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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마 비율의 탄생과 기본 개념

칼마 비율(Calmar Ratio)은 1987년, 캘리포니아의 머니 매니저였던 테리 영이 발행하던 한 연구 보고서에서 파생된 약어다. 당시 선물시장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극심한 상승과 폭락을 오가며 투자자들의 신경을 갉아먹고 있었다. 영은 그러한 변동성이 버텨낼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의문을 품었고, 연간 누적수익률을 그 기간의 최대낙폭(Maximum Drawdown, MDD)으로 나눈 단순한 수식을 제안했다. 바로 칼마 비율이다.


칼마 비율이 빛을 발한 첫 무대는 CTA(Commodity Trading Advisor)들이 겨루던 한 선물 운용대회였다. 연 30%를 올린 팀도, 연 12%에 그친 팀도 뒤통수를 맞는 경우가 속출했다. 누가 더 돈을 벌었느냐보다 누가 얼마나 덜 잃고 지켜냈느냐가 승패를 갈랐다. 동일한 30%의 수익률이라도 -40%를 견디며 겨우 올린 성과와 -10%만 감내하고 달성한 전략은 체감 안정성이 하늘과 땅 차이다. 이 체감을 숫자로 보여준 지표가 칼마다.


칼마 비율은 자연스럽게 “1은 넘어야 좀 쓸만하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불문율을 만들었다. 연 10%를 벌면서 -10%만 잃었다면 칼마 1(기본은 했네) 연 20%를 벌며 -10%만 잃었으면 칼마 2(드디어 괜찮은 전략) 연 40%에 -10%면 칼마 4(꿈의 숫자)이다. 그렇다고 칼마 0.8이 즉시 퇴출될 전략이냐면 또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목적과 기간, 투자자의 성향에 따라 칼마 해석도 변한다.


국내 시장에선 2000년대 초, 파생상품 광풍과 함께 칼마 비율이 소개됐다. 그러나 최대낙폭이란 개념이 생소하던 탓에 “그거 샤프 지수(SHARPE)랑 뭐가 달라?”라는 물음이 더 많았다. 샤프 지수가 수익률을 표준편차로 나누어 변동성을 리스크로 보는 반면, 칼마는 가장 괴로운 순간을 정점과 저점으로만 짚어 심리적 파열음을 측정한다는 차이가 있다. 정규분포에 꽤나 관대한 샤프와 달리, 칼마는 한 차례의 블랙스완이 포착되면 즉시 점수가 반토막 나는 무정함을 지녔다.


흔히 칼마 비율 2가 마지노선처럼 언급되지만 여기에 두 가지 현실적인 조건이 붙는다. 첫째, 평가기간이 충분히 길어야 한다. 단 세 달 백테스트로 칼마 5가 나왔다고 흥분해도 1년을 늘려보면 칼마가 1.2로 수축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둘째, MDD가 어디서 발생했는지 봐야 한다. 세 달에 한 번씩 -10%를 찍고 연 40%를 벌면 칼마는 4다. 숫자는 반듯한데 투자자는 한 해에 세 번씩 극도의 공포를 감수해야 한다. 혼합형 펀드를 가입한 연금저축계좌의 가입자가 과연 이 롤러코스터를 쉽게 견딜 수 있을까?


칼마 비율은 또 하나의 장점을 지닌다. 수치가 낮아져도 낙폭(MDD)의 어떤 부분이 원인인지가 선명하다. 예를 들어 수익률이 정체라서 칼마가 낮아졌다면 전략을 업데이트해야 하고, 낙폭이 폭증해서 칼마가 낮아졌다면 포지션 사이즈 혹은 헷지를 재점검해야 한다. 다른 복합 지표들처럼 수치가 떨어지면 단순히 트레이딩을 잘 못하고 있다는 인지 정도로 끝나지 않고 수익·손실 어느 쪽을 고쳐야 하는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그런데 완벽한 게 아니었다고? 칼마 비율이 숨기는 것

칼마 비율이 높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며 레버리지를 늘리는 경우를 자주 본다. 하지만 칼마가 말하지 않는 몇 가지 그림자도 존재한다.


첫째는 데이터 과적합이다. 예를 들어 연간 수익률이 60%인데 MDD가 -7%라면 칼마 8.57이다. 달콤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매도·매수 시점을 미세 조정하여 과거 시점 중 유리한 부분만 계산한 결과다. 과거 오차를 0.1%라도 줄이면 칼마는 하늘로 치솟는다. 문제는 실전 매매 시점엔 그 0.1%의 우연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칼마 8의 빛나는 포트폴리오가 3개월 뒤 칼마 0.9로 추락하는 광경은 종종 목격된다.


둘째는 승률과 칼마의 역학이다. 승률이 90%인데 칼마가 1.2인 전략과 승률이 35%인데 칼마가 3인 전략이 있다. 전자는 자주 이기지만 한 번 크게 지면 모든 걸 잃는다. 후자는 잦은 손실에 심장이 아프지만 드물게 나오는 폭발적 상승이 손실을 크게 상회한다. 당신의 성향은 어느 쪽인가? 칼마는 이 심리적 피로도를 숫자로 대변하지 못한다. 승률과 평균 손익비(R:R)를 함께 검토해야 비로소 디테일한 리스크가 드러난다.


셋째는 장세 전환이다. 예컨대 강세장이 길어지면 MDD가 작아지므로 칼마 비율은 끝도 없이 높아진다. 2020년 코로나 위기 이후의 급반등에서 단숨에 칼마 비율이 3~4를 뛰어넘는 전략이 수도 없이 나타났다. 그러나 2022년 금리인상기엔 같은 전략이 칼마 0.5로 주저앉으며 배신감까지 불러온 듯한 탄식이 쏟아졌다.


넷째는 회복 속도 문제다. 칼마가 0.9라도 낙폭을 단 4주 만에 만회한다면 투자자는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칼마가 2라 해도 MDD 회복에 1년이 소요되면 중간에 자금이탈이 발생하며 전략의 생존이 위태로울 수 있다. 칼마는 낙폭의 깊이를 보지만 소요 시간은 외면한다.


이 함정들을 체감한 국내 실전 사례가 있다. 한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이 2021년 초 출시한 모멘텀 ETF 포트폴리오가 대표적이다. 백테스트에서는 칼마가 3.2였지만 2022년 9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의 긴축 정책이 겹치자 MDD가 -25%까지 밀렸다. 연간 수익률이 둔화하며 칼마는 단숨에 0.7로 추락하였고 가입자 중 30%가 이탈했다. 운용사는 칼마 3의 우수한 전략인데 왜 떠나라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사람들은 칼마보다 지갑이 가벼워지는 속도를 더 뼈아프게 체감했다.


그렇다면 이 함정들을 어떻게 피할까? 첫째, 다양한 주기를 둔 평가다. 연간, 분기, 월간 칼마 비율을 동시에 보면 과적합 신호가 경고를 보내기 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둘째, 장세별 백테스트다. 강세·약세·변동성 확대·축소 국면을 나누어 칼마가 어떻게 변하는지 체크하면 된다. 셋째, 회복 속도를 함께 고려한다. 예를 들어 MDD 발생 후 수익률이 원금 회복선에 다다르기까지의 평균 기간이 30일 이내면 리스크 관리 알고리즘이 제대로 작동하는 가능성이 높다.


칼마 비율을 넘어선 리스크 관리?

칼마 비율은 단순히 수익과 낙폭의 비율을 보여주는 척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숫자가 의미하는 본질은 "투자자의 결심을 흔들림 없이 유지할 확률"이다. 칼마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투자자들은 세 가지 공통된 습관을 지녔다.


첫째, 가변적인 포지션 조정이다. 단순히 레버리지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변동성 완충 포인트를 지정하고, 그날의 변동성을 확인하여 포지션을 조정한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MDD 곡선이 완만해지며 칼마 비율이 올라간다.


둘째, 동일 전략의 다중 시간프레임 운용이다. 예를 들어 하루 단위 추세추종, 주단위 모멘텀, 월단위 가치 필터를 중첩해 세 개의 전략으로 운용하는 식이다. 같은 알고리즘이어도 진입·청산 주기가 다르면 손익 곡선이 완만해지면서 합산 MDD가 줄어든다. 칼마 비율의 분모가 작아지면서 점차 상승한다.


셋째, R단위 손실 캡핑이다. 각 포지션의 예상손실을 1R로 정의하고, 당일 총손실이 -3R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거래를 중단한다. R캡은 정책적으로 정지선을 걸어두는 개념이므로 극단적 시장에서도 MDD가 급격히 내려갈 확률을 낮춘다. 칼마가 자연히 안정궤도에 들어선다.


칼마를 넘어선 다중 리스크 지표 조합도 시도되고 있다. 예컨대 ‘칼마 × Sortino’를 활용해 하방 변동성과 낙폭 둘 다를 벌점으로 바꾼다든지, ‘칼마/Ulcer Index’로 낙폭 깊이와 지속 기간을 통합 평가하기도 한다. 한 자산운용사는 아예 칼마 회복 속도(Calmar Recovery Velocity)라는 신규 지표를 만들어, MDD 후 다시 신고점을 찍는 시간까지 고려한다. 숫자는 1.5밖에 안 되더라도 회복 속도가 폭발적으로 빠르다는 이유는 충분한 심리적 안정성을 제공한다.


칼마 비율은 투자자에게 두 가지 예방주사를 놓는다. 첫 번째 주사는 실전 낙폭에 선제적으로 직면하게 만든다. 테이블에 놓인 숫자를 보고 적당히 칼마 2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가도 시뮬레이션 곡선에서 -12%를 목격하면 추가적인 대응책을 찾게 된다. 이것이 심리적인 회복 탄력성의 출발점이다. 두 번째 주사는 전략의 유효함을 정기적으로 확인하게 유도한다. 칼마가 0.1씩 서서히 하락하면 당장 수익이 나도 경보를 켜야 한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언젠가 낙폭이 폭발할 신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칼마 비율에서 얻어야 할 핵심적인 교훈은 숫자를 숫자로 보지 말라는 것이다. 칼마는 결국 인간의 공포, 인내, 탐욕을 압축해 지수화한 심리 계기판이다. 단순히 숫자가 2라는 이유로 전략을 믿으면 안 되고, 0.8이라는 이유만으로 폐기해도 안 된다. 그 뒤에 숨은 낙폭 발생 메커니즘, 회복 전략, 자금관리 루틴까지 함께 들여다볼 때 칼마 비율은 비로소 투자자의 나침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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