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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한복판에 생긴 틈새, 리걸 그레이 존의 얼굴

도시 한복판에서 일은 늘 분주하게 일어난다. 불법과 합법의 선은 신호등처럼 빨간불과 초록불로 정확히 나뉘는 부분도 있지만 막상 보면 노란불 구간이 길게 이어지기도 한다. 그 노란불이 바로 리걸 그레이 존이다. 법조문에는 허용도 금지도 또렷하게 적히지 않은 영역이 생각보다 많다. 버스를 기다리다 옆에서 누군가 전동 킥보드를 탄 채 인도와 차도를 번갈아 달리는 걸 보면 이게 맞는지 헷갈린다. 경찰차가 지나가도 그냥 지나친다. 이유는 단순하다. 단속 근거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말들은 하지만, 사실 법은 빠르게 달리는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다. 에어비앤비가 처음 등장했을 때 "집을 빌려주면 불법 숙박업인가?”라는 질문이 빗발쳤다. 허가를 받은 호텔도, 고시원도, 여관도 아니었으니 애매했다. 이런 모호함은 새로운 기회를 낳았다. 방 하나만 빌려주던 대학생이 몇 달 만에 슈퍼호스트가 되어 생활비를 벌었다. 동시에 기존 숙박업자는 세금 내고 규제 다 지키는데, 그 사람들은 왜 아무 제재도 없는지 억울해했다. 합법인지 아닌지 확실치 않아도 그린 라이트처럼 보이는 순간 사람들은 달리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리걸 그레이 존은 거대한 도로의 난간이 빠진 구간과 같다. 그곳을 지나는 운전자에게는 뻥 뚫린 시야와 빠른 속도가 주어지지만, 조금만 틀어져도 낭떠러지에 떨어질 수 있다. 이 틈을 이용해 새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도 있고, 낭떠러지로 떨어져 크게 다치는 사람도 있다.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난간이다. 이를 보고 누구는 스릴이라고 부르고 누구는 위험이라고 부른다.


기술이 판을 뒤흔들 때, 새 법은 왜 늦게 오나

기술이 새로운 판을 짜면 가장 먼저 생기는 것은 편리함이다. 하지만 그것과 같은 속도로 따라오는 것은 항상 법의 빈틈이다. 우버가 서울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을 때, 택시는 "불법 콜밴"이라 외쳤다. 그러나 IT 업계는 “공유경제의 혁신”이라며 박수를 쳤다. 국토교통부는 수없이 회의만 거듭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라는 긴 이름의 법이 존재했지만, 스마트폰 앱으로 차를 불러 나눠 타는 행위를 정확히 규정한 조항은 없었다. 누군가 고소를 하면 재판부는 어떤 조항으로 끼워 맞추어야 할지 땀을 흘리며 법조문 사이를 오갔다. 논쟁이 길어지는 사이 우버 기사들은 요금 미터기 대신 스마트폰 화면만 보고 손님을 태웠다.

 

코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첫 비트코인을 채굴했을 때 대부분의 국가는 “게임머니인가? 상품인가? 화폐인가?”의 의견이 분분했다. 명확한 규정이 없다 보니 거래소는 우후죽순 생겼고, 가격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정부는 뒤늦게 투자자 보호 장치를 찾기 시작했지만, 이미 수많은 코인이 만들어졌다 사라졌다. 규제는 늦고, 시장은 빨랐다. 기술 발전은 폭주 기관차였다. 법은 뒤쪽 칸에 탄 채 필사적으로 앞칸으로 이동하려 했지만 열차는 빨랐고 중심을 잃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애매한 구간이 곧 ‘범죄의 온상’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킥보드도, 우버도, 비트코인도 처음엔 모두 편리함이라는 선의를 내세웠다. 문제는 편리함 뒤에 숨은 부작용과 책임 소재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어린 학생이 헬멧 없이 킥보드를 타다 사고가 나면 누구 책임일까? 보험사? 제조사? 이용자? 법으로 분명히 못 박아 두지 않으면 책임 공방이 길어진다. 그래서 국회는 부랴부랴 개정안을 만든다. 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될 때쯤이면 기술은 또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다.

 

이 악순환 속에서 누가 웃고, 누가 울까. 선점에 성공한 스타트업은 웃는다. 전통 업계는 분노한다. 소비자는 편리함과 위험 사이에서 흔들린다. 규제기관은 혁신 억제라는 비판과 소비자 보호 실패라는 비난을 동시에 맞는다. 결국 이 싸움은 달리느냐, 멈추느냐가 아니라 어떤 난간을 어디에 세우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난간을 세우는 손, 우리 앞의 선택

법이 모든 것을 미리 예측할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일단, 투명성이다.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는 사람은 법적 지위가 애매하다는 이유로 숨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이런 구조, 이런 수익 모델이라는 점을 먼저 공개해야 한다. 둘째, 참여다. 시민이 토론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어떤 서비스가 우리 동네에 들어올 때, 단순히 반대 버튼만을 누를 게 아니라 특정 조건이면 찬성이라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셋째, 샌드박스 제도다. 정부가 규제를 완전히 없애기 어렵다면 잠시 테이프를 끊고 시험해 보는 기간을 주면 된다. 실패하면 빨리 접고, 성공하면 제도를 고친다. 이미 핀테크·자율주행 분야에서 샌드박스가 힘을 발휘했다. 넷째, 교육이다. 중학생이 배우는 교과서에서 리걸 그레이 존의 현실을 잘 알려야 한다. 법은 멀고 학교는 가깝다. 어린 나이에 이 개념을 알면 어른이 되어도 그런 애매함을 더 잘 다룬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말이 하나 있다. 법이 허락하지 않아도 사람이 허락할 수 있고, 법이 허락해도 사람이 거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법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아니다. 법이 비어 있으면 윤리가 들어서고, 윤리가 비어 있으면 관습이 들어선다. 그 틈새를 어떻게 메우느냐에 따라 기술은 꽃이 되거나 가시가 된다. 우리 앞에 놓인 난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 난간의 모양을 결정짓는 손은 멀리 있는 입법자가 아니라 사실상 스마트폰을 쥔 우리들의 손임을 잊지 않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