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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들도 인정한 걷기의 특별한 효과
바쁜 일상 속에서 가볍게 걷고 싶은 충동이 찾아올 때가 있다. 출근길 지하철 대신 한 정거장 정도 미리 내려 걷고 싶어지는 순간, 혹은 머릿속이 어지러울 때 휴대전화를 잠시 무시하고 바깥 공기를 마시며 한 바퀴 돌고 싶을 때. 이 사소한 선택이 삶의 방향을 바꿀 만한 크고 작은 ‘통찰’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걷기는 몸을 움직인다는 기초적인 정의에서 벗어나 머릿속을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등 뇌를 활성화한다. 몸이 다소 자동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숨 가쁘지 않기에 생각이 흘러가도록 열어두는 여백이 생기기 때문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산책 학파(페리파토스)에서 걸으며 강의를 했다는 사실이나 독일 철학자 칸트가 매일 같은 코스를 느긋하게 걸으며 사유를 정련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니체 또한 “위대한 사상은 항상 걸으면서 떠오른다”라고 했고, 괴테나 워즈워스 같은 예술가들도 길을 걸으며 시나리오를 다듬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의외로 현대 뇌과학의 견해와 일치한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한 실험에서는 앉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보다, 걷는 이들이 발상의 전환을 훨씬 쉽게 이룬다는 결과가 나왔다.
흔히 말하는 DMN(Default Mode Network,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것 같을 때 뇌는 오히 가장 활발하게 작동하는 것)이 이런 작용에 한몫한다. 이는 뇌가 무언가에 집중하지 않고 방황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내면에선 다양한 단서가 재조합되는 시점이다. 걷기가 이 DMN을 자연스럽게 활성화해 준다는 연구가 쌓여가고 있다. 큰 에너지 소모 없이 반복적인 동작이 몸과 마음을 절묘하게 연결하여 사고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가기 때문이다.
달리는 자와 걷는 자, 누가 더 멀리 가는가
땀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달리기를 하면 쾌감이 밀려온다. 마라톤이 대표적이다. 그 완주 후의 성취감은 강렬하며 다양한 목적을 가진 러너들이 마라톤 대회장을 가득 메운다. 그러나 이들이 결승선에서 얻는 것은 주로 해냈다는 심리적 고양감이다. 반면 걷기에서 얻는 통찰과 영감은 그 과정에서 꾸준히 축적된다는 차이가 있다.
달리기는 호흡과 페이스에 많은 주의를 할애한다. 가슴이 뛰고, 근육이 피로해지고, 빠른 호흡에 맞춰 달려야 한다. 이때 뇌의 사고 자원 중 상당 부분은 지금의 신체 상태를 확인하고 동기화하는 데 쓰이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달리는 중에 명료한 결심이나 결단력이 떠오른다고 말하곤 하지만 깊은 연상이나 창의적 아이디어가 탄생하기에는 여유가 부족하다.
걷기는 여유롭다. 의식적 집중이 아닌 자동적 움직임에 가깝기에,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한 가지 생각이 다른 생각과 만나고 그들끼리 새롭게 결합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그 연결고리 속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혹은 전혀 뜻밖의 창의적 발상이 고개를 든다. 실리콘밸리의 직장인들이 미팅을 걸으면서 했다는 이야기가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는 뜻이다.
흥미롭게도, 정신의학 분야에서는 걷기가 초기 우울증 치료에도 도움을 준다고 본다. 세로토닌과 도파민 같은 행복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고, 강한 피로감 없이 적정한 회복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약물 치료를 병행하지 않더라도 하루 30분 정도의 규칙적인 산책만으로 기분이 나아졌다는 경험담은 드문 이야기가 아니다.
자연 속에서 걷기 vs 도시 산책하기
자연환경에서 걷는 것과 도심 속에서 걷는 경험은 사뭇 다르다. 도시에서의 산책은 인공적인 소음과 시각적 자극에 노출되면서도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스토리가 담겨 있다. 낡은 골목 건물에서, 표정 없는 차벽 너머에서, 도심 속 공원에서 의외의 창작 영감이 떠오를 수 있다. 시간에 쫓기듯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게 아니라 멍하니 무의미한 광고판이나 노면에 쓰인 문구를 바라보며 걷는 그 느슨함 자체가 중요한 키워드다.
반면 숲길이나 해변에서의 산책은 다른 차원의 감각을 준다. 사람과 자동차가 드문드문 보이는 대신 물소리, 바람소리가 생각을 감싼다. 자연 속에서 청각, 후각, 피부감각 같은 평소와 다른 감각이 새롭게 깨어나면서 뇌는 그 느슨함을 곧 창의성의 비옥한 토양으로 전환한다. 연구자 스티븐 카플란이 제시한 주의회복이론에 따르면 자연환경에서 가벼운 걷기만으로 인지 피로와 스트레스가 빠르게 줄어드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예술가들은 재료가 되었든, 이미지나 언어가 되었든, 그 배경을 풀어낼 수 있는 단서들을 채집한다. 샤워할 때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발상과 비슷하지만 걷기는 시간이 더 길고 시각적·공간적 자극을 넓게 제공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대기업 임직원들이 워크숍에 일부러 숲 트레킹이나 도시 골목 투어를 곁들이는 일이 늘고 있다. 신선한 시야 전환이 필연적으로 새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프로젝트에 날개를 달아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결국 걷기는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가 없어도, 언제 어디서든 실행 가능한 사유와 창작의 촉매제로 기능해왔다. 적당한 리듬과 낮은 인지 부하가 뇌에 최적의 조건을 조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옛날부터 걸으면서 말하고, 쓰고, 고민하고, 결론을 냈다. 몸이 앞을 향해 나아가는 그 단순한 반복이 놀랍게도 앞으로의 시간을 여는 열쇠가 되는 셈이다. 시대가 어떻게 달라져도, 걷기라는 행위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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