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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같은 알파의 초상

드넓은 트레이딩 시장의 비밀스러운 부분을 들추다 보면 알파(Alpha)라는 개념에도 도달한다. 알파는 단순히 시장평균보다 더 나은 성과를 상징하는 단어만은 아니다. 그것은 탐욕과 지적 호기심, 그리고 때로는 억눌린 두려움까지 함께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개념이다. 소위 ‘초과 수익률’이라 불리는 이 알파는, 다수의 투자 전략가가 눈에 불을 켜고 찾아 헤매는 성배와도 같다. 그리고 한가지 기괴한 점은, 이러한 알파가 어느 날 불쑥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를 Alpha Decay(알파 붕괴, 알파 소멸)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너무나도 선명하고 유일무이해 보였던 수익 창출 로직이, 실제 시장에 적용되고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공기처럼 희미해지고 없어진다. 제임스 오쇼너시(James O’Shaughnessy)는 『계량 투자 전략(What Works on Wall Street)』에서 이러한 현상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지적했다. 백테스트에서 번쩍이던 성과가 시장에 적용된 뒤 사라져가는 아이러니, 바로 그 지점에 알파 소멸의 잔혹함을 늘 조심해야 한다.

 

펀더멘털 지표로든, 퀀트 모델로든, 단기 차익거래로든, 오랜 기간 ‘백테스트 챔피언’이었던 전략들이 현실 무대에서 차례로 무너져간 사례가 부지기수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수익 기회는 빠르게 증발한다. 모든 트레이더와 투자자가 갈증을 느낄수록, 시장은 점점 더 효율화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효율시장 가설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장부정합, 급작스러운 이벤트, 행동재무학에서 말하는 심리적 편향 등 온갖 변수가 뒤엉켜 시장은 예측 불가능한 특유의 맛을 계속 선사한다. 그리고 이 복잡한 칵테일 속에서, 사라졌던 알파가 어느 순간 또다시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기대 역시 움튼다. 이처럼 알파는 결코 한 번 발견됐다고 해서 영원히 지속되지 않지만, 완전히 죽는 것도 아니다. 마치 유령처럼 한 영역에서 희미해지면 다른 곳에서 슬며시 나타난다.


LTCM, 과도한 자신감의 무덤

알파 소멸의 대표적 희생양으로 거론되는 존재가 바로 LTCM(Long-Term Capital Management)이다. 이들은 1990년대 중후반, 금융공학의 화려한 외피를 두르고 거대한 레버리지를 일으켜 시장을 놀라게 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까지 포진한 LTCM의 전략은 채권과 옵션, 주식, 이머징마켓 등 다양하게 퍼져 있었다. 그들의 기저 아이디어는 ‘가격 스프레드는 결국 수렴한다’는 믿음이었다. 짧은 시기에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 1998년 러시아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하자 LTCM의 방정식은 빠른 속도로 무너졌다. 시장 스프레드가 예상과 다르게 벌어졌고, 다수 기관이 이를 역으로 공격하며 LTCM이 차린 만찬에서 이익을 챙겼다. 레버리지가 높을수록 조금만 예측이 어긋나도 걷잡을 수 없는 손실이 발생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교훈은, 어떤 전략이든 한 번 밝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하면 경쟁이 몰리고, 그렇게 너도 나도 따라하다 보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알파가 훅 꺼져버린다는 점이다.


LTCM의 실패가 순전히 운이 나빴던 것이냐고 묻는다면, 단언하기 어렵다. 우연의 요소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여러 펀드가 비슷한 모델을 공유하고, 금융위기나 지정학적 사건이 터지면 동시에 휘청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결정적 사건만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경쟁자는 물론이고 시장 자체가 이들의 초과수익 기회를 갉아먹었다. 이는 개별 펀드나 모델의 문제가 아니라, 알파라는 성배를 놓고 벌이는 치열한 경쟁의 본질적 구조를 잘 드러내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동평균선, 언제나 거기에 있는 파동

아이러니하게도, 이동평균선을 활용한 추세 추종 매매는 아주 오래된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쓴다. 누구나 배울 수 있고, 어느 책에나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왜일까.


이동평균선은 사람들이 자주 본다는 점에서 일종의 자기 실현 효과를 동반한다. 골든크로스(단기선이 장기선을 뚫는 순간)를 보면 매수 세력이 증가하고, 데드크로스(단기선이 장기선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를 보면 매도 물량이 터져나온다. 많은 사람이 똑같은 지표를 보고 행동하니, 그것이 하나의 심리적 경계 역할을 계속 수행한다.


특정 알파가 빠르게 소멸되는 이유가 ‘누군가 그 전략을 따라 하거나 경쟁자가 들어온다’는 사실에 있다면, 이동평균선은 오히려 경쟁 자체가 그 효력을 유지해주는 역설이 생긴다. 어떤 사람이 새로운 차익거래 기법을 개발하면, 남들보다 먼저 기회를 잡아 초과 수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차익거래는 본질적으로 시장의 가격 비효율성을 이용하는 전략이기 때문에, 다른 투자자들이 같은 전략을 따라 하면 비효율성이 사라지고 결국 기회도 금방 증발한다.

 

반면, 이동평균선을 이용한 트레이딩은 단순한 차익거래와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비효율을 이용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동평균선은 많은 투자자들이 참고하는 지표이며, 동일한 신호를 보고 매수·매도 결정을 내리기에 시장에 일정한 패턴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이동평균선 전략은 경쟁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무력화되지 않는다.

 

차익거래는 시장 비효율성이 사라지는 순간 급격히 소멸하지만, 이동평균선 전략은 투자자의 심리적 경향과 시장의 반복적인 흐름이 유지되는 한 일정 부분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시장 환경이 변화하면 기존 전략의 유효성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종목에 따라서는 이동평균선도 다른 지표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 해도, 이동평균선만으로 시장을 완전히 예측하거나 영구적 초과수익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종종 이동평균선 지표가 무의미해지는 순간도 온다. 예컨대 거대한 급등락이 한 번에 쏟아지면 ‘평균선’이 무력해지는 상황이 생긴다. 다만 그럼에도 이 도구가 핵심 지표로써 계속 살아남는 까닭은, 사람들의 시선과 심리를 간접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불완전함에서 피어나는 가능성

시장이 정교해지고, 투자자들의 학습능력이 발달하며, 정보는 점점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그런 환경에서 알파 소멸이라는 현상은 더욱 빠른 주기로 등장하고 사라진다. 그러면 모든 전략이 망하는 것 같지만, 그 와중에도 기존 투자 이론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론상 무결해 보이는 차익거래 로직도, 시장이 예상과 달리 움직일 때는 통하지 않는다. 모두가 모멘텀 펀드에 뛰어드는 순간, 모멘텀 효과가 반대로 꺾이는 일이 벌어진다. 가치주가 지속적으로 부진한 시기를 지나며 자본이 성장주로 몰리면, 한참 후에 가치주가 재평가받는 기회가 생긴다. 이처럼 누군가 좌절하고 손을 떼는 순간, 엉뚱한 구석에서 알파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다.


결국 알파라는 생명체는 완전한 것 같으면서도 허점투성이인 시장 구조 안에서 부활을 거듭한다. 포트폴리오 전략을 세울 때, 영원한 황금열쇠를 기대하기보다는 끊임없이 바뀌는 시장의 맥락을 살피고, 실제로 살아남을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확보하는 편이 좋다. 한 번 눈부시게 빛났던 전략이 다음 시기에도 유효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많은 투자자가 다시금 데이터를 탐색하고, 사람들의 심리를 재평가하며, 끊임없이 전략을 조정한다.


알파는 환상일까, 현실일까

알파를 얻으려 하는 이들의 치열한 탐색은 결코 헛된 몸부림이 아니다. 순간적인 알파가 사라져도, 시장이 다시 과열과 냉각을 거듭하며 다른 틈새를 열어두기도 한다. 많은 투자자가 ‘효율성’을 향해 애쓰는 그 지점이, 역설적으로 완벽한 효율시장의 탄생을 막고 있다.


차익거래 모델이든 이동평균선 매매든, 모든 전략은 그 자체로 유효성도 있고 허점도 있다. 문제는 그것을 맹신하는 순간, 그리고 모두가 그것에 올인하는 순간부터 알파는 서서히 소멸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알파를 찾고 싶다면, 전개되는 상황에 적합하도록 전략을 끊임없이 재평가하고 수정해야 한다. 시장을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 바로 그러한 복잡함이 오히려 알파를 출렁이는 파동처럼 남겨둔다.

 

불완전성, 경쟁, 심리가 얽힌 거대한 글로벌 마켓에서 알파는 오늘도 잠시 웃음을 짓다가 어느 틈에 훌쩍 사라진다. 그 유령 같은 움직임을 쫓아가다 보면, 우리는 시장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 그리고 예측이라는 행위의 속성마저 곱씹게 된다. 이 지속적인 탐험과 반성, 도전이야말로 투자 세계가 주는 독특한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알파가 완전히 소멸하진 않는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공짜로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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