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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가 감정을 지배할 때

한밤중, 트레이딩에 매달려 초조하게 화면을 들여다보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상승 곡선을 보면 가슴이 뛰어버리는 본능은 많은 투자자를 자극하지만 그 이면에는 반복되는 군중 심리가 존재한다. 상승장에선 탐욕이 하락장에선 공포가 시장을 휘젓는다. 아니라고 하겠지만 예측은 대부분 심리적 직감에서 출발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데이비드 하딩은 “인간의 감정은 일시적이이지만, 통계는 반복된다”라고 선언했다. 감정이 극단적으로 편향될 때 통계적 관찰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직접 보여주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대부분의 기술적 지표는 투자자 심리의 흔적을 단순화해 보여준다. RSI는 과매수 구간이면 곧 하락할 것이라는 오실레이터 스타일의 암시, MACD는 추세 전환을 감지하면 물결을 타야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식이다. 이런 지표들은 정보 이상으로 투자자의 심리를 달래거나 자극하는 심리적 보조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딩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단순 지표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정교한 반복 패턴, 그리고 자산 간 상관관계를 면밀히 연구한 뒤 이를 통계 모델로 체계화했다.

 

시장엔 언제나 수많은 목소리가 얽혀 있다. 누구도 미래를 완벽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과거 패턴의 통계를 살피면 반복 가능성이라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 하딩의 신념이다. 그가 강조한 핵심은 바로 검증된 데이터였다. 감정적 변수나 주관적 추측을 최대한 배제하고 월말이 되면 자동으로 수익률과 변동성을 측정해 다음 달 자산 배분을 결정하는 식이다. 이렇게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규칙이 통계적으로 우위가 있다고 믿는다면 심리적 편향을 최소화하는 매매에 도움이 될 것이다.


데이비드 하딩이 본 시장의 그림자

하딩이 이끄는 윈턴 캐피털의 철학은 “시장 참여자의 감정과 행동은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는 문장에 압축된다. 여기에는 탐욕과 공포의 이면에 깔린 본능적 패턴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 심리의 군집적 움직임을 여러 지표로 해부했고, 동시에 과거 수십 년 데이터를 분석해 적절한 시그널을 도출했다. 이 과정에서 평균회귀, 모멘텀, 시계열 등 수학적 모델이 활용되었다.

 

특히 리스크 조정 모멘텀은 하딩 전략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단순히 과거 일정 기간 상승률이 높았다고 해서 매수하는 게 아니라 해당 종목 혹은 자산의 변동성까지 고려해 안정적인 상승을 하고 있는지를 평가한다. 예를 들어 변동성이 작은 자산이 꾸준히 오르는 경우가 통계적으로도 승률이 높다는 식으로 평가한다. 이 지표는 주식과 채권, 원자재 등 서로 다른 자산군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게 해준다.

 

일반적인 기술적 지표는 보통 하나의 종목에 초점을 맞추고 작동한다. RSI가 "과매수 구간이니 하락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면 단일 종목이나 특정 지수에만 그 신호를 적용한다. 그러나 하딩은 통계 모델을 통해 여러 자산군을 동시에 스캔하고 각 자산의 변동성과 상승 추세를 종합적으로 대조해 최적화한다. 이런 과정은 자본 규모가 큰 기관투자가나 펀드 매니저들에게 특히 효율적이다. 수백에서 수천 개 종목을 한꺼번에 처리하기 위해선 정교한 수학적 도구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 투자자가 하딩의 아이디어를 전혀 활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심리적 편향을 줄이고, 특정 지표의 통계적 유의성을 직접 검증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다. 예컨대, "6개월 수익률 ÷ 1개월 표준편차" 같은 단순화된 위험 대비 보상 지표를 만드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백테스트하고 매매하는 종목에 적용해볼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시장 내 반복되는 패턴을 찾고 개선하는 연습을 한다면, 어느 순간 감정 대신 데이터로 판단하는 전환점이 찾아온다.


감정과 통계의 공존, 그리고 새로운 질문들

하딩이 RSI 같은 전통 지표를 배제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통계적 유의성이 부족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 전체의 흐름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RSI는 공매도 신호나 과매수 신호를 직관적으로 알려주지만 자산 간 상호작용이나 장기적 리스크 관리는 간과한다. 반면 하딩이 표방한 방식은 여러 종목, 여러 자산군을 한꺼번에 살피며 일정한 통계적 반복을 추출해내는 구조다. 전통적인 보조지표보다 더 복잡해진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하딩식 지표가 최고의 해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타 매매나 극단적 변동성을 노리는 시장이나 혹은 일회성 이슈가 갑작스레 터지는 시장에서는 너무 보수적이거나 반응이 느릴 수 있다. 그럼에도 트레이딩 활동을 길게 바라볼 때 인간의 감정이 반복되는 패턴을 수치로 확인하는 것이 확률상 유리한 하딩 스타일의 강점을 설명해준다. 감정이 붕괴되고 나면 남는 것은 결국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투자 전략에 대한 스스로의 검증 태도다. 어떤 지표든, 어떤 통계 모델이든, 실제 장기간 성과로 재확인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대다수 개인 투자자는 어느 순간 뜨거워진 시장에 편승해 감정적 매수를 하거나 폭락 뉴스에 질려 허둥지둥 탈출해버린다. 이 순간이 바로 하딩이 말한 감정의 순간이다. 어떤 지표든 그 순간을 참고 기다리는 통계적 근거가 없다면 마음은 금세 무너진다. 반대로, 데이터 검증을 거친 전략이라면 잠시의 폭풍을 견디고 다시 평온한 수익 궤도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표나 통계 모델도 결국 인간이 만드는 산물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표가 새로울수록, 남들이 잘 사용하지 않을수록, 과최적화를 피하고 재현 가능한 공식을 찾기가 쉬워진다. 이런 측면에서 하딩은 새로운 지표를 만들 때마다 충분히 테스트하고, 성과가 낮아지면 재빨리 폐기하라는 원칙을 실천했다. 감정이 아닌 데이터로 시장을 본다는 것은 무감각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확률적으로 유불리를 확인하여 굳이 의미 없는 기대를 걸지 않는다는 뜻이다.

 

수천 장의 차트와 수십만 건의 거래 기록에서 반복되는 인간의 행동을 포착하는 여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감정과 군중심리에 흔들리지 않고 객관적 통계로 거리를 유지하려는 시도만으로도 개인 투자자의 시야는 한층 더 넓어질 것 같다. 대부분의 드라마는 화려한 심리전 속에서 펼쳐지지만 수치가 감정을 넘어서는 순간이야말로 진짜 이야기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하딩의 통찰이 던지는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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