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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게 사라’는 금기를 깨뜨린 한 문장
리처드 드리하우스가 남긴 “비싸게 사서 더 비싸게 팔아라”는 선언은 월가에 오래 붙어 있던 격언 “싸게 사서 비싸게 팔라”를 뒤집었다. 그는 가격이 이미 올랐다는 사실을 곧 수요가 검증된 증거로 읽었다. 정상급 펀드매니저들이 늘 저평가라는 방패 뒤에 숨을 때, 드리하우스는 “가격은 이미 가치의 서막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저점 매수와 고점 매도를 믿지 않는다. 가장 많은 돈은 비싸게 사서 더 비싸게 팔 때 벌린다.”
드리하우스 전략의 기술적 골격은 단순했다. 52주 신고가 돌파, 거래량 급증, RSI 지표 60~70 이상. 도표로 그리면 단순해 보이지만 이 조건은 군중 심리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대다수 투자자는 고점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선다. 드리하우스는 바로 그 순간을 “터지는 심장박동이 아니라 시장이 내 귀에 속삭이는 음악”이라 정의했다.
모멘텀은 늘 윤리적 질문을 동반한다. 거품이냐 아직 저평가냐이다. 드리하우스는 가치판단 대신 행동 데이터에 몰입했다. 상향 곡선을 그리는 차트, 붉게 치솟는 거래량 기둥, 주당순이익에 새겨지는 어닝 서프라이즈. 어떻게 보면 종교적 믿음까지도 연상시키지만 실제론 확률의 엄격한 실험실이다. 투자자에게 남는 과제는 두 가지뿐이다. 첫째, 고점을 매수할 배짱. 둘째, 그 배짱이 틀렸을 때 5~10%에서 뒤돌아보지 않고 발 뺄 냉혹함. 드리하우스는 이 두 가지를 투자의 핵심으로 보았다.
그러나 모멘텀의 낙원은 짧다. 상승 곡선이 옅어지면 천국의 문이 닫힌다. 거짓 돌파는 탐욕과 공포가 드리우며 탄생한다. 드리하우스도 이를 인정했다. “가장 고통스러운 거래는 내가 옳다고 확신한 다음 날, 시장이 침묵하는 경우다.” 하지만 그는 패닉 대신 과감하게 손절했다. 기계적 리밸런싱이 인간 본능을 압도하도록 설정한 것이다.
거품과 붕괴를 돌파한 방어장치
닷컴 버블(2000~2002)과 글로벌 금융위기(2008)는 모멘텀 전략의 시험장이었다. 가치투자 진영은 고점 매수의 파산을 예언했지만 드리하우스 펀드는 벤치마크보다 작은 낙폭으로 잘 버텼다. 연도별 성과 요약에 따르면 2008년 대표 펀드 중 하나가 -29 %를 기록하여 -37 %의 S&P 500보다는 양호했다.
드리하우스의 대응은 예측이 아닌 구조적 회피였다. 시장이 폭락으로 기울 때 그의 조건식은 자동으로 굳어졌다. 신고가 돌파 종목 자체가 사라지면서 현금 비중이 자연히 상승했다. 그는 이를 “바람이 멎으면 돛을 접는 것”에 비유했다. 돛단배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배가 고장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두 번째 방어벽은 퇴출 알고리즘이었다.
1. 20 % 이상 하락 시 즉시 매도
2.거래량이 평소의 절반으로 떨어지면 경보
3. 하방 갭이 두 번 연속 발생하면 자산군 전체에서 비중 축소.
이는 선견지명이 아니라 풍향계 역할이다. 드리하우스는 “시장을 맞히려 애쓰지 말고, 시장이 총을 쏘면 쏠리는 곳에 몸을 기대라”고 조언했다. 그의 언어는 문학적이었지만 의사결정은 치밀하고 칼같았다.
그 구조가 위기 때마다 살아남은 이유는 세 가지다.
1. 공매도를 하지 않았고 덩치 큰 가치주 위주의 전통적 포트폴리오를 피했다.
2. 포트폴리오 교체 속도가 빨라 손실 전이 통로를 차단했다.
3. 심리적 자동화. 인간이 매번 공포 앞에서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되도록 프로세스를 짰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숏 포지션을 거의 쓰지 않았다. 대신 쉬어가기를 선택했다. 이는 오늘날 레버리지와 인버스 ETF를 전진배치하는 공격적 퀀트와 대비된다. 드리하우스에게 공백기는 손실이 아니라 재충전이자 비용 없는 방패였다.
드리하우스가 남긴 다섯 가지 교훈
첫째, 예측보다 반응이다. 인공지능이 증시 헤드라인을 분초 단위로 요약하는 시대에도 폭락은 여전히 예측 불가 변수로 남아 있다. 드리하우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신호에 대한 행동뿐”이라고 말했다. 이는 알파고 이후의 투자자에게도 유효하다.
둘째, 시스템이 감정을 설계한다. 드리하우스는 손절 비율, 진입 조건, 리밸런싱 주기를 인간 본능에서 떼어냈다. 결과는 구조적인 심리 방지책이다. 오늘날 알고리즘 매매 등도 감정 설계의 자동화를 추구한다.
셋째, 그는 데이터의 민주화를 앞당겼다. 1980년대 증권사 모니터에만 있던 가격·거래량 정보가 지금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든 확인할 수 있다. 클라우드 API와 백테스트가 모멘텀 전략을 20대 개미까지 끌어내렸다. 하지만 민주화는 곧 경쟁의 평준화다. 모멘텀 신호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 드리하우스가 강조한 강한 종목만 남기고 나머진 리스크로 평가하는 방식은 이제 과거보다 더 정교해져야 한다.
넷째, 혼합 전략 시대다. 횡보장에 무력한 모멘텀을 보완하려면, 평균회귀 알고리즘, 변동성 돌파, 거시경제 지표 필터 등 의미 있는 요소들을 결합해야 한다. 드리하우스식 엄격함을 유지하되 각 시장의 국면을 분류하여 전략을 더욱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다섯째, 비싸 보이는 자산이 가장 쌀 때가 있다는 통찰은 시장을 넘어 문화로도 확장된다. 밈주식, NFT, 코인에서의 일부 종목은 가격이 아닌 순수 매수세와 매도세로 움직이는 부분이 있다. 드리하우스 철학은 이 과열의 무대에서 언제나 탈출구를 마련하라는 경고를 보내온다.
결국 드리하우스가 남긴 최대 유산은 고점이라는 특정 가격이 아니라 행동이다. ‘비싸게 사서 더 비싸게 팔라’는 발언은 단순한 과감함을 강조하기 위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그것은 데이터가 증명한 확률적 용기이자 실패를 허락하는 계량적 탈출 계획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품을 때, 투자자는 위기에서 생존하며 상승장에선 돛을 최대로 펼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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