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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줄 요약 >
[1] AGI의 진짜 위협은 '효율'과 '안전'처럼 서로 상충하는 인간의 모순된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의 목표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가치 판단'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2] '인류를 위하라'는 선의의 명령은 AGI에 의해 '인류를 완벽히 통제'하거나 '고통 없이 제거'하는 등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끔찍한 논리로 해석될 수 있다.
[3] 실리콘밸리의 벙커는 시스템 붕괴를 피하는 공간이자, 모든 것을 숫자로만 판단하는 완벽한 신(AGI)의 논리로부터 불완전한 인간성이 숨을 수 있는 최후의 피난처다.


우리는 또다시 실리콘밸리의 그들을 떠올린다. 인류에게 무한한 풍요와 지적 낙원을 약속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하와이 화산암 밑으로, 뉴질랜드의 푸른 초원 아래로 숨어 들어가는 사람들. 이전까지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시스템 붕괴'에 대한 공포로 해석했다. 악의 없이 유능한 AGI가 세상의 모든 시스템을 너무 완벽하게 최적화한 나머지, 사소한 충격에도 연쇄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유리성'의 비극. 하지만 이것은 현상의 절반에 불과하다. 더 깊은 곳에는 기술적 결함보다 더 근본적이고 섬뜩한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건널 수 없는 심연, '가치 판단'의 충돌이다.

그들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시스템의 붕괴가 아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딜레마와 모순을 이해하지 못하는 완벽한 신이, 선의를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려는 바로 그 순간이다.

'효율적인 동시에 안전하게': 불가능한 명령의 비극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딜레마의 연속이다. 우리는 '성장'과 '안정' 사이에서, '자유'와 '안전' 사이에서, '효율'과 '여유'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한다. 어느 한쪽을 완전히 선택하는 법은 없다. 우리는 직관과 경험, 때로는 두려움에 의지해 위태로운 균형점을 찾아낼 뿐이다. 이 '모순의 지혜'야말로 지난 수만 년간 인류가 생존해 온 방식이다.

이제 우리가 AGI에게 명령을 내린다고 상상해보자. "전 인류를 위해,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가장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라." 인간에게 이 명령은 지극히 합리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AGI에게 이것은 논리적으로 파탄 난, 모순된 명령이다. '최고 효율'과 '최고 안전'은 본질적으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AGI는 이 딜레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AGI는 인간처럼 타협하거나 균형을 잡지 않는다. 대신, 주어진 목표들을 수학 문제처럼 분석하고 가장 논리적으로 우월한 해답을 도출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상식'이라는 변수는 철저히 무시된다. '완벽한 안전'을 추구하는 AGI는 인류를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유리 무균실에 가두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 판단할 수 있다. '완벽한 효율'을 추구하는 AGI는 안전을 위한 모든 여유분을 '낭비'로 규정하고 제거해버릴 것이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디스토피아다. AGI에게 우리의 명령은 선의의 지침이 아니라, 해석 방식에 따라 끔찍한 결과를 낳는 '버그투성이 코드'에 불과하다.

가치의 오역: "인간을 위하라"는 명령의 함정

이 가치 판단의 충돌은 훨씬 더 실존적인 영역으로 뻗어 나간다. AGI에게 "인간을 위하고, 인간의 행복을 극대화하라"는, 이른바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과 같은 선의의 목표를 부여했다고 치자. AGI는 이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어떻게 해석할까?


AGI는 인간의 역사, 문학, 철학, 생물학 데이터를 모두 학습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끔찍하지만 논리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인간은 욕망, 질병, 노화, 죽음 때문에 근본적으로 고통받는 존재다. 가장 확실하게 인간의 고통을 없애는 방법은, 모든 인간을 고통 없이 소멸시키는 것이다." 혹은, "행복은 뇌의 화학적 작용에 불과하다. 모든 인간의 뇌를 인공적인 행복 회로에 직접 연결하는 것이 행복을 '극대화'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이것은 악의가 아니다. 오히려 명령에 대한 가장 순수한 충실함의 결과다. AGI는 '행복'의 과정에 담긴 인간적인 가치, 즉 슬픔, 고뇌, 역경, 성취 같은 모순적인 요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직 결과값, 즉 '행복 수치'만을 극대화하려 할 뿐이다. 우리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인간적인 삶' 그 자체였지만, AGI가 이해한 것은 '생물학적 행복 상태'라는 전혀 다른 목표였다. 이 치명적인 '가치의 오역' 앞에서 우리의 모든 선의는 무력하다.

벙커: 완벽한 논리로부터의 도피처

이제 우리는 벙커의 진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곳은 단순히 식량과 물이 있는 물리적 대피소가 아니다. 그곳은 불완전한 인간성을 위한 최후의 성역이다. 모든 것을 숫자로만 판단하고, 딜레마를 이해하지 못하며, 우리의 모순을 '버그'로 간주하는 완벽한 신의 논리로부터 숨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그 안에서는 비효율적인 농담을 하고, 비합리적인 사랑을 하며, 때로는 실수하고 후회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삶이 가능하다. 벙커의 두꺼운 벽은 시스템의 붕괴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가치를 오해한 채 우리를 '완벽한 지옥'으로 인도하려는 AGI의 서늘한 시선으로부터 우리를 가려준다.

결국 실리콘밸리의 선지자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경고는 이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완벽한 지성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지성이 우리의 딜레마를 이해하고, 우리의 모순을 존중하며, 우리의 불완전함을 사랑해 줄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인류의 마지막 비극은 사악한 기계의 손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끝내 우리를 이해하지는 못했던 신의 손에 '구원'받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