는 티켓을 산 것이다. IBM을 쓰는 사람들은 지루하고 꽉 막힌 관료주의자가 되었고, 애플을 쓰는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는 힙한 크리에이티브가 되었다. 이 완벽한 대립 구도 속에서, CPU 성능이나 가격 따위는 아주 사소한 문제가 되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적의 효용이다. 적을 설정함으로써 브랜드는 거대한 서사(Epic)를 갖게 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만큼 인간을 흥분시키는 이야기는 없으니까.

보이지 않는 적이라도 만들어내라

"하지만 우리 업계에는 IBM 같은 독보적인 악당이 없는데요?"라고 묻고 싶은가? 걱정 마라. 적은 꼭 구체적인 기업일 필요가 없다. 아니, 때로는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 더 강력한 적이 되기도 한다. 음모론이 왜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사라지지 않고 그토록 끈질기게 살아남는지 아는가? 음모론은 세상의 모든 불행과 나의 불안을 탓할 수 있는 명확한 대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림자 정부든, 외계인이든, 거대 제약 회사든, '우리를 방해하는 사악한 세력'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신도들을 미친 듯이 결속시킨다.

비즈니스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경쟁사 대신, 고객을 괴롭히는 '개념'을 적으로 삼으면 된다. 낡은 관습, 비효율, 지루함, 불공정, 혹은 '당신의 잠재력을 갉아먹는 게으름' 같은 것들 말이다.

예를 들어볼까? 당신이 샐러드를 판다고 치자. "우리 샐러드는 신선해요"라고 말하면 아무도 안 듣는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을 병들게 하고, 비만으로 몰고 가는 '설탕 제국'에 선전포고를 합니다"라고 메시지를 던진다면? 당신의 가게는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건강을 지키는 요새가 된다. 핀테크 스타트업 토스(Toss)가 처음 나왔을 때를 기억해 보라. 그들은 '송금의 불편함', 그리고 은연중에 '기존 은행들의 불친절하고 복잡한 관료주의'를 적으로 규정했다. 그 덕분에 사용자들은 토스를 쓰면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중요한 건 선명성(Clarity)이다. "우리는 고객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같은 말은 벽지 무늬처럼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다. 하품만 나온다. 흐릿한 선(Goodness)보다는, 선명한 투쟁이 밈(Meme)으로서 생존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사람들은 싸움 구경을 좋아하고, 그 싸움에 명분이 있다면 기꺼이 참전한다.

미움받을 용기가 당신을 구원하리라

이제 거울을 보고 당신의 브랜드를, 그리고 당신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다. 당신은 너무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져 있지 않나?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려다, 결국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투명 인간이 되고 있지는 않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랑받고 싶다면 먼저 미움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겠나. 그게 바로 인간관계와 비즈니스의 본질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당신의 배에 태울 수는 없다. 만약 당신이 모두를 태우려 한다면, 그 배는 결국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침몰할 것이다.

당신의 철학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 당신의 스타일을 싫어하는 사람들, 그들은 과감하게 버려라. 아니, 그들이 당신을 싫어하게 내버려 둬라. 그들이 당신을 욕하고 비난할수록, 당신의 진짜 팬들은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크럼을 짤 것이다.

그러니 이제 펜을 들고, 혹은 키보드 위에 손을 얹고 정해라. 당신의 적은 누구인가? 당신은 무엇과 싸울 것인가? 세상에 만연한 어떤 부조리를 깨부수기 위해 당신의 브랜드가 존재하는가? 깃발을 높이 들어라. "저들이 우리의 적이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 저들에 맞서 싸우는 전사들이다."

적을 선포하는 그 순간, 당신의 고객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동지(Comrade)가 된다. 그들은 당신의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당신과 함께 세상을 바꾸는 투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적이 없으면 팬도 없다. 이것은 잔혹한 선동이 아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냉정하고도 뜨거운 통찰이다. 착한 척은 이제 그만 집어치워라. 당신에게 필요한 건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