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정직’이라는 가치를 숭고한 미덕으로 교육받으며 자라난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피노키오의 동화부터, 정직하게 나무를 벤 것을 고백하여 칭찬을 받았다는 조지 워싱턴의 벚나무 일화까지, 세상은 온통 진실만이 최후의 승리자라고 떠들어댄다. 그러나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차가운 사회의 아스팔트 위에 서는 순간, 우리는 기이한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세상은 교과서가 말한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교활하게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하며,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달콤한 거짓을 속삭이는 자들이 더 높이 비상하는 꼴을 목격하게 된다. 당신이 서점에서 무심코 집어 든 자서전,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하는 스타트업의 눈부신 성공 신화, 심지어 역사 교과서에 굵은 글씨로 박제된 위인들의 일대기를 냉소적인 눈으로 다시 보라. 그것들이 정말 티끌 하나 없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Raw Fact)’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다면, 당신은 아직 이 세상의 작동 원리를, 권력의 속성을 너무나 모르는 순진한 양에 불과하다.

모든 위대한 서사는 치밀하게 기획되고 계산된 편집의 결과물이다. 역사상 이름을 남긴 승리자들은 자신의 과거를 있는 그대로 전시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현재 자신들이 쥐고 있는 권력과 부, 그리고 명예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들을 해체하고 재조립한다.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윤색하고, 때로는 아예 없던 일을 있었던 일처럼, 있었던 일을 없던 일처럼 날조하기도 한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는 격언은 비단 피가 튀는 전쟁터에서만 통용되는 진리가 아니다. 총성 없는 전쟁터인 비즈니스 정글, 그리고 당신의 인생이라는 치열한 생존의 장에서도 이 법칙은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절대적이다. 펜을 쥐고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결국 미래를 결정짓는다.

위인전은 승리자가 쓴 가장 정교한 판타지 소설이다

당신의 책장 한구석에 꽂혀 있을지도 모를 위인전들을 다시 펼쳐보자. 그 책 속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떡잎부터 달랐다. 태어날 때부터 범상치 않은 태몽이 있었고, 유년 시절의 사소한 장난조차 비범한 천재성의 징후로 해석된다. 발명왕 에디슨이 닭장에 들어가 알을 품었던 그 엉뚱한 기행은, 단순히 정신 산만한 아이의 장난이 아니라 과학적 호기심이 폭발하던 천재의 싹으로 묘사된다. 앞서 언급한 조지 워싱턴의 벚나무 일화는 실제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무결한 지도자인지를 증명하는 신성한 신화가 되었다. 스티브 잡스의 괴팍한 성격은 혁신을 향한 타협 없는 열정으로, 일론 머스크의 기행은 인류를 구원하려는 선구자의 고뇌로 포장된다. 이것이 바로 ‘서사적 일관성(Narrative Consistency)’의 힘이다. 대중은 혼란스럽고 모순적인 인간의 삶, 즉 ‘노이즈’를 견디지 못한다. 영웅이 밥을 먹다가 흘리거나, 화장실에서 끙끙거리거나, 찌질하게 연인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한 사람을 볼 때, 그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오를 운명이었다고, 태생부터 우리와는 다른 종족이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래야 나의 평범함이 정당화되고, 그들의 성공이 납득 가능한 범위 내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중의 심리를 본능적으로 간파한 영리한 자들은 자신의 과거를 철저하게 큐레이팅(Curating)한다. 그들은 인생에서 벌어진 수만 가지의 사건들 중에서, 현재 자신의 이미지와 목표에 부합하는 조각들만 핀셋으로 골라낸다. 그리고 그것들을 ‘인과관계’라는 보이지 않는 실로 엮어 매끄럽고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들어낸다. 사실 그들의 삶이라고 해서 당신과 무엇이 그리 달랐겠는가. 그들도 이불 킥을 유발하는 지질한 실수를 연발했고, 운이 좋아 살아남았으며, 때로는 비겁하게 등 뒤로 숨거나 도망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불필요한 ‘노이즈’들은 위인전이라는 편집실 가위질 아래서 가차 없이 잘려 나간다. 바닥에 떨어진 필름 조각들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남는 것은 오직 고난을 극복하고, 역경을 딛고 일어서, 마침내 운명에 맞서 싸워 승리한 영웅의 찬란한 서사뿐이다. 당신이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끼는 이유는 단 하나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편집되지 않은 지루한 원본 필름, 그 자체로 보고 있는 반면, 타인의 삶은 화려한 특수효과와 웅장한 배경음악, 그리고 교묘한 편집이 입혀진 블록버스터 영화의 예고편으로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교가 될 리가 없다. 애초에 게임의 룰이 다른 것이다.

차고(Garage)라는 이름의 현대적 성지(Sanctuary)

실리콘밸리의 창업 신화를 이야기할 때, 마치 종교적 성지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소가 있다. 바로 ‘차고(Garage)’다. 휴렛 팩커드, 애플, 구글, 아마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이 거대 기업들의 공통점은 모두 허름하고 좁아터진 차고에서 시작되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이야기는 듣는 사람의 심장을 뛰게 한다. 가진 것 없는 청년들이, 자본도 인맥도 없이 오직 열정이라는 무기 하나만 들고 허름한 차고에 모여 세상을 뒤집어놓을 혁신을 만들어냈다는 서사. 얼마나 낭만적이고 매혹적인가? 이것은 현대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며, 개천에서 용이 나는 기적의 증거처럼 들린다. 하지만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가운 이성으로 그 이면을 들여다보자. 그들이 정말, 순수하게 차고에서‘만’ 일했을까? 그 차고가 위치한 동네는 어디였을까? 치안이 불안한 슬럼가였을까, 아니면 중산층 이상의 백인들이 거주하는 안전하고 쾌적한 교외였을까? 그들의 부모는 누구였고,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과 네트워크는 어느 정도였을까?

빌 게이츠가 하버드를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을 때, 그의 어머니인 메리 맥스웰 게이츠가 IBM의 임원들과 깊은 친분이 있었고 그 덕분에 초기 계약을 따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위인전에서 자주 생략되거나 각주로 처리된다. 제프 베이조스가 아마존을 창업할 때 부모로부터 당시 돈으로 거액의 투자를 받았다는 사실보다는, 그가 무릎을 꿇고 직접 책을 포장해서 배송했다는 ‘고생담’이 훨씬 더 크게 부각된다. 여기서 ‘차고’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바닥에서 시작했다(Started from the bottom)’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설정된 상징적인 무대 장치이자 미장센이다. 이 장치가 있어야만 그들의 성공은 부모 잘 만난 금수저의 고상한 취미 생활이 아니라, 밑바닥 진흙탕에서 기어 올라온 영웅의 처절한 승리가 된다. 대중은 금수저의 성공에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질투할 뿐이다. 하지만 자수성가한 영웅에게는 경외심을 갖는다. 그들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당신이 만약 자신의 사업을 시작한다면, 혹은 퍼스널 브랜딩을 통해 전문가로 자리잡고 싶다면 이 점을 뼛속 깊이 새겨야 한다.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차고’가 필요하다. 그것은 반드시 미국식 주택에 딸린 진짜 차고일 필요는 없다. 창문 하나 없는 고시원 쪽방일 수도 있고, 시끄러운 카페 구석 자리일 수도 있으며, 모두가 잠든 새벽 퇴근 후 켜진 낡은 노트북 앞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당신의 ‘헝그리 정신’과 ‘시작의 미약함’, 그리고 ‘순수한 열정’을 대변하는 상징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미 성공해서 번쩍이는 수트를 입은 당신의 현재 모습보다, 그 성공을 거머쥐기 위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밤을 새웠던 초라한 시절의 당신에게서 더 큰 감동과 동질감을 느낀다. 당신의 화려한 현재를 더욱 눈부시게 빛내고 싶다면, 그 배경이 되는 과거를 최대한 어둡고, 춥고, 척박하게 칠해야 한다. 빛은 어둠 속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법이다. 이것이 바로 콘트라스트(Contrast) 효과를 이용한 서사 구축의 핵심 기술이다.

우연을 필연으로 둔갑시키는 언어의 연금술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 대학 졸업 축사에서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명언을 남겼다. "점들을 연결하라(Connecting the dots)." 그는 자신이 대학을 중퇴하고 호기심에 이끌려 도강했던 서체 수업이, 당시에는 아무 쓸모없어 보였지만 훗날 매킨토시의 아름다운 폰트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과거의 무의미해 보였던 경험들이 결국 미래의 어느 시점에 연결되어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말 멋진 말이다. 듣는 순간 가슴이 벅차오른다. 하지만 이 말에는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교묘한 함정이 숨겨져 있다. 잡스 본인도 덧붙였듯이, 점들은 오직 ‘미래를 내다보면서(looking forward)’는 연결할 수 없고, ‘뒤를 돌아볼 때만(looking backward)’ 비로소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즉, 결과론적인 해석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본질적으로 무수한 우연과 혼돈의 연속이다.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것도,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도,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도, 어쩌면 아주 사소한 우연들이 겹치고 겹쳐 만들어진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그리고 성공하고 싶은 당신은 이 ‘우연’을 그냥 우연인 채로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게으름이다. 그들은 사소한 우연을 ‘운명적 계시’로, ‘필연적 만남’으로 재해석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사람을 ‘평생의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날 운명’이었다고 말하고, 우연히 겪은 뼈아픈 실패를 ‘더 큰 도약을 위해 신이 내린 시련’이었다고 포장한다.

이것은 거짓말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관점의 전환이자, 해석의 영역이다. 사실(Fact)은 하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각도와 해석에 따라 서사의 결은 천지 차이로 달라진다. 당신의 과거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훑어보라. 분명 그 당시에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일들, 엉뚱한 짓이라고 핀잔 들었던 취미, 실패로 끝난 도전들이 흩어져 있을 것이다. 이제 그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숨결을 불어넣어라. 그때 그 처절한 실패가 있었기에 지금의 단단한 내면을 가진 내가 되었고, 그때 그 엉뚱한 덕질이 있었기에 남들과는 다른 창의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라. 과거의 흩어진 파편들을 주워 모아 ‘필연’이라는 강력한 접착제로 붙여라. 그러면 당신의 인생은 우연히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맹이가 아니라, 장인의 손길로 정교하게 세공된 다이아몬드처럼 보일 것이다. 독자들은 당신의 성공이 단순한 ‘운빨’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과 운명의 필연적 결과라고 믿어 의심치 않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권위를 그 누구도 넘볼 수 없게 단단하게 만드는 기초 공사다.

불온한 기록은 소각하고, 영광의 기록은 조각하라

영화 편집의 미학은 무엇을 보여주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여주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훌륭한 감독은 지루하거나, 불필요하거나, 주제를 흐리는 장면을 과감하게 잘라낸다. ‘컷(Cut)’의 예술이다. 당신의 인생 편집도 이와 정확히 같아야 한다. 영웅의 서사에 방해되는 과거, 캐릭터의 일관성을 해치는 기억은 과감하게 지우고 소각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하게 만드는, 기억 속에서 영원히 도려내고 싶은 ‘흑역사’를 가지고 있다. 술에 취해 전 애인에게 보낸 찌질한 문자, 사회생활 초년생 시절의 어설픈 실수, 비겁하게 침묵했던 순간들, 무능력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프로젝트들. 이것들을 굳이 세상 앞에 솔직하게 고백할 필요는 없다.

물론, 요즘 시대는 ‘솔직함(Authenticity)’이 미덕이라고들 한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인간적이라고 추켜세운다. 하지만 속지 마라. 그것은 어디까지나 ‘매력적인 결함(Attractive Flaw)’일 때만 유효한 전략이다. 너무 완벽해서 재수 없는 인간미를 상쇄시키기 위한, 계산된 빈틈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당신의 전문성을 뿌리째 흔들 치명적인 약점이나,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과거는 철저히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맞다. 정치인들을 보라. 선거철만 되면 과거의 행적을 세탁하고, 불리한 기사를 막느라 혈안이 된다. 기업들은 브랜드를 리뉴얼하면서 과거의 촌스러운 로고와 실패한 제품 라인업을 홈페이지에서 지워버린다. 이것은 비열한 짓이 아니다.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전략이다.

당신이 전문가로 포지셔닝하고 싶다면, 초보 시절 뭣 모르고 올렸던 어설픈 작업물들은 인터넷 세상에서 깨끗이 지워버려라. 당신이 세련된 라이프스타일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다면, 과거에 남긴 저속한 댓글이나 패션 테러리스트 시절의 사진들은 정리하라. 디지털 세상은 잊지 않지만, 당신이 노력하면 검색 결과의 뒤페이지로 밀어낼 수는 있다. 물론, 모든 과거를 완벽하게 지울 수는 없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면, 오히려 역이용하는 유도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 사업에 크게 실패해 신용불량자가 되었던 기록이 있다면, 그것을 숨기려다 들키는 것보다 차라리 먼저 꺼내놓고 ‘처절한 실패를 통해 돈의 소중함과 경영의 본질을 깨달은 경험’으로 재포장하라.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 같은 치명적인 과거조차도, 그것을 극복해 냈다면 ‘지옥에서 돌아온 자’의 강렬한 서사로 승화시킬 수 있다. 핵심은 ‘통제(Control)’다. 당신의 과거가 당신의 현재를 공격하게 무방비로 두지 마라. 당신이 주도권을 쥐고 과거를 재해석하거나, 아예 대중의 시야에서 치워버려라. 기억하라, 대중은 당신이 보여주는 것만 볼 수 있고, 당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만 믿는다.

태어날 때부터 영웅이었던 것처럼 연기하라

인간은 본능적으로 ‘일관성’을 신뢰한다. 어제는 이랬다 오늘은 저랬다 하는 사람은 종잡을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반면, 한결같은 사람은 신뢰를 얻는다. 따라서 당신은 태어날 때부터 지금의 당신이 될 운명이었던 것처럼, 당신의 인생 전체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온 것처럼 연출해야 한다. 이것이 ‘일관성의 법칙’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환경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면, 당신의 어린 시절은 자연을 사랑하고, 길가에 핀 꽃 한 송이도 꺾지 못하며, 쓰레기 줍기를 놀이처럼 즐겼던 아이로 묘사되어야 한다. 사실은 하루 종일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고, 분리수거는커녕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렸던 아이였다 해도 상관없다. 당신의 기억 저장소를 뒤져보면, 분명 아주 어릴 적 곤충을 보고 신기해했던 순간이나, 다큐멘터리에서 아픈 북극곰을 보고 1초라도 슬퍼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 작은 기억의 조각을 찾아내어 현미경으로 확대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강조하라.

이것은 사기가 아니다. ‘캐릭터 구축(Character Building)’이다. 훌륭한 배우가 배역에 완벽하게 몰입하기 위해 캐릭터의 전사(Backstory)를 치밀하게 설정하는 것과 같다. 당신은 ‘당신’이라는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이자, 그 영화를 찍는 감독이다. 당신의 캐릭터가 관객(대중)에게 설득력을 가지려면, 과거의 행동과 현재의 모습 사이에 논리적 모순이 없어야 한다. 갑자기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전문가는 없다. 대중은 그런 사람을 사기꾼이라고 의심한다. 대신 오랜 시간 한 우물을 팠고, 끊임없이 고민했으며, 수많은 시행착오와 인고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는 서사를 만들어라. 그래야 당신의 권위가 선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과장과 조미료는 허용된다. 아니, 필수적이다. 밋밋하고 건조한 팩트의 나열은 그 누구의 이목도 끌지 못한다. 당신이 겪은 고난은 더 극적이고 비참하게, 당신이 이룬 성취는 더 운명적이고 필연적으로 그려내라. 당신의 경쟁자들이 토익 점수 10점을 더 올리기 위해, 자격증 하나를 더 따기 위해 쩔쩔맬 때, 당신은 당신만의 전설을 써 내려가라. 스펙은 비교당하기 쉽지만, 스토리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대체 불가능하다. 당신만의 오리진 스토리(Origin Story)를 완성하는 순간, 당신은 더 이상 누군가와 비교되는 ‘n분의 1’의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고유한 브랜드가 된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서사를 가진 존재가 되는 것이다.

펜을 쥔 자가 역사를 쓴다: 당신은 작가인가, 등장인물인가?

역사는 고정된 불변의 진실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다시 쓰이고, 덧칠해지는 텍스트다. 국가도 건국 신화를 만들고, 기업도 창업 스토리를 만들고, 종교도 같은 경전이라도 다르게 해석해가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하물며 개인인 당신이 역사를 쓰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당신의 과거를 타인의 해석에, 세상의 편견에 맡겨두지 마라. “그 사람은 원래 그랬어”, “ 쟤는 옛날부터 싹수가 노랬어”라는 남들의 평가에 당신을 가두지 마라. 당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그리고 어디로 갈 것인지 정의할 권리는 오직 당신에게 있다.

과거는 지나갔기에 바꿀 수 없다고? 전혀. 물리적인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기억은, 의미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당신이 지금 당장 펜을 들어라. 그리고 당신의 이력서를, 자기소개서를, 링크드인 프로필을, 인스타그램 피드를 다시 써라. 무미건조한 팩트의 나열이 아니라, 사람을 홀리는 매혹적인 이야기로 바꿔라. 당신을 작고 초라하게 만드는 기억은 지우개로 빡빡 지우고, 당신을 빛나게 하는 기억은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어 광을 내라. 흩어진 점들을 강제로 연결하여 거대한 별자리를 만들어라. 당신이 펜을 쥐고 있는 한, 과거는 언제든, 몇 번이든 다시 쓸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당신의 손으로 다시 쓰인 과거는, 당신을 더 높은 곳으로 밀어 올리는 가장 강력한 로켓 추진체가 될 것이다. 당신은 당신 인생이라는 거대한 대하소설의 집필자다. 엑스트라나 조연으로 살지 마라. 이제, 당신만의 위인전을 집필할 시간이다. 세상은 당신이 쓴 대로 당신을 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