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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돌덩이가 층층이 쌓여 하늘을 찌르는 형상은 언제나 사람들을 매혹시켜 왔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외계인이 건설했다는 낭설부터 노예 노동으로 이루어진 비극적 현장이라는 주장까지, 수많은 이야기를 끌어들였다. 흔히 들어온 이야기는 ‘피라미드를 노예가 지었다’는 구절이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간의 고고학적 발견과 역사학적 검토는 전혀 다른 시선을 제시한다. 노예가 아닌 숙련된 노동자들이 국가적 프로젝트를 수행했다는 사실이 강조되면서, 묵직한 통념과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오해가 퍼졌고, 왜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남아 있을까.
노예 노동설의 어두운 그림자
피라미드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 속에는 불가피하게 “채찍질당하는 무리”가 떠오른다. 고대 이집트가 살아 있던 시절의 사회 제도는 분명 지금과 다른 권위주의적 구조를 갖고 있었고, 노예제 또한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피라미드 건설 전 과정이 노예 착취로 돌아갔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기자(Giza) 지역 인근에서 발견된 무덤들은 노예가 아니라 일정 급여와 식량을 받은 숙련 노동자들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대 이집트에는 농한기에 대규모 인력이 국가 사업에 참여하는 관행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건축 기술자, 석공, 운반 인부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임시 계약 형태로 모여, 왕권 강화와 종교적 의무를 수행했다. 극도로 발달한 토목 기술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단순 강제노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조직 체계가 필요했다. 이런 맥락에서 ‘노예’라는 단어는 역사적 사실을 축소하고 왜곡해 버리는 단순화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더해, 노예였다고 주장하기에는 무덤 내부 장례 의식의 정교함이 눈길을 끈다. 단순 노예를 위해 그렇게까지 정성껏 묘역을 마련했을 리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식량이 충분히 제공된 흔적, 맥주나 빵 같은 음식물의 분배량, 공동묘지 내부 구조 등은 ‘숙련 노동자’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로서 평가되고 있다.
역사를 뒤엎는 고고학적 발견
1990년대 이후 시작된 집중 발굴 작업에서 나온 데이터들은 ‘노예가 피라미드를 지었다’는 과거의 통념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기자 피라미드 근처에서 발견된 노동자 무덤에서는 사회적 대우를 어느 정도 누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들이 쏟아져 나왔다. 뼈의 상태, 매장 방식, 묘비에 새겨진 글자들은 건설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인간적 존중을 받았음을 시사했다.
이들은 고도의 기술을 동원해 석재를 채취하고, 정교한 경사로를 건설해 거대한 돌을 끌어올렸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과정을 강제나 폭력만으로 수행했다면,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히려 고대 이집트 왕은 영원불멸을 꿈꾸는 상징적 건축물을 올리기 위해, 수학과 측량, 석공 기술에 재능을 보이는 집단을 조직적으로 동원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노예 제도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집트가 수많은 전쟁 포로와 해외 유입 인력을 데리고 왔다는 사실은 다양한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다만 그 인력들이 곧장 피라미드 건설단의 주축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역사적 기록에 남은 국가 대규모 공사는 전문 인력이 주도했으며, 노예는 투입되었더라도 일부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노예 노동설’이야말로 귀에 쉽게 꽂히는 서사이지만, 실제로는 파악된 자료를 바탕으로 시대와 사회 구조를 균형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문화와 오해, 성경과 할리우드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노예 노동’이 피라미드 이야기와 단단히 얽히게 되었을까. 가장 자주 등장하는 원인은 성경의 출애굽(Exodus) 이야기가 꼽힌다. 성경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기원전 2600년경의 피라미드 건설 시기가 아니라 1000년 이상 후대인 신왕국 시대(기원전 1300~1200년경 추정)와 관련된 내용이다. 그러나 성경의 종교적 권위와 상징성으로 인해, 사람들은 “이집트 = 노예 국가”라는 등식을 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또 다른 축은 헤로도토스 같은 그리스 역사가들이 남긴 기록이다. 피라미드 건설이 끝난 뒤 최소 2000년은 지난 시점에 이집트를 여행했던 이들은, 이미 다른 방식으로 변형된 전승을 접하고 그것을 역사로 남겼다. 여기에 더해 로마 제국 시대로 넘어오면서, ‘로마식 노예제’ 시각으로 과거를 해석하는 경향이 더해진 측면이 있다.
현대에는 그 영향이 할리우드 영화와 애니메이션에까지 뻗어 나갔다. 채찍을 들고 건축물을 쌓게 하는 장면은 극적 긴장감을 연출하기 좋은 소재다. 수많은 작품 속에서 노예들이 고통받는 이미지가 반복 재생산되며, 정작 발굴 기록이나 학술 논문 같은 “덜 자극적인 진실”은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신화와 사실 사이에서
역사학은 끊임없이 새로운 증거와 학설을 맞이한다. 만약 머지않은 미래에 “피라미드는 완전히 노예 노동으로 건설됐다”는 결정적 문헌이나 유골이 발견된다면, 학계는 놀라운 전환점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쌓인 증거로 보면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숙련 노동자들의 생활 흔적, 계약 기반의 국가 사업 운영, 그리고 당대의 종교적·정치적 맥락이 노예 노동설을 반박하고 있다.
다만 일부 학자는 노예가 아예 배제되었다고 단정하기도 조심스럽다고 말한다. 각종 건설 현장에서 잡역으로 투입된 인력이 존재했을 수 있다는 추측이다. 여전히 소수의 노예가 동원되었을 수는 있지만, “피라미드를 지은 것은 전부 노예”라는 구도가 틀렸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부분적인 역할과 건설 전반을 주도하는 노동 집단은 별개 문제다.
이처럼 노예 노동설이 대중적 서사로 굳어진 것은 그동안 다양한 오해와 편의적 서사가 축적되어 왔기 때문이다. 사실이 아닌, 더 자극적인 이미지가 박힌 결과물이다. 거대한 돌무더기가 쌓인 피라미드는 지금도 웅장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이면에 담긴 사람들의 삶과 노동, 그리고 고대 이집트의 정치·종교 시스템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이야말로 현대인에게 적합한 지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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