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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파도가 금융시장에 남긴 그림자
자연재해가 닥치면 사람들의 일상은 한순간에 뒤바뀐다. 지진이든 허리케인이든, 이미 익숙하던 삶의 풍경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광경은 충격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혼란은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미친다. 특히 주식시장 같은 금융의 최전선은 재난 소식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다. 실제로 동일본 대지진 때 일본 증시는 며칠 만에 수직으로 추락했다. 공포심리가 국가 경계를 넘어 투자 심리를 뒤흔들었고, 이는 과거 한신 대지진이나 허리케인 카트리나, 9.11 테러, 코로나19 팬데믹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그렇다고 주식시장이 재난 소식에 영구적으로 침체하는 것은 아니다. 며칠, 혹은 몇 주의 타격을 견뎌낸 뒤 특정 업종을 중심으로 반등이 시작된다. 이는 단순한 운이 아니다. 재난 이후 정부와 사회가 집중적으로 복구 노력을 기울이는 분야가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주택과 도로, 교량을 다시 세워야 하고, 전기와 가스를 재정비해야 하며, 생활 필수품 수급망을 재건해야 한다. 이러한 필연적 과제들이 시장에 재투자 기회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건설·인프라 업종이 놓여 있다.
주가 그래프를 바라보는 투자자의 시선도 복잡하다. 섣불리 낙관하기엔 재난의 피해 규모가 예측 불가능하고, 지나치게 비관하기엔 복구 사업의 자금 투입이 눈에 보인다. 결국 시장은 현실적으로 필요한 곳에 자금이 흘러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침체 속에서도 새로운 상승동력을 모색한다. 그러므로 대규모 재난 이후 시장 구도를 이해하려면, 재난 직후 폭락과 그에 이은 회복의 이중적 패턴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지진의 상처를 복구로 바꾸는 건설·인프라의 힘
동일본 대지진 당시를 복기하면, 지진 발생 직후 닛케이 지수는 급락했다. 특히 원전 사고로 인해 불안감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도쿄전력과 같은 전력회사는 주가가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 뒤 일본 정부가 긴급 복구 예산을 투입하자, 건설·인프라 관련 종목들이 맹렬하게 반등하기 시작했다. 화려함은 없지만 탄탄한 수주 기반과 막대한 공공 투자로 인해 실적 개선이 기대되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다른 대형 재난에서 반복됐다. 1995년 한신 대지진 이후에도 항만·도로 복구가 시급해지면서 오바야시(大林組), 가지마(鹿島建設) 같은 건설사가 시장을 주도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는 미 연방정부의 막대한 예산이 뉴올리언스 및 인근 지역의 인프라를 재건하는 데 투입됐고, 굴착기·중장비 기업부터 건설 엔지니어링 업종이 반사이익을 누렸다. 9.11 테러 직후에도 국방과 공항 인프라 투자 확대가 이어져 보잉, 록히드마틴 등 방산기업과 공항 보수 공사를 따낸 건설사들이 주가 상승을 경험했다.
물론 “재난이 발생하면 건설주를 매수하라”라는 식의 단순한 공식이 통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재난 피해가 워낙 심각해, 국가 재정이 큰 압박을 받으면 단기적으로는 예산 책정이 지연되고, 시장 반등이 늦어질 수도 있다. 다만, 재난 복구와 국가 운영은 절대 미룰 수 없는 과제이기에, 궁극적으로 공공·민간 모두 건설 및 인프라 섹터에 자본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확실하다.
다른 업종은 왜 건설만큼 빨리 일어서지 못할까
지진이나 허리케인 소식이 전해지면, 사회적 필수 서비스도 함께 타격을 입는다. 보험사들은 막대한 피해 청구에 대비해야 하고, 항공·여행 산업은 재난 지역으로의 이동이 제한되어 관광 수요가 급감한다. 부동산 업계 역시 지진 피해 지역의 가치 하락과 방사능 위험 등의 우려가 발생하면, 회복까지 상당 기간이 걸린다.
그렇다면 반대로 소매(생활 필수품)와 에너지 업종은 어느 정도 빠르게 살아나는 모습을 보인다.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야 하는 식료품점과 편의점은 재고 확보와 물류망 복구만 이뤄지면 매출이 즉각적으로 회복된다. 전력·가스 등 에너지 인프라는 재난 직후 가장 절박하게 요구되기에, 피해 복구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이들 기업도 주가 반등을 경험한다. 그러나 원전 사고와 같은 치명적 리스크가 끼어들면, 그 회복은 업계 내에서도 종목별로 엇갈린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업종마다 회복 속도가 다른 이유는 결국 ‘얼마나 직접적으로 복구 및 재건 예산에 연결되는가’라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필수적인 사회 기반을 재정비해야 한다면, 그에 관련된 업종은 재난 이후 강력한 투자 테마가 된다. 반면 관광, 항공, 보험 등은 실제 재난 복구와 달리 심리적·물리적 장벽이 남아 있어 회복이 한 박자 늦다.
재난 이후를 준비하는 투자와 공공정책
재난을 둘러싼 금융시장의 역학은 우리의 상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큰 위기가 터지면 모두가 안전을 우선시하고 불확실성에 민감해지지만, 동시에 미래를 위해 무엇에 투자해야 할지를 냉정하게 따져보게 된다. 인프라 복구는 생존과 직결되어 시급히 추진되는 프로젝트이므로, 건설·토목·철강·시멘트 업종들이 우선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예산 투입은 자연재해가 남긴 상흔을 메우는 동시에, 한층 강화된 시설로 다시금 사회를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이때 건설·인프라 기업들이 핵심적 역할을 맡는다. 그 결과 이들 기업의 매출과 이익이 개선되니, 주가가 급락에서 빠르게 반등하는 현상이 되풀이된다. 반대로 여행·서비스 부문은 우려가 해소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에, 주가가 전고점 수준을 회복하기까지 기다림이 길어진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재난이 단지 ‘주가 상승 기회’로만 다뤄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재난은 한 나라의 사회안전망을 전반적으로 점검하도록 요구하며, 정부와 민간은 어떻게 빠르고 안전하게 상처를 봉합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건설·인프라 업종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사람들의 삶이다. 일터와 집을 잃은 이들이 재난 이전의 일상을 되찾도록 돕는 것 부분도 투자 시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여러 재난 사례는 한 가지 공통된 메시지를 던진다. 충격은 거대했지만, 그것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서 건설·인프라 투자와 생활 필수품 공급은 언제나 핵심 축으로 작동했다. 이는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어느 재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완벽한 방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재난에 대비하고, 재난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맞잡아야 하는 업종이 어디인지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준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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