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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이긴다는 달콤한 속삭임
마팅게일은 18세기 프랑스 도박장의 구석에서 탄생했다. 규칙은 놀라울 만큼 단순했다. 적은 돈으로 베팅을 시작한 뒤 한번 져서 모두 잃으면 그 금액을 두 배로 늘리는 식으로 계속 잃은 돈을 쌓아 두고, 언젠가 한 번이라도 이기면 지금까지의 손실을 모두 복구하고 처음 베팅한 만큼의 이익을 얻는다는 발상이었다. 그렇게 도박꾼들은 “한 번만 맞히면 다 만회한다”는 구호에 매료됐다.
이론상 그렇기도 하다.
- 처음에 금액 a만큼을 베팅한다.
- 만약 이기면 그만두고 a만큼의 이익을 얻는다.
- 그렇지 않고 지면, 다음에는 베팅액을 두 배인 2a로 늘려 다시 베팅한다.
- 두 번째도 지면 베팅액을 다시 두 배로 늘려 4a를 걸고, 또 지면 8a, 16a… 이렇게 패배할 때마다 베팅액을 계속 두 배씩 키운다.
- 그리고 언젠가 한 번만 이기면, 그 순간까지 쌓인 모든 손실을 복구하고 처음에 베팅한 a 만큼의 순이익을 얻게 된다.
이 전략이 사람들을 홀린 까닭은 자잘한 승리의 경험이 자주 찾아온다는 점이다. 통상 연속으로 같은 색이 나올 확률은 낮아 보이고, 실제로도 몇 차례 도전 안에 원하는 색이 나오는 일이 흔하다. 그러다 보니 “계속 올인했더니 5번째 만에 본전 찾고 수익으로 마무리했다”는 무용담이 술잔을 돌며 퍼졌다. 그러나 그 뒤에 숨어 있는 잠재적인 위험은 대화에서 잘려 나가곤 했다. 지속적으로 두 배씩 늘리다 보면 한 번의 대패로 전 재산이 날아간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카지노는 이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우스는 룰렛 테이블마다 최대 베팅 한도를 둬 무한 두 배 배팅을 물리적으로 끊어 버렸다. 게다가 소수점 확률과 같은 인간 편에 서지 않는 숫자를 전략적으로 집어넣어 지속적인 우위를 챙겼다. 그 작은 슬롯들이 모여 전체 승률을 50% 아래로 낮추면서, 언젠가 이긴다는 약속은 사실상 언젠가 빈털터리로 만드는 현실로 바뀐다.
확률 이론도 같은 결론을 내린다. 전문 용어로 ‘갬블러스 루인’이라 부르는 개념은 불리한 게임을 계속하면 결국 파산한다는 아주 직설적인 통찰을 던진다. 이 정리는 복잡한 공식 대신 간단한 교훈을 남긴다. 손실의 깊이는 몇 번의 연패로도 충분히 걷잡을 수 없게 커질 수 있고 그렇게 리스크는 시간이 갈수록 쌓인다.
그럼에도 이 두 배 배팅법이라고 알려진 마틴게일 배팅 전략은 금융시장으로도 이동했다. 외환과 선물 시장에서 일하던 트레이더들은 수학적으로도 한 번만 잘하면 잃은 돈을 모두 찾는다는 말에 끌려 도박장의 기술을 차트 위에 옮겨왔다. 승리 경험이 잦을수록 위험 신호는 묻혔다. 손님을 유혹하는 카지노의 화려한 조명처럼 거래 화면에는 양봉 캔들이 자주 찍혀 보였다. 하지만 수수료, 슬리피지, 세금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공식에는 없는 불리함은 여전히 존재했고 판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순간 현실이 드러났다.
월가, 규제기관, 개인투자자가 얻은 세 가지 교훈
1998년 월가는 그 폭탄이 터졌을 때 어떤 소리가 나는지 똑똑히 들었다. 노벨상 수상자가 운영하는 헤지펀드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있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는 “시장 가격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안고 포지션을 계속 키웠다. 그 인간 심리는 두 배 배팅과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 국채가 흔들리던 그해 8월, 가격이 정상으로 회복되기 전에 레버리지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순식간에 자본금의 90% 가까이가 사라졌다. 결국 이론과 다르게 뉴욕 연준이 주선한 36억 달러 규모의 민간 구제금융이 투입돼야 했다.
이 사건 이후 규제 당국은 레버리지 확대가 언제든 시장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급히 메모장에 적어 내려갔다. 바젤 III와 스트레스 테스트, 증거금 상향은 그 메모의 결과물이다. 개인 투자자에게도 교훈은 명쾌하다.
첫째, 게임을 언제 멈출지가 전략의 절반이다. 하루에 손절 2%와 같이 명확한 종료선을 그어 두지 않으면, 작은 승리가 반복될수록 이번에도 괜찮겠지 싶은 욕망이 고개를 든다. 실패는 늘 예상보다 빠르다.
둘째, 자신만의 속도제한 장치가 필요하다. 켈리 기준(Kelly criterion) 같은 포지션 조절 방법은 어렵지 않다. 요약하자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보다 과속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방법을 발명한 벨 연구소의 존 켈리 주니어는 “장기적으로 자본을 지키면서도 성장시키려면, 판돈을 한 번에 다 걸지 말고 일정 비율만 헤집어라”는 원칙을 제시했다.
셋째, 흔들림을 견디는 안전띠가 있어야 한다. 시장은 종종 돌발 변동성을 보여 준다. 변동성 지표(ATR 등)에 따라 베팅 크기를 조절하거나, 최대 손실 한도를 두고 자동으로 청산하도록 설정하면 결정적 한 방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배 배팅의 달콤함은 인간 심리를 교묘히 파고든다. 연패 뒤에 찾아오는 한 번의 승리가 남다른 희열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서 희열은 대체로 위험 신호일 때가 많다. 지금까지 좋았다는 안일함이 쌓이면 어느 날 아침 액정 속 잔고가 텅 빈 창고가 되어 있을 것이다. 소도 잃지만 고칠 외양간도 없다.
역설적이게도, 마틴게일은 여전히 학습 도구로는 탁월하다. 손실이 어떻게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지 체험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백테스트나 모의투자에서 이 전략을 실행해 보면 승리가 반복되는 구간 뒤에 찾아오는 거대한 낙폭이 마음을 얼얼하게 만든다. 이 체험은 오히려 뼈를 때리는 조언보다 더 강렬한 학습이 된다.
결국 남는 결론은 단순하다. 좋은 경험이 자주 발생한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불은 한 번만 크게 번져도 모든 것을 태운다. 두 배 배팅이 주는 승리의 불꽃은 매혹적이지만 불똥이 튀면 잿더미가 되는 속도 또한 두 배가 된다. 투자자는 그 불꽃 대신 튼튼한 방화벽을 고르는 쪽이 낫다. 시장은 화려한 승리담으로 가득해 보이지만 그 뒤에 감춰진 실패담이 훨씬 더 길고 깊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마틴게일의 빛은 우리의 포트폴리오를 태우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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