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라는 이름의 고문실, 우리는 선택하다 늙어 죽을 것이다퇴근 후 샤워를 마치고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켠다. 맥주 한 캔을 따고 '오늘은 기필코 끝내주는 영화를 한 편 보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로맨틱 코미디 섹션을 훑다가, 스릴러 섹션을 기웃거리고, 요즘 뜬다는 다큐멘터리 예고편을 3초 정도 보다가 끈다. 스크롤을 내리고, 또 내린다. 썸네일들이 화려하게 춤을 추며 시선을 강탈한다. 그렇게 40분이 흐른다. 맥주는 미지근해졌고, 결국 지친다. 결국 봤던 시트콤을 다시 틀어놓고 스마트폰을 든다. 익숙한 풍경인가?이건 비단 OTT 플랫폼만의 문제가 아니다. 점심 메뉴를 고르기 위해 배달 앱을 켰을 때, 립스틱 하나를 사기 위해 올리브영에 들어갔을 때, 심지어 주말에 읽을 책 한 권을 고..
나의 작고 소중한 세계에 타인을 들이는 일주말 저녁, 근사한 홈 파티를 열었다고 상상해 보자. 너른 거실은 세련된 조명으로 빛나고, 엄선한 플레이리스트가 흐른다. 그런데 초대받은 손님 중 누군가가 불쑥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자기가 가져온 정체불명의 식재료로 요리를 시작한다면 기분이 어떻겠나. 그 요리가 미슐랭 3스타급의 걸작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끼던 그릇을 깨뜨리거나, 최악의 경우 주방을 홀라당 태워먹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소프트웨어 개발의 세계에서 '플러그인(Plugin)'을 허용한다는 건 바로 이런 딜레마와 마주하는 일이다. 피그마(Figma)나 VS Code 같은 도구들이 위대한 이유는 개발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기능들을 사용자가 직접 만들어 붙일 수 있게 문을 활짝 열어두었기 때..
자바스크립트 제국과 솔리디티 연방의 언어 장벽자, 상상을 좀 해보자. 여기 거대한 두 개의 세계가 있다. 한쪽은 우리가 매일 보는 웹사이트와 앱들이 화려하게 돌아가는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제국'이다. 이 친구들은 유연하고, 빠르고, 무엇보다 사용자 친화적이지. 버튼을 누르면 반응하고, 화면을 예쁘게 꾸미는 데 도가 텄다.반대편에는 '솔리디티(Solidity) 연방'이 있다. 블록체인이라는 차가운 금속성 대지 위에 세워진 이 나라는 엄격하다. 한번 뱉은 말(코드)은 절대 주워 담을 수 없고, 돈과 자산이 오가는 곳이라 융통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 게다가 이더리움 가상 머신(EVM)이라는 아주 독특한 기계 안에서만 숨을 쉴 수 있지.문제는 이 두 세계가 서로 대화를 해야 한다는 거다. 네가 ..
출근도, 보고도 없는 꿈의 직장이 있다?상상해 봐라. 아침 9시에 울리는 알람도 없고, 지옥철에 몸을 구겨 넣을 필요도 없다. 기분 나쁜 상사의 잔소리를 들으며 영혼 없는 보고서를 작성할 의무도 없다. 그런데도 이 조직은 수천 억 원의 자금을 굴리고, 전 세계의 인재들이 모여 프로젝트를 완수하며, 그 대가로 막대한 보상을 분배한다. 심지어 이 회사의 금고는 누구에게나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어서, 누가 얼마를 가져갔는지 1원 한 푼까지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다. CEO도 없고, 인사팀도 없고, 심지어 사무실 주소조차 없는 회사. 공상과학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당장 블록체인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탈중앙화 자율 조직)'의..
파트너 파악하기: 낯선 무용수와의 첫 대면무대 조명이 켜지고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당신 앞에는 'AI'라는 이름의 파트너가 서 있다. 이 파트너는 지칠 줄 모르고, 세상의 모든 춤 동작을 데이터로 학습했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영혼'이 없다는 것이다. 음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금 이 춤이 슬픔을 표현하는지 환희를 표현하는지 녀석은 모른다. 그저 당신의 손짓 하나, 눈빛 하나에 반응해 다음 스텝을 확률적으로 계산해 낼 뿐이다.많은 사람들이 AI를 그저 '돈만 넣으면 음악이 나오는 주크박스' 쯤으로 착각한다. 대충 명령어를 던지면 알아서 걸작이 나올 거라 기대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은 자판기가 아니라 '사교 댄스'다. 그것도 아주 예민하고 정교한 탱고다. 당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