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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시장의 시계가 멈추는 날, 알아야할 것들
옵션은 주식이나 지수 같은 기초 자산을 정해 놓은 가격에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이다. 이 권리에는 소비기한이 있다. 그날이 바로 만기일이다. 마트에서 우유가 소비기한이 지나면 팔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콜 옵션은 가격이 오를 것이라 생각할 때 사고, 풋 옵션은 가격이 내릴 것이라 생각할 때 산다. 만기는 보통 매달 셋째 금요일, 혹은 분기마다 찾아오는 특정 금요일인데 자산 성격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만기일이 다가오면 옵션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모두 계약을 정리하려 움직이기 시작한다. 옵션을 팔아 준 기관은 가격이 급등락하면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주식을 미리 사거나 팔면서 위험을 관리한다. 이 행동을 헤지라고 한다. 헤지 물량이 한꺼번에 풀리면 거래량이 평소보다 훨씬 늘어난다. 만기일 마감 직전 한 시간을 해외에서는 “네 마녀의 시간”이라 부른다. 선물, 지수옵션, 주식옵션, 개별주식선물이 동시에 만기라서 프로그램 매매가 폭주하기 때문이다.
만기일이 다가오면 시장 가격은 마치 자석에 붙듯, 옵션을 판매한 사람이 유리한 가격으로 모이려는 성질이 있다. 이 현상을 맥스 페인(Max Pain)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50달러 짜리 콜 옵션과 풋 옵션이 가장 많이 걸려 있다면, 만기 무렵 주가는 50달러 근처에 머물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면 옵션을 산 사람들은 대체로 손해를 보게 되니, 고통이 가장 커진다. 그래서 최대의 고통이라는 뜻의 맥스 페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만기일 전후 몇 시간 동안 주가는 그 지점 위아래를 왔다 갔다 하며 진동한다.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은 감마 스퀴즈이다. 옵션 가격은 기초 자산 가격이 변하면 델타라는 값만큼 움직인다. 만기가 가까워지면 델타가 반응하는 속도인 감마가 커진다. 그러면 옵션을 판매자는 가격 변동으로 인한 손실에 더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더 빠르게 행동해야 한다. 주가가 오르면 더 많은 주식을 사야 하고, 내리면 더 많은 주식을 팔아야 한다. 예를 들어, 2021년 게임스탑의 경우 콜 옵션이 대량으로 매수되어 감마 스퀴즈가 발생해 주가가 폭등하기도 했다.
만기일은 그래서 시장 안에 숨겨진 달력과 같다. 일반 투자자가 파생상품을 건드리지 않아도 내 종목이 갑자기 출렁이는 배경에 만기가 있을 수 있다. 만기를 모르면 뉴스도 없는 데 급등락하는 가격을 보고 당황해 매매를 서두를 수 있다. 알고 있다면 일시적이구나 하는 정도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
투자자가 체감하는 옵션 만기의 실제 영향
첫째, 만약 옵션을 보유했다면 만기일을 넘기면 권리는 사라진다. 지갑에 넣어 둔 놀이공원 입장권이 사용기한이 지나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옵션 가격은 날짜가 지날수록 빠르게 녹는다. 개인 투자자는 만기 전에는 행사, 청산, 롤오버 중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 한다. 귀찮다고 방치하면 옵션을 팔아 둔 경우 예상치 못한 의무를 이행해야할 수 있다.
둘째, 옵션을 직접 하지 않더라도 만기일에는 내 자산이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어떤 종목에 50달러 콜 옵션이 몰려 있으면 만기 직전 주가가 50달러 부근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 딱히 이상한 뉴스도 없는데 장 마감 10분 전 갑자기 가격이 튀거나 꺼질 때가 있다. 만기일을 인지하고 있다면 매수세와 매도세가 옵션 만기일로 싸우고 있구나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모르고 있다면 흡사 지각변동처럼 느껴져 공포에 팔아버릴 가능성이 생긴다.
셋째, 맥스 페인 가격과 감마 스퀴즈를 활용해 단기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옵션 포지션 데이터는 보통 증권사 웹사이트 등에 공개된다. 만기일이 가까워질수록 어느 행사가에 옵션이 몰려 있는지 볼 수 있다. 가장 큰 손실이 발생하는 가격을 찾아 차트를 보면 주가가 해당 지점에서 자석처럼 붙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항상 들어맞지는 않지만 시장 참여자들이 의식하기 때문에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넷째, 만기일은 투자 심리에도 영향을 준다. 포지션을 청산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시장이 흥분하거나 공포에 빠진다. 시간에 쫓겨 결정하면 원하지 않는 트레이딩을 할 수 있다. 여유를 가지려면 미리 시간표를 작성하고 결정 시점을 당길 필요가 있다.
다섯째, 만기일은 통계적으로 거래량이 크게 늘고 가격 변동폭이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S&P 500 지수 옵션 만기일은 평균 거래량이 평일 평균보다 30 퍼센트 가량 높다. 개별 종목은 더 크게 변할 수 있다. 시장에 유동성이 늘어나며 평소보다 시끌벅적해진다는 의미다. 하지만 방향성 자체가 항상 크게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큰 거래량이 붙었음에도 평소와 유사한 등락으로 끝나기도 한다.
여섯째, 코인 시장처럼 24시간 돌아가는 곳도 만기일에는 특별한 리듬이 생긴다. 비트코인 옵션은 매월 마지막 금요일이 만기다. 만기 시간을 전후해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로 평소보다 높은 변동성이 관찰되곤 한다. 주말 직전이기도 해서 포지션을 닫으려는 투자자가 몰리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례와 실전 대응 전략
블랙 먼데이는 옵션과 프로그램 매매가 겹쳐 폭락을 키운 대표 사례다. 전 거래일이 마녀의 날(위칭 데이)였고 다우지수는 4.6 퍼센트 떨어졌다. 투자자들은 주말 사이 공포를 키웠고 월요일 아침 패닉 셀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옵션 만기가 폭락을 직접 만든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 방아쇠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증시에는 서킷브레이커라는 안전장치가 도입되었다.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도 비슷한 패턴이 있었다. 3월 20일 네 마녀의 날에 다우지수는 900포인트 넘게 추락했다. 선물과 옵션 포지션이 동시에 청산되며 매도세가 강해졌다. 하지만 만기일이 지나자 과도한 투매가 약해지면서 점진적 반등이 시작되었다. 시장은 극단의 공포 속에서도 만기일이 수급 균형점을 다시 맞추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게임스탑(2021년 1월)은 개인 투자자가 콜 옵션을 무기로 기관을 궁지에 몰아넣은 사건이다. 콜 옵션 매수가 급증하자 시장조성자는 감마 헤지를 위해 주식을 사야 했다. 이는 눈덩이 같은 수급 을 만들어 주가를 100배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개인 투자자는 옵션 만기의 메커니즘을 학습해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다는 사례가 되었다.
코인 시장에서는 2021년 5월 말 비트코인 옵션 60억 달러가 만기되며 가격이 4000달러 범위로 출렁였다. 전통 시장보다 규제나 완충 장치가 적어 더 날카롭게 반응한다. 만기일을 노리는 고래 투자자가 현물과 선물을 이용해 가격을 흔드는 경우도 있다.
만기일은 자산 종류를 막론하고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가 극대화되는 날이다. 교통신호가 파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뀌는 찰나에 차들이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바꾸듯, 옵션 만기는 거대한 시장이 속도를 줄이고 포지션을 바꾸는 분기점이다. 개인투자자는 이 날을 모르면 교차로에 눈 감고 진입하는 격이 된다. 하지만 만기 달력을 손에 쥐고 있다면 시장 신호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고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지금 당장 캘린더를 열어 다음 만기일을 표시해 보자. 그 작은 습관이 더 트레이딩이 세련되도록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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