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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과 낙관주의의 함정

세상은 때로 사람을 무모한 도전으로 이끈다.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곤궁한 순간, 눈앞에 놓인 작은 기회가 유일한 희망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도박이 그렇다. 카지노의 반짝이는 조명과 화려한 인테리어는 사람의 마음을 넉넉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곳에서 누리는 승리는 잠시 스쳐 가는 빛과도 같다. 영국의 고전 소설가 윌키 콜린스는 “기회라는 것은 틈새를 타고 갑자기 찾아와 사람을 한 번에 번영의 길로 인도하는 듯 보인다”라고 썼다. 그러나 그렇게 찾아온 기회가 곧 더 큰 불행의 서막이 되기도 한다.

 

‘따서 갚으면 된다’라는 말이 가진 매력은, 현재의 손실을 애써 무시하고 미래의 승리로 만회하려는 낙관주의에서 비롯된다. 카지노 테이블에서 잃었던 돈을 다음 판에 따서 그 빚을 갚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맹목적 믿음이 작동한다. 이런 믿음이 사람을 강력하게 붙잡아두는 이유는, 낙관이 주는 심리적 위안이 고통을 잠시 달래주기 때문이다. 마치 다음에 한 번이라도 크게 이기면, 지금의 부채나 손실이 없던 일이 될 것 같은 달콤한 기대로 가슴이 뛴다. 문제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데 있다.

 

네바다 게이밍 컨트롤 보드(Nevada Gaming Control Board)가 2022년에 발표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의 카지노 게임은 장기적으로 90% 전후로 회수율을 보인다고 한다. 슬롯머신의 경우 85~95% 정도가 일반적이라고 보고되어 있다. 100달러를 게임에 넣으면 평균 85달러에서 95달러 정도를 되찾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겉으로 보면 큰 차이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게임이 반복될수록, 궁극적으로 카지노 측에서 가져가는 이익이 누적된다. 한두 번의 판에서 크게 이길 수 있지만, 결국 도박장 전체 통계로 보면 실패자가 성공자를 압도한다.

 

사람들은 이런 경고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 번이라도 대박을 낸 경험이 있으면, 그 짧은 희열을 잊기 힘들다. 설령 손실이 만회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어도, 그 희열의 기억이 매 순간을 지배한다. 결과적으로 자기합리화가 가동된다. ‘언젠가 다시 한 번 멋지게 이겨서, 이 모든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리라’는 망상에 가까운 기대가 커진다. 도전 정신이 가치 있는 성품이 될 수도 있지만, 도박이라는 세계에서는 이성이 마비되기 쉽다.


‘따서 갚으면 된다’라는 속삭임

‘따서 갚으면 된다’라는 말은 빚을 지고도 아랑곳하지 않는 순진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손해를 봐도 얼마든지 다음 기회에 ‘크게 한 번 딸 수 있다’고 믿는 태도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허나 이 말은 흡사 마약처럼 작동한다.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공포나 위험을 경계하기보다, 오히려 더 빠져드는 합리화를 키우기 때문이다.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은 이처럼 부정적 결과가 누적됨에도 불구하고 희망적 결과만을 강조하는 심리를 ‘확증 편향(confirmatory bias)’ 혹은 ‘낙관적 편향(optimism bias)’과 연결해 설명한다. 사람은 자신의 바람을 지지하는 증거만 수집하려고 하고, 반대로 불편한 진실이나 통계 자료는 외면하려 한다. 도박판에서 잃었던 기억은 ‘내가 운이 없었을 뿐’으로 처리하고, 잠깐의 승리는 ‘내가 이제 제대로 감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렇게 반복되는 동안,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도 좀체 의식을 바꾸지 않는다.

 

투자 분야도 같은 유혹에 사로잡힌다. 본전 생각과 ‘따서 갚으면 된다’가 뒤섞여, 잘못된 종목에 투자를 했음을 알고 있음에도 반복적으로 매수(물타기)하면서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추려 든다. 확률적으로 만회 가능성을 늘린다고 믿지만, 시장의 흐름이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 손실은 오히려 더 커진다. 보유 자산을 끌어다 부어도 한도 끝도 없이 지갑이 비는 순간이 찾아온다.

 

‘따서 갚으면 된다’라는 구호가 만들어내는 거짓된 안도감은, 문제의 본질적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돈을 따서 빚을 갚으려면 먼저 베팅을 해야 하고, 베팅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자금이 필요하다. 이렇게 위험을 키우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아련한 승리의 기억

도박꾼이 자주 말하는 “전에 1000만 원을 땄다”는 이야기는 디테일이 부족하다. 그들이 ‘천신만고 끝에 이긴 후 다시 도전했다가 다 잃은 경험’ 같은 것은 누락한 채, 일시적인 짧은 승리만 기억한다. 사람은 긍정적 기억을 유지함으로써 자존감을 지키려 하고, 부정적인 사건을 무의식적으로 지워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심리적 메커니즘이 도박장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행동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인간은 편의적 지식에 기반해 의사결정을 내린다”라고 했다. 의도적으로 기억을 왜곡한다기보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편집된 정보를 사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는 뜻이다. ‘따서 갚으면 된다’라는 망상적 기대가 살아남는 것은 이런 편집증적 낙관주의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네바다주 도박 중독 연구소(Nevada Council on Problem Gambling)에서 2021년에 실시한 조사에서도, 도박 중독 환자 다수는 과거에 소소하게나마 큰 금액을 딴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그 경험은 실제로는 매우 짧은 순간에 불과했지만, 뇌에는 성공을 보증하는 강렬한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이후로는 어떤 난관이 닥쳐도, 마치 조만간 다시 그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이렇게 과거의 승리 기록만 반복 재생되는 동안, 잃어버린 돈의 합계는 종종 천문학적 수준에 도달한다. 결국 이들은 더 빚을 내서라도 ‘이번에 확실히 따서 갚겠다’는 다짐을 남발한다. 이런 패턴이 반복될수록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기 점점 어려워진다.


도박사의 오류와 본전 생각

‘도박사의 오류(Gambler’s Fallacy)’는 18세기부터 주목받아온 인지 왜곡 현상이다. 동전을 열 번 던져 연속으로 앞면이 나왔으니, 이제 뒷면이 나올 때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을 대표 사례로 든다. 실제로 동전의 앞뒷면 확률은 매번 50%이며 이전 결과가 다음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균형’이라는 개념에 익숙해, 한쪽 결과가 많이 나왔으면 곧 반대쪽 결과가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

 

도박장에서 ‘연속으로 돈을 잃었으니 이제는 운이 풀릴 차례’라고 생각하는 것도 도박사의 오류를 그대로 반영한다. 연패가 이어졌다고 다음 판에 반드시 연승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통계를 다시 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운명론처럼 결과를 결정짓는 하우스 엣지(House Edge)가 결국 플레이어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본전 생각’ 역시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 이미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계속 추가 배팅을 하면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늪에 들어간다. 투자 세계에서 흔히 말하는 ‘물타기’는 애초에 자신이 저지른 전략적 실수를 최대한 빨리 인정하고 빠져나오는 것이 합리적인 방어책이지만, 사람들은 손실을 확정 지으려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눈앞에서 사라져간 돈을 꼭 되찾고 싶다는 아쉬움이 합리적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언젠가 돌아올 그것...

도박이나 투자에서 ‘따서 갚으면 된다’가 가장 위험하게 작용하는 지점은, 그 말이 현 상황의 심각함을 무의식적으로 무시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빚이 쌓여도, 가정 경제가 파탄 직전에 이르러도, ‘언젠가 크게 따면 모두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현실감각을 녹여버린다. 누군가는 그 돈을 갚아야 하고, 대출이자와 카드빚은 매일같이 불어난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엄청난 후폭풍이 찾아온다. 잃어버린 돈을 감당하지 못해 가족에게 피해가 전가되고, 주변 사람들과 인간관계가 파탄에 이른다. 결국 서민들은 도박판을 통해 인생 역전을 꿈꿨다가는 오히려 파멸로 치닫는다. 많은 도박 중독자들이 이런 경로를 되짚어보며 후회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따서 갚는다’는 말의 함정은 은근히 달콤하다는 점에 있다. 손실을 보았다고 해서 반드시 자포자기할 필요는 없다. 다만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손실 규모를 냉정하게 파악한 뒤, 다시는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현명하다.계획에 없던 재투자는 결국 독이 될 뿐이다. 돈뿐 아니라 신용과 가정, 더 나아가 자신이 쌓아온 모든 업적들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영국의 사상가 버틀런드 러셀은 “불확실성의 늪에서 뛰어드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경솔함이다”라고 말했다. 도박은 하나의 사회적 이벤트가 아니라, 개인의 인생 전체를 위협하는 도박사가 되어버린다. 그 누구도 손실을 영원히 피할 수 없다. 결국 ‘따서 갚으면 된다’는 말이 무르익을수록, 인생의 파멸도 가속화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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