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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는 낭만이 존재하는가?

자본시장은 언제나 사람들의 환상과 공포를 함께 담아왔다. 특정 기업의 주가가 한없이 상승할 것처럼 보일 때, 그 이면에는 근거 없는 믿음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신기술에 대한 대중의 열광이 실제 가치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가리고, 숫자보다 스토리가 우위에 서는 순간이 온다. 이러한 무지성 낭만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수년간 거품을 형성하고 결국 터져버리는데 이러한 상황은 반복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비합리적 과열은 기술 발전이나 사회적 트렌드와 맞물려 폭발적인 투자가 이뤄진 시기에 빈번하게 발생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튤립 사태는 꽃 한 송이에 말도 안 되는 값을 매겼다가 한순간에 시장이 붕괴된 대표적 사건이다. 20세기말 닷컴버블 시기에는 잘 갖춰진 수익모델이 없는 인터넷 기업도 단지 인터넷 관련 비즈니스라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런 과열 현상이 완벽한 허상인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과 산업은 실제로 혁신을 가져오고, 어떤 기업은 이후에 시장을 주도하는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잡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실질 가치가 충분히 증명되기 전에 과도한 기대감이 붙는다는 점이다. 이때 투자자들은 이미 형성된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미래 가치를 추정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가격이 상승할수록 더 높은 가격을 합리적으로 믿어버리고, 끝없는 낭만 속에 뛰어든 투자자들은 결국 투기와 투자의 경계를 지워버리게 된다.

 

낭만이란 예측 불가능한 현상을 아름답게 포장할 때도 사용된다. 하지만 시장에 한 번 발을 들인 이상 낭만적 기대감만으로 성공을 꿈꾸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수익을 노린 사람들의 믿음이 근거 있는 낭만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결국 차가운 숫자를 마주하고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때 시장은 트라우마를 낳게 된다.


과연  무지성 과열은 어떻게 찾아올까?

비합리적 과열은 한순간에 폭발하지 않는다. 작은 기대감과 소문에서 시작해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방식으로 자라난다. 선발대로 분류되는 이들이 기존의 분석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고평가 종목을 사들이면 그 결과를 지켜보는 대다수 개인 투자자와 언론은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형성된 기대가 조금씩 커지다 보면 시장이 기존과는 전혀 다른 논리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인간이 수익을 얻을 때의 쾌감보다 손실을 볼 때의 고통을 훨씬 강렬하게 인식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시장이 이미 과열되고 있다는 신호가 나타나도, 혹시 더 오를지 모른다는 집단적 욕망이 경계심보다 앞서는 경우가 잦다. 특히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정보 교환 속도를 극도로 높였다. 의심스러운 루머나 검증되지 않은 전망이 확신으로 둔갑해 빠르게 퍼져나간다. SNS에 뜨는 투자 성공담은 한순간에 수천 명에게 전파되고, 사람들은 퇴사 등의 간접적인 성공 체험을 공유하면서 자신들의 불안을 지워나간다.

 

문제는 누군가 먼저 과열을 장점으로 포장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일종의 밈처럼 번진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에도 인터넷은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는 믿음 아래 신생 기업들이 상장되자마자 기하급수적으로 가치가 상승했다. 그중 일부는 실제로 괄목할 만한 기술 발전을 이뤘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들도 과대평가 속에서 거품이 터지기 전까지는 보석처럼 보였다. 쉽게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달콤한 속사귐은 대중에게 큰 유혹이 되었다. 그렇게 낙관론이 연쇄적으로 퍼지다 보면 시장의 논리는 합리성을 상실하게 된다.

 

투자자들이 완벽하게 이성적이라면, 이미 터무니없이 오른 가격에 더 뛰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자가 아니라 심리적 안전을 구매하듯이 행동한다. 일찍 들어간 사람들은 이미 수익을 얻고 나왔고 뒤늦게 뛰어드는 이는 그 수익의 뒷자락만 겨우 쥔다. 문제는 거품이 꺼지는 순간 모두가 이건 터질 수밖에 없는 시장이었다거나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과열이 끝난 후에야 합리적인 해석이 쏟아진다.


효율적 시장 가설? 그런 게 있기는 한걸까?

효율적 시장 가설(EMH)은 시장의 가격이 모든 정보를 즉각 반영하므로 지속적으로 시장을 이길 수 있는 투자 전략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유진 파마가 주창한 이 이론은 20세기 후반 자본시장 이론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EMH가 맞다고 믿는다면 차트 분석이나 기업 재무제표를 파고드는 시도가 무색해진다. 이미 모든 정보가 시장에 반영되어 있으므로 누구도 시장보다 앞서갈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시장을 보면, 수십 년에 걸쳐 초과 수익을 낸 투자자들이 등장해 왔다. 워런 버핏이나 짐 사이먼스 같은 인물은 EMH를 비웃기라도 하듯 오랫동안 시장 평균을 능가했다. 또한 금융시장의 거품과 붕괴가 주기적으로 나타난다는 것도 사실이다. 효율적 시장이라면 비이성적 수준의 폭락이나 폭등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기가 어렵다. 그러나 역사는 닷컴버블, 부동산 버블, 신흥국 통화 위기 등 다양한 형태의 위기를 꾸준히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EMH가 완전히 틀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행동경제학자 로버트 쉴러는 시장이 비합리적으로 움직일 수 있음을 강조했으나 동시에 효율적 시장 이론의 핵심 전제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일상적으로 시장에 참여하는 대다수 투자자는 지수보다 높은 수익을 얻기 힘들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EMH는 '시장의 효율성'이라는 개념을 기준점으로 삼아 현실 시장에서 언제 어떻게 비효율성이 발생하는지를 탐색하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상호 보완적인 개념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간단하지 않다. 시장이 평소에는 꽤나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어느 순간 비합리적 과열이 시작되면 모든 수학적 지표와 논리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결국 가장 현실적인 접근은, 시장 효율성을 기본값으로 두지만 과열 신호가 명확할 때를 경계한다는 자세다. 돈이 오갈 때 사람의 심리는 의외로 쉽게 흔들린다. 아무리 뛰어난 공식과 가설이 있어도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익을 탐하다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어버린다. 그 순간 EMH는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고 시장은 마치 인간적 욕망의 현장만이 전부인 듯이 탈바꿈한다.

 

그렇다면 효율적 시장 가설은 완벽한가. 아니면 비합리적 과열이 시장의 본질인가. 아마 둘 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다. 시장은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가 모여 만든 거대한 네트워크다. 수많은 변수가 뒤섞여 순간순간 가치를 형성한다. 이 안에서 지극히 합리적인 원리와 지극히 비합리적인 욕망이 끊임없이 부딪친다. 그 충돌의 현장을 제대로 관찰하고 이해해야 거품의 이면을 보거나 효율의 가면을 벗길 수 있다.

 

비합리적 과열은 낭만과 욕망의 뿌리가 된다는 점에서 인간이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시장은 그 갈망을 수익과 가격의 형태로 객관화해 누구나 판단할 수 있는 효율성의 무대로 끌어들인다. 이 두 세계가 합쳐진 곳이 인간의 자본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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