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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보나치, 엘리어트, 그리고 차트 위의 황금비

레오나르도 피보나치는 중세 이탈리아의 호기심 많은 상인이었다. 그가 토끼 번식 문제를 풀며 제시한 수열은 당대엔 미적 가치조차 평가받지 못했으나 700년 뒤 월스트리트 차트 위에서 두 번째 생을 얻게 된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의 잔해 위에서 랄프 엘리어트는 시장 가격이 파도처럼 질서를 이룬다고 주장했다. 그는 피보나치 비율을 파동 간 길이로 접목했으며 0.382와 0.618은 단순한 분수가 아니라 인간 공포와 탐욕의 숨 간격이라 주장했다.


그 뒤를 이은 로버트 프렉터와 존 머피는 이 비율을 차트 분석 교과서로 확정했다. 트레이딩 플랫폼은 피보나치 도구를 기본 탑재했고, 유튜브 초보 투자 강의에까지 61.8% 눌림목 같은 것들이 우르르 등장했다. 학술지 한 편 없이 동굴 벽화처럼 입소문만으로 전파된 금융 민속학이다. 그러나 이 신화에는 물음표가 따라온다. 물리학의 힘과는 무관한 숫자가 왜 가격 곡선의 굴곡을 미리 예측한다는 것일까. 그 대답은 인간 서사에서 나온다. 숫자는 어떤 면에서는 인간이 만든 종교인데 종교는 공포를 다루는 도구다. 난해한 차트 앞에서 투자자는 믿음의 좌표계를 찾는다. 피보나치는 그 좌표계의 축이 되었다.


컴퓨터가 초당 수만 건의 주문을 처리하며 시장은 더욱 불규칙성을 띤다. 그럼에도 인기 보조 지표의 상위권은 피보나치가 지킨다. 집단이 신화를 버리기보다는 변형해가며 살아남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전설은 폐기되지 않는다. 단지 새 인터페이스에 맞춰 재포장된다.


숫자를 숭배하는 투자자의 집단 무의식

시장 가격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교차점이 아니라 공포와 탐욕이 만들어낸 콜라주다. 대체로 사람은 혼란 속에서 패턴을 찾고 패턴을 발견했을 때 안도한다. 이것이 인지 경제학의 뿌리다. 38.2% 조정은 얕은 상처, 61.8%는 깊은 상처로 해석된다. 상처 깊이마다 적절한 치료법이 있다는 믿음이 매매 버튼을 누르게 한다.


피터 브랜트는 2017년 비트코인 61.8% 눌림에서 숏세력의 기도를 비웃고 2만 달러 돌파를 적중시켰다. 반면 2022년 LUNA 붕괴에서는 피보나치의 가호는 산산조각 났다. 피보나치 비율은 정적 확률이 아니라 동적 기대에 가깝다. 기대가 일치할 때 비율은 기적처럼 작동하지만 군중심리가 깨지면 그 숫자는 저항이고 덫이 된다.


연구도 복합적이다. 《International Journal of Financial Studies》(2022) 논문에서는 S&P500 상위 50종목 10년 데이터를 분석해 61.8% 눌림목에서 반등 확률이 58.7%라고 밝혔다. 통계적 유의성은 있으나 시장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즉, 피보나치는 승률보다는 리스크 관리의 참조점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혼돈을 수치화하여 공포를 낮춰주는 심리적 보험이 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문화차다. 서구권 트레이더가 피보나치를 거듭 인용할 때 동아시아 일부 트레이더는 음양론적 패턴을 선호한다. 집단 무의식은 문화 코드에 따라 다른 툴을 선택한다. 그럼에도 글로벌 파생 시장에서는 피보나치가 링구아 프랑카가 됐다. 미국 헤지펀드 매니저나 한국의 개미 투자자 모두 동일한 0.618 선을 바라본다. 다국적 자본이 공용어를 만든 셈이다.


피보나치 전략의 현실과 미래

피보나치 되돌림은 대규모 전투에서 분기점 역할을 한다. 알고리즘 트레이딩 환경에서도 38.2% 부근에 대기 주문이 몰리는 현상이 포착된다. 자가실현적 예언이 코드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 유동성이 작은 코인은 세력 매집 한 번이면 비율이 무력화된다. 둘째, 고빈도 장세에서는 미세 변동이 피보나치 라인을 연속적으로 돌파해 가짜 신호가 자주 발생한다. 셋째, 극단적 이벤트는 모든 비율을 무시한다. 2020년 팬데믹 초입, 뉴욕 증시는 23.6%·38.2%·50% 지지선을 하루 만에 깨버렸다.


피보나치의 장점은 명확하다. 하나의 기준점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활용하여 손절과 익절을 정량화하기 쉽다. 그러나 단점도 명료하다. 기준점이 과잉 노출돼 큰손들의 함정 카드가 되기 쉽다. 61.8% 회복 직후 대량 매도가 터질 때, 늦게 진입한 개미는 손절 버튼조차 누르지 못한다.


트레이딩 시장의 화두도 역시 인공지능이다. 딥러닝 모델은 과거 패턴보다 실시간 오더북 변화를 빠르게 학습한다. 아직까지 피보나치 비율을 독립 변수로 인코딩한 연구는 흩어져 있으나 언젠가 AI가 피보나치 유효 구간과 무효 구간을 실시간 라벨링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피보나치가 사라질까? 오히려 반대다. 알고리즘이 효과적인 구간을 증명할수록 투자자는 숫자 신화를 더욱 신뢰하게 된다. 효과적인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므로, 결과적으로 피보나치는 선택적 근거가 아닌 검증된 프레임으로 격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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