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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세계에서 인과를 묻다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에 따라 결과가 생긴다고 믿는 태도가 늘 옳지는 않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금융 시장에서 이러한 인과관계를 찾으려 애쓰는 태도가 여전히 어느 정도는 유효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브라질에 비가 오면 커피 원두 수확량이 줄어든다. 그렇게 커피 원두 가격이 오르면 커피 전문점의 원가 부담이 커지고 주가를 흔든다. 과거 이 간단한 예시가 주목받았던 이유는 서로 멀리 떨어진 사건이 마치 도미노처럼 이어진다는 것에 대한 묘한 쾌감을 제공하기 때문이었다.
자연현상, 정치적 이벤트, 기업 정책 하나하나가 차트 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설명하는 일은 섬세한 퍼즐 맞추기와 비슷하다. 한쪽 조각을 맞추면 전체 흐름이 보이지만 종종 다른 변수가 새롭게 등장해 그동안의 추론을 뒤집는다. 그래서 인과관계를 찾아내려는 노력은 언제나 진행형이다. 문제는 예상 가능한 사건이라면 투자자들이 미리 대응하기 쉽다는 점이다. 연준의 금리 인상 발표나 대형 기업의 실적 발표 등은 시장 내부에서 이미 여러 차례 시나리오가 가정되었다가, 수많은 베팅이 가해지며 차트에 선반영 된다. 발표 이후 차트가 극적인 변화를 보이지 않는 상황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선반영이 이루어진다는 말은 시장이 늘 미래를 내다보고 움직인다는 뜻이다. 루머나 사전 정보가 퍼지면 어느새 선물 시장이나 옵션 시장이 먼저 출렁인다. 주식 시장 차트는 이를 뒤따라 맞춰가는 후행적 지표가 되곤 한다. 그래서 발표 순간이 오면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이 되어버린다. 놀라울 만큼 매끄러운 흐름이지만 예측이 불가능한 돌발 이슈가 터지면 이 논리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지진이나 테러, 특정 국가의 갑작스러운 쿠데타 같은 일은 발표 이전에 포착될 가능성이 낮다. 극소수 내부자 외에는 미리 알 수 없으니 차트가 먼저 꿈틀거리기 어려운 것이다.
시장은 대개 논리적 인과관계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움직이지만 모든 경우를 과학 공식처럼 설명할 순 없다. 관성적으로 이어지던 흐름이 어느 날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과관계를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았는데, 사실은 시장이 심리적 편향으로만 움직였다”라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 정확한 예측보다는 유연한 대응이 더 중요하다는 철학이 여기에 담겨있다.
차트, 신호를 기록하는 지도
차트는 가격이 움직인 궤적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지도다. 수많은 투자자가 이 지도를 보고 앞으로 갈 길을 가늠하려고 애쓴다. 차트가 믿음직한 지침이 되려면 어떻게 그 신호가 생성되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금리 인상이 임박하다는 전망이 제기되면 일정 지점에서 차트가 이미 하락 추세로 접어드는 모습을 보이는 식이다. 이 현상을 두고 악재가 이미 반영되었다거나 시장이 선반영됐다고 표현한다.
물론 모든 것이 선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커다란 정보 공개를 앞두고도 별다른 움직임 없이 횡보하던 차트가, 발표와 동시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순간도 있다. 이는 실질적 수치가 시장의 예상을 훌쩍 벗어났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경제지표 발표가 예상치보다 훨씬 좋거나 혹은 형편없이 나쁠 때, 혹은 중앙은행이 시장이 기대하던 것보다 훨씬 강경 또는 완화적인 스탠스를 보여줄 때 차트가 크게 출렁인다.
이러한 관점의 가장 큰 함정은 특정 신호를 인과관계로 단정하는 경향이다. 예컨대, 실업률이 상승하면 경제가 망가질 것으로 보는 시선이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중앙은행의 완화 정책 기대감이 커져서 주가가 오히려 오르기도 한다. 선반영과 추가 반응이 꼬리를 물면서, 표면적으로는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렇게 어떤 투자자는 “차트가 선행 신호로 작동한다”고 믿고, 또 다른 투자자는 “이미 차트 속에 기대치가 다 녹아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는 두 흐름이 섞여 복잡한 시장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예측보다는 대응으로
인과관계가 분명한 것 같아 보여도 시장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천재지변, 정권 급변 사태, 갑작스러운 통화정책 변경, 보안 사고, 글로벌 지정학 분쟁 등 예상치 못한 요소가 불쑥 튀어나온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트가 미리 꿈틀거릴 겨를조차 없다. 정보가 극소수에게만 비공개로 전해지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에겐 사건 발생 자체가 기습적이다. 이처럼 선반영이 무의미해지는 사례를 두고 블랙스완이라 칭하기도 한다.
그래서 투자자나 관찰자 입장에서는 예측을 위한 인과관계 찾기 못지않게, 일어난 사건에 신속하고 냉정하게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시장에는 차트 분석, 거시경제 지표, 지하 정보망을 활용하는 이들이 공존한다. 하나의 관점으로는 모든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 브라질 폭우로 인해 커피 원두 공급 문제로 이어져 스타벅스 주가가 흔들린다는 스토리는 매력적인 예시지만, 폭우의 정도, 재고나 헷징 전략, 소비자 심리, 투자자 매수세까지 여러 변수를 종합해야만 더 정확한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결국 차트에 선반영된 것으로 끝날 때도 있고 시장의 부주의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나중에 부각되는 경우도 있다. 확실한 인과관계조차 다른 이슈와 얽혀 흐지부지될 때도 많다. 이 복잡함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인과관계를 추적하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한 이유는 주먹구구식 투자와 달리 논리적 사고가 불확실성을 조금이나마 줄여주기 때문이다. 동시에 절대적인 예측은 없다는 겸손을 갖춘다면 선반영 되지 않는 돌발 이슈에 대해서도 훨씬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인과관계가 차트에 미리 담길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구는 세계가 한 장의 수학 공식처럼 명확하게 돌아간다고 믿지만 누군가는 모든 현상이 우연과 심리 싸움에 의해 움직인다고 본다. 진실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출렁이고 있다. 오늘도 많은 트레이더들이 차트 뒤에 숨어 있는 복잡한 이야기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과정 자체가 경제와 금융 시장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본질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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