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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모래폭풍, 남극

남극은 끝없이 펼쳐진 빙하와 찬바람으로만 묘사되곤 했다. 그러나 지리학적으로 남극은 연간 강수량이 250mm 미만인 사막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보통 사막이라 하면 사하라 같은 뜨거운 모래바다를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정작 남극 내부는 공기가 건조하고 비나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다. 표면을 덮은 눈은 수천, 수만 년에 걸쳐 조금씩 내린 눈이 녹지 않았을 뿐이다.

 

이 초건조 환경의 한복판에선 ‘카타바틱 바람’이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빙하와 맞닿아 서늘해진 공기가 무거워져 언덕을 따라 하강하는 바람인데 여기에는 모래바람 대신 얼어붙은 결정이나 미세한 파쇄암 입자가 휩쓸려 다닌다. 그렇게 사막적 특징은 단순히 더위나 모래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극지 사막이라는 단어가 생소할 수 있지만 실제 남극은 엄연히 기후학적으로 사막이다.

 

이렇듯 남극이 영하의 온도만 강조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은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NASA, ESA 같은 우주기구들이 이 지역을 탐사 기지로 삼는 이유에는 극도로 낮은 습도와 특수한 바람, 그리고 먼지 혹은 얼음 알갱이로 이루어진 극지 사막 환경이 한몫한다. 모래는 보이지 않아도 혹독한 건조함과 강한 자외선, 고립된 생태계는 사막으로써 충분한 조건을 갖춘다.


남극이 품은 극한의 과학

남극의 건조 지대 가운데에서도 특히 극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드라이 밸리(Dry Valley)다. 이곳은 수천 년에서 수만 년 동안 강수 한 방울조차 내리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연안 지역에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산맥이 바람길을 막아 비구름이 접근하지 못하고 카타바틱 바람이 혹시 모를 습기마저도 몰아내기 때문이다.

 

이렇듯 강수량이 극도로 낮은데도 대륙 내부에는 누적된 빙하가 수 킬로미터에 이를 만큼 두껍다. 낮은 기온 탓에 녹는 양보다 쌓이는 양이 조금이라도 많았던 시기가 끝도 없이 반복된 결과다. 오랜 세월 내려앉은 빙반 아래에는 미지의 호수나 미생물군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빙하 코어 채취 연구에서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생명체는 상상 이상으로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남극 내륙 지형에서 발견되는 미생물과 지의류는 태양광이 거의 들지 않는 시기에도 생장을 멈추지 않는다. 빙하 밑 호수 속 생물은 빛 없이도 화학합성이나 미량의 유기물만으로 번식할 수 있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인류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효소나 의약 소재를 보유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결국, 남극은 단순히 얼음으로 뒤덮인 황량한 땅만인 것은 아니고 수많은 생명의 비밀과 가능성을 품은 자연 실험실이다.


지구의 끝이면서 또한 우주의 시작인 남극

과학자들이 남극에서 화성이나 달 탐사를 모의 실험하는 사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급격한 기온 차, 대기 중 수분의 부족, 고립된 생활 환경 등은 행성 탐사의 미니어처다. 남극 콘코르디아 기지에서는 장기간 일조량이 제한되는 기간 동안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어떻게 영양분을 보급받고 폐기물을 처리하는지 등의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또 하나 주목받는 요소는 자원 확보와 에너지 실험이다. 태양광이 제한된 극야 상태에서 효율적인 전력 생산 방안을 탐색하거나 극도로 낮은 온도에서도 작동 가능한 장비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우주 발전 기술이 함께 개선된다. 극지 사막은 곧 외행성 탐사의 시작점인 셈이다.

 

남극의 극한 환경은 미래 지구가 직면할 기후 변화의 단서를 담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급격한 온난화로 인해 남극 빙상이 녹아내림에 따라 해수면 상승은 물론 지역 생태계가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렇게 남극은 단순히 탐험의 대상이나 연구 소재를 넘어 또한 인류의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 같은 모습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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