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인정하고 시작하자. 행복을 파는 일은 지독하게 어렵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개인적이며 모호하다.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행복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통장에 찍힌 거액의 숫자가 행복일 수 있다. 그 기준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정적으로 행복은 지금 당장 손에 넣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 하지만 불행을 예고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공포는 구체적이고 즉각적이며 무엇보다 우리의 생존 본능을 거칠게 걷어찬다. 당신이 오늘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확인한 스마트폰 속 뉴스를 떠올려보라.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마주친 현란한 광고판들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하루 종일 당신의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던 수많은 알림 메시지들을 복기해보라. 그중에서 단 하나라도 "당신은 지금 충분히 안전하고 행복하며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라고 말해주는 메시지가 있었는가. 내 장담하건대 그런 메시지는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쉬지 않고 당신에게 결핍을 속삭이고 다가올 위기를 경고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아주 막대한 돈이 되기 때문이다. 공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이며 실패하지 않는 세일즈맨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하에 소비한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꼭 필요한 물건을 꼼꼼히 비교해서 사고 내 삶을 윤택하게 만들 서비스를 주체적으로 선택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소비의 역사를 아주 조금만 깊이 들춰보면 그 믿음이 얼마나 허약한 모래성 위에 지어진 허상에 불과한지 깨닫게 된다. 이 거대한 사기극의 가장 고전적이고도 완벽한 예시가 바로 1920년대의 리스테린 광고다. 그전까지 인류에게 입 냄새는 그저 입 냄새일 뿐이었다. 누구나 아침에 일어나면 입안이 텁텁하고 마늘이나 양파를 먹으면 냄새가 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었다. 누구도 그것을 심각한 병이라거나 사회적으로 매장당해야 마땅할 죄악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리스테린은 달랐다. 그들은 판매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의학 서적 먼지 구덩이 속에 처박혀 있던 'Halitosis(구취)'라는 아주 낯설고 전문적으로 들리는 라틴어 의학 용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단순한 냄새가 아닌 반드시 치료해야 할 끔찍한 '질병'이자 사랑하는 연인에게 버림받고 평생을 바친 직장에서 비참하게 해고당할 수 있는 치명적인 '사회적 결함'으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광고를 살펴보면 그 전략은 소름 끼칠 정도로 정교하다. 광고 속의 불행한 여주인공은 아름답고 능력 있으며 성격도 좋지만 도무지 결혼을 하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 뒤에서 수군거리지만 정작 그녀 자신만 그 이유를 모른다. 이유는 단 하나, 그녀의 입에서 나는 냄새 때문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들러리일 뿐 신부가 될 수 없다"는 자극적인 카피는 당시 여성들의 불안 심리를 정확히 관통했다. 대중은 공포에 질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의 입을 가리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혹시 나도?"라는 의심은 마른 들판의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환자로 규정하고 그 불안을 잠재울 유일한 구원책으로 제시된 보라색 액체를 미친 듯이 사들였다. 기업은 없던 병을 창조해냈고 그 병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천문학적인 부를 쌓아 올렸다. 이것이 바로 현대 공포 마케팅의 원형이자 교과서다. 당신이 지금 느끼는 외모에 대한 불안, 건강에 대한 염려, 뒤처짐에 대한 공포는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기획되고 배양되어 당신의 뇌 속에 주입된 상품이다.

불안이라는 이름의 가장 비싼 구독료

이러한 공포의 연금술은 현대에 와서 더욱 교묘하고 거대해졌으며 이제는 우리의 일상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보험 산업이다. 보험의 본질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라. 그것은 '일어날지도 모르는, 혹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불행'에 대한 베팅이다. 보험 설계사들은 당신에게 장밋빛 미래의 청사진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당신이 암에 걸려 고통받으며 병원비 때문에 가산을 탕진하는 모습, 갑작스러운 사고로 가장이 부재하게 되었을 때 길거리에 나앉아 비참하게 살아갈 가족들의 현실, 예기치 못한 화재로 평생 일군 집이 잿더미가 되는 상황을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묘사한다. 그들이 파는 것은 실질적인 보장이 아니라 '현재의 안심'이라는 심리적 위안이다. 당신은 그 끔찍한 상상이 제발 현실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혹은 현실이 되더라도 최악은 면하기 위해 기꺼이 매달 십일조를 바치듯 보험료를 납부한다. 사실 통계적으로 보면 당신이 그 모든 불행의 주인공이 될 확률은 극히 낮다. 하지만 공포는 차가운 확률을 압도한다. 인간의 뇌는 99번의 평온한 일상보다 단 1번의 비극적인 사건을 더 크게 기억하고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안 산업 역시 이 공포의 메커니즘을 충실히 따른다. TV에서 나오는 홈 카메라와 무인 경비 시스템 광고를 유심히 보라. 그들은 평화로운 주택가의 따사로운 햇살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천둥 번개가 치는 어두운 밤, 모두가 잠든 사이에 창문을 뜯고 들어오는 침입자의 검은 그림자를 보여준다. 당신의 소중한 아이와 반려동물이 위험에 처하는 그 0.1초의 급박한 순간을 클로즈업하며 당신의 심박수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당신이 집을 비운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라는 메시지는 당신의 죄책감과 가장으로서의 보호 본능을 잔인하게 자극한다. 결국 당신은 매달 보안 업체에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한다. 실제로 도둑이 들어서가 아니다. 도둑이 들지도 모른다는 당신의 그 통제되지 않는 상상력을 잠재우기 위해서다. 이것은 일종의 심리적 보호비다. 당신의 불안감이 그들의 유일한 매출원이고, 당신이 느끼는 평온함은 그들의 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위협을 발굴해낸다. 해킹으로 당신의 계좌가 털릴 수 있다는 경고, 신종 바이러스가 당신의 폐를 공격할 것이라는 뉴스, 미세먼지가 당신의 수명을 단축시킬 것이라는 위협,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묻지마 범죄의 공포. 세상이 위험하고 끔찍해질수록 그들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심지어 뷰티 산업조차 이 잔혹한 문법을 그대로 따른다. 그들은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현상인 '노화'를 죄악이자 공포로 규정했다. 주름은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의 훈장이 아니라 자기 관리의 실패이자 게으름의 증거로,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매력 상실로 가차 없이 묘사된다. "당신의 피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광고 문구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일종의 협박이다. 늙음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조차 공포의 대상이 되었을 때 안티에이징 크림은 단순한 화장품이 아니라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아니 사회적으로 도태되지 않기 위한 절박한 생존 도구가 된다. 당신이 거울을 보며 눈가에 잡힌 주름을 보고 한숨 짓는 그 순간 화장품 회사의 임원들은 샴페인을 터뜨리며 미소 짓는다. 당신의 자존감이 낮아질수록, 늙음에 대한 공포가 커질수록, 거울 속의 자신이 초라해 보일수록 그들의 지갑은 두꺼워진다. 그들은 당신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불안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뇌를 해킹하는 붉은 신호등 손실 회피의 덫

도대체 왜 우리는 이토록 뻔한 수작에 매번 속절없이 넘어가는 걸까. 왜 행복해질 것이라는 희망찬 메시지보다 불행해질 것이라는 어두운 예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지갑을 여는 걸까. 그 답은 우리의 뇌 구조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인간은 이득보다 손실에 훨씬 더 민감하고 격렬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다. 원시 시대를 상상해보라. 숲속에서 맛있는 열매를 발견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고 생존에 도움이 되지만 그것을 놓친다고 해서 당장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덤불 속에 숨어 있는 호랑이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곧바로 죽음을 의미했다. 긍정적인 신호를 놓치는 건 약간의 아쉬움으로 끝나지만 부정적인 신호를 놓치는 건 생존 게임의 영원한 종말이었다. 그래서 살아남은 우리 조상들의 유전자에는 "공포에 즉각 반응하라", "부정적인 신호를 최우선으로 처리하라"는 코드가 뼈에 새겨지듯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이것을 행동경제학에서는 '손실 회피(Loss Aversion)' 성향이라고 부른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100만 원을 얻었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100만 원을 잃었을 때 느끼는 고통을 2배에서 2.5배 이상 크게 느낀다고 한다. 마케터들과 정치적 선동가들은 이 원시적인 뇌의 버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악랄하게 이용한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을 강조한다. "이 제품을 사면 당신의 생활이 편리해집니다"라고 점잖게 말하는 대신 "이 기회를 놓치면 당신은 평생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이 지나면 가격이 두 배로 오릅니다"라고 다급하게 외친다. "우리 당을 찍으면 나라가 발전합니다"라고 하기보다 "상대 당이 집권하면 우리는 베네수엘라처럼 망하게 됩니다", "당신의 집값이 폭락할 것입니다"라고 소리친다. 전자가 이성적인 판단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을 건드린다면 후자는 감정과 공포, 생존 본능을 담당하는 뇌의 편도체를 직접 타격한다. 편도체가 활성화되어 붉은 비상등이 켜지면 이성은 마비된다. 논리적인 사고 회로는 작동을 멈추고 오직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만이 남는다. 그때 그들은 슬그머니 해결책을 내민다. "이 물건을 사세요", "이 보험에 가입하세요", "나에게 투표하세요". 그러면 공포에 질려 판단력이 흐려진 뇌는 그것을 유일한 동아줄로 인식하고 앞뒤 잴 것 없이 덥석 잡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 선동의 핵심 메커니즘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독재자와 포퓰리스트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내거나 내부의 배신자를 색출하는 데 열을 올린다. 대중이 가진 막연한 불만과 불안을 특정 대상으로 돌리고 그 대상이 우리를 파멸시킬 것이라는 공포를 조장한다. "이민자들이 당신의 일자리를 뺏을 것이다", "특정 세력이 우리의 전통적 가치를 파괴할 것이다", "저들이 집권하면 전쟁이 날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 문제를 아주 단순한 '선과 악', '생존과 파멸', '우리와 그들'의 구도로 치환해 버린다. 공포에 질린 대중은 복잡한 진실을 탐구하거나 이성적으로 토론하기를 포기하고 대신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어지는(사실은 억압하는) 강력한 리더십에 맹목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대중을 순한 양으로, 때로는 광기 어린 폭도로 만드는 가장 효과적이고 저렴한 통치 수단이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악마화하여 독일 국민의 공포를 자극했던 것처럼, 현대의 수많은 정치인들 또한 당신의 공포를 먹고 자란다.

구원자가 내미는 청구서를 확인하라

이제 잠시 숨을 고르고 당신의 주변을 냉정하게 둘러보라. 거실의 TV 뉴스, 스마트폰 속의 자극적인 인터넷 기사, 유튜브의 빨간색 썸네일, 거리의 전단지까지. 온 세상이 당신에게 "위험하다"고 소리치고 있지 않은가. 경제 위기가 곧 닥쳐올 것이라고, 부동산 시장이 폭락하거나 혹은 지금 안 사면 영원히 벼락거지가 될 것이라고, 당신의 건강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위협받고 있다고, 당신의 노후가 폐지를 줍는 비참한 삶이 될 것이라고 끊임없이 경고하고 협박한다. 물론 그들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세상은 원래 위험하고 불확실한 곳이니까. 하지만 여기서 정말 중요한 건 그 경고의 내용이 아니라 '목적'이다. 진정으로 당신을 걱정해서 하는 애정 어린 조언과, 당신의 공포를 이용해 무언가를 팔아먹으려는 수작은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평생 누군가의 현금인출기 노릇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 구별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누군가 당신에게 위기감을 조성하고 공포를 주입하여 심리적으로 구석에 몰아넣을 때,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그래서, 이 끔찍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신이 제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당신이 얻는 이익은 무엇인가?" 만약 그들이 위기를 강조하고 공포를 극대화한 직후에 특정 상품 구매, 서비스 가입, 정기 후원, 투표 등을 요구한다면, 99.9% 이상의 확률로 그것은 공포를 미끼로 한 비즈니스다. 그들은 당신의 구원자가 아니다. 당신의 불안을 연료로 태워 자신의 배를 불리는 영리하고 비정한 장사꾼일 뿐이다. 진정한 의사나 전문가는 환자에게 공포를 심어주기보다 정확한 진단과 현실적인 치료법을 차분하게 설명한다. "당장 수술 안 하면 죽습니다"라고 협박하기보다 현재 상태와 가능한 옵션을 논리적으로 제시한다.

진정한 전문가는 공포를 조장하기보다 정확한 팩트와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감정을 자극하기보다 이성에 호소한다. "큰일 났습니다! 나라가 망합니다!"라고 소리치는 대신 "현재 경제 지표가 이러하니 이러한 변수에 대비하여 포트폴리오를 조정합시다"라고 차분하게 말한다. 반면 사기꾼들은 언제나 당신의 감정을 흔든다. 당신을 다급하게 만들고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몰아세운다. "마감 임박", "선착순", "마지막 기회". 왜냐하면 시간이 주어지면 당신의 이성이 돌아오고 이성이 돌아오면 공포가 사라져 그들의 조악한 물건이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신이 생각할 시간을 뺏어야만 승리할 수 있다. 그들의 가장 큰 적은 당신의 냉철한 이성이다.

그러니 부디 기억하라. 당신이 지금 이 순간 느끼는 불안의 상당 부분은 당신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감정'이다. 입 냄새가 사회적 죽음이 아니듯, 눈가의 주름이 인생의 실패가 아니듯, 그들이 말하는 수많은 위협들은 사실 당신의 삶을 그렇게까지 파괴하지 못한다. 공포는 가장 확실한 세일즈맨이지만 동시에 가장 비열하고 악랄한 거짓말쟁이기도 하다. 당신의 지갑을 열기 위해, 당신의 소중한 한 표를 얻기 위해, 당신의 영혼을 잠식하여 조종하기 위해 오늘도 그들은 공포라는 미끼를 낚싯바늘에 끼워 당신 앞에 던진다. 그 미끼를 무는 순간 당신은 주체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그들의 먹잇감이 된다. 붉은색 경고등이 켜질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릴 때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무언가를 결제하기 직전마다, 투표소에서 누군가를 찍으려 할 때마다 이 문장을 주문처럼 떠올려라. "이 공포의 가격은 얼마인가? 그리고 이 돈은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가는가?" 공포를 사는 것을 멈출 때, 누군가가 주입한 불안을 거부할 때, 비로소 당신은 당신의 삶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다. 저기 저 세일즈맨의 현란한 화술과 겁주기에 속아 넘어가지 말고 그가 등 뒤에 감추고 있는 계산기를 똑바로 응시하라. 그것이 이 거대한 공포의 시장에서 당신의 통장과 영혼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강력한 생존 수칙이다. 세상이 당신을 겁줄 때마다 쫄지 마라. 그저 그들이 무엇을 팔고 싶어 하는지를 꿰뚫어 보라. 그러면 공포는 힘을 잃고 당신은 자유를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