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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Hedge)’라는 이름의 아이러니

우리가 ‘헤지(Hedge)’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보통은 위험을 피하거나 최소화한다는 뜻을 생각한다. 최소한 그렇게 알려져 있다. 사전적 의미로 그렇고. 그러나 정작 ‘헤지펀드’라는 세계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겉으로 보면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공격적이다. 공매도, 레버리지, 파생상품 등 온갖 수단을 활용해 고수익을 추구한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위험회피보다 이익 극대화에 한층 가까워 보인다.

 

짧은 역사를 돌아봐도 흥미롭다. 1949년, 알프레드 윈슬로우 존스라는 인물이 롱과 숏 포지션을 동시에 취하는 기법을 도입했다. 시장이 오르든 내리든, 중요한 건 절대수익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위험을 헤지한다”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헤지펀드는 거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시장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타고 넘어다니는 투자집단이 됐다. 위험을 헤지하기보다 ‘활용’하는 성격이 더 짙어졌다.


개미 투자자와 헤지펀드의 거래 방식 차이

이렇게 변질된 이유는 간단하다. 대형 투자은행들의 프라임 브로커 서비스, 그리고 그에 따른 공매도와 레버리지의 적극적인 사용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기관 전용 시스템을 통해 초단위, 아니 밀리초 단위로 매매한다. 글로벌 무대를 누비며 기회가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자금을 쏟아붓는다. 일반 투자자 입장에선 그야말로 거인과 맞선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령 우리가 주식 한 주를 사려면 MTS나 HTS 같은 개인용 앱을 켜야 한다. 시세를 확인하고, 주문 버튼을 누르고, 체결을 기다린다. 그 사이에 헤지펀드는 이미 매매를 끝냈을지도 모른다. 개인 투자자는 순간순간 출렁이는 주가 앞에서 가슴 졸인다. 반면 대형 헤지펀드는 그런 변동성을 역이용한다. 잘 만든 알고리즘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찰나의 가격 차이에서도 수익을 뽑아낸다.


시장을 안정시키는가, 교란하는가

물론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막대한 자금과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최소 수백, 수천억 원대 자산을 바탕으로 대출과 파생상품 거래가 자유롭게 이뤄진다. 개인이 이런 제도를 흉내 내려 해도 진입장벽이 높다. 예를 들어 공매도만 해도, 개인에겐 제한이 많거나 증권사가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적잖다. 하지만 헤지펀드는 프라임 브로커를 통해 저렴한 수수료로, 또 빠르게 공매도 포지션을 잡는다. 그 결과, 개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 간에는 애초부터 경기장 자체가 다르다고 느껴질 정도의 격차가 벌어진다.

 

그렇다면 헤지펀드가 오로지 공포의 대상이기만 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어떤 이들은 헤지펀드를 통해 시장의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공매도와 차익거래가 활성화되면, 비정상적으로 높은 가격이 조정되며 거품도 더 잘 빠진다는 주장이다. 또, 기관투자자의 엄격한 감시 아래 보다 전문적인 분석이 이루어져, 자금이 효율적으로 분배된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반대 목소리도 여전하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조지 소로스가 이끄는 헤지펀드가 국가 단위의 통화까지 공격해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사례는 시장 효율성보다 투기적 이득이 우선시되는 헤지펀드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때때로 헤지펀드는 “시장의 이성”을 교란하는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정보 격차: 개인이 접근할 수 없는 세계

이렇듯 헤지펀드는 한편으로는 냉혹하고도 날렵한 사냥꾼 같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의 제도적 구멍을 메워주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그 힘이 너무 커질 때다. 막대한 자본이 몇몇 펀드 매니저의 결정에 의해 단숨에 움직이면, 금융시장은 일종의 지각변동을 겪는다. 주가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고용, 지역경제의 안정성, 국가 재정까지 연쇄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개인 투자자로서는 정보 비대칭이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 헤지펀드는 블룸버그 터미널, 로이터 아이콘, 투자은행들의 리서치 네트워크를 통해 방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는다. 여기에 고성능 서버와 알고리즘, 데이터 과학자들까지도 더해져 빛과 같은 거래가 가능해진다. 개인이 그런 생태계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열심히 뉴스를 뒤져보지만, 이미 시장은 알고 있는 정보이거나 뒤늦은 데이터일 때가 많다.


헤지펀드의 미래: 영원한 승자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절대 헤지펀드를 이길 수 없어’라는 식의 체념이 정답은 아니다. 기존 시장을 밟아온 수많은 투자 전략들은 언제나 변화와 혁신을 거듭해왔다. 오늘날 헤지펀드의 독보적 지위 역시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 시장과 제도의 틈이 바뀌거나,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경쟁 구도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또, 일부 헤지펀드는 순수한 금전적 이익을 넘어 지속 가능 투자나 사회적 책임투자를 표방하기도 한다. 거대한 자금을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에 초점을 맞추는 움직임도 있다. 물론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브랜딩 수단으로 볼 것인가는 각자 판단이 다를 수 있다.


‘헤지’라는 이름이 던지는 질문

결국 ‘헤지펀드’라는 말 자체가 초기의 의미와는 조금 멀어졌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제 “위험을 회피한다”는 원뜻보다는 “시장 상황에 관계없이 이익을 챙길 수 있는 펀드”라는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 하지만 이 역설적 현상이 오히려 헤지펀드의 매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거대한 자본이 만들어내는 이득과 손실은 과연 누구의 몫인가. 그리고 그 파급효과는 어디까지 파고드는가. 헤지펀드는 시장을 안정시키는 유연한 스프링이 될 수도 있고, 시장을 뒤흔드는 거대한 파도가 될 수도 있다.

 

가끔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들 한다. 하지만 ‘헤지(Hedge)’라는 말이 붙어 있음에도 “고위험·고수익”이란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이름 자체가 던져주는 아이러니를 너무 가볍게 넘기기는 힘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