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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동안 인류는 “시장은 언제 과열되는가”라는 질문에 해답을 갈구해왔다. 금융위기가 찾아오면 불안이 엄습하고, 새로운 혁신이 태동하면 도약의 시기를 놓칠까 봐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런 맥락에서 태어난 것이 흔히 워렌 버핏 지표라고 불리는 측정 방식이다. 주식시장 규모와 국내총생산(GDP)을 비교하여, 어느 정도 수준까지 시장이 부풀어 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도구다. 하지만 이 지표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을까. 지금부터 이를 살펴보려고 한다.
사람들은 “시장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상향한다”는 주장을 많이 한다. 기술 발전과 인구 증가, 무한한 자원 활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 불가능한 주장은 아니다. 특히 미국 시장을 예로 들면, 과거 대부분의 장기 그래프가 우상향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굳이 GDP 대비 시가총액 비율 같은 걸 볼 필요가 있을까 식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편으로, 단기적으로 컵이 넘칠 만큼 물이 부어지는 시점이 매번 온다는 사실 역시 명심해야 한다. 크고 작은 거품이 생기고 꺼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시장은 성장해왔다. 워렌 버핏 지표는 바로 그 지점에서 탄생했다.
GDP와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왜 중요한가
GDP는 일정 기간 동안 한 국가가 생산해낸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총액이다. 시장의 크기를 측정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며, 그 나라가 실제로 벌어들이는 총체적인 경제 활력을 보여준다. 한편,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모든 상장 기업의 평가 가치 합산이다. 이런 평가 가치가 오르고 내리는 것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기대를 반영한다.
주식시장과 GDP를 비교하는 것은 경제 성장이 기업 가치로 얼마나 이어지는지를 확인하는 일종의 거울 효과를 낳는다. 한 국가가 만들어내는 실물 경제 규모와 그 나라 상장 기업의 시장 평가액을 서로 견줘보면서, “실제로 생산해내는 부가치 대비, 주식시장에 심어진 기대감이 지나친가”를 살핀다. 그 결과물이 바로 워렌 버핏 지표다.
이 지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계산한다. “(전체 주식시장 시가총액 ÷ GDP) × 100.” 예를 들어, 특정 시점에 이 비율이 120% 정도로 나타난다면, GDP 규모보다 시가총액이 20% 더 큰 상황이다. 사람들은 이를 해석해 “시장이 어느 정도 고평가된 상태다”라고 추론한다. 다만 수치를 보는 것만으로 당장 폭락이 온다거나 반대로 상승장이 멈춘다는 보장은 없다. 이 지표는 한 걸음 떨어져 시장을 바라보게 해주는 거시적 전망의 일부일 뿐이다.
문제는 GDP가 후행 지표라는 점이다. 한 분기나 반기 동안 발생한 실물 경제 데이터를 모은 뒤에야 통계청이나 정부 기관에서 발표하기에, 실시간으로 변동하는 시장 상황을 포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시총의 급등이나 급락이 단숨에 반영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이런 점을 들어 이미 다 지나고나서 너무 늦게 알람을 주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주목해볼 만한 이유는, 예외적으로 극단적인 시기에 이 지표가 특히 높은 민감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2000년 닷컴버블, 2008년 금융위기, 2021년 팬데믹 이후 과열장 시점에서 워렌 버핏 지표가 상승하거나 상승세가 꺾였던 사례들이 존재한다. 시장이 그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진 못한다.
우상향 논쟁, 시장은 늘 오른다?
장기적으로 시장이 우상향한다는 명제는 역사가 보여주는 결론이기도 하다. 미국 시장을 100년 넘게 추적한 그래프는 여러 차례 폭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는 상승 곡선을 그렸다. 이런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는 워렌 버핏 지표가 갈수록 높은 수치를 찍어도 크게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이 지표가 탄생한 시점과 현재를 직접 비교하면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신기술들이 GDP를 초월해서 시장 가치의 폭발적 증가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대기업이 해외 매출을 끌어올려서 기업 가치를 키우는 상황은 GDP 통계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는다. 미국 기업이 전 세계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미국 GDP가 아닌 각 국가별 경제 수치에 분산되어 잡힐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보니 “글로벌 매출 비중이 큰 초대형 기업이 시총을 끌어올리는 구조”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버핏 지표가 과거와 같은 기준으로 100% 수준을 넘겼다고 해서 과열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는다. 실제로 2017년 이후 130%대는 물론, 2021년 이후 200%를 넘기는 모습도 등장했다. 시장이 무너질 것이라는 경고가 여러 번 나왔으나, 당장 대폭락이 오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 지표의 의미는 완전히 퇴색되는 것일까.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늘날도 워렌 버핏 지표가 그 자체로 메시지를 준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나치게 높은 수치가 주식시장 전체가 기대감에 들떠 있음을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단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자산 가치가 GDP를 훨씬 뛰어넘어 폭주할 때는, 언젠가는 일정 수준의 조정이 발생해왔다.
미국 바깥, 다른 국가에 적용할 수 있는가
가끔 워렌 버핏 지표를 한국이나 다른 국가들에도 그대로 대입해서 해석하려는 시도가 보인다. 하지만 국가별 경제 구조가 다르다는 점을 놓쳐서는 곤란하다. 예를 들어 한국은 부동산과 대기업 위주 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상장사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고, 상당수 기업이 사실상 비상장 상태에서 운영된다는 점도 무시하기 어렵다. 중국 역시 국영기업 비중이 높은 데다, 여러 정부 규제가 뒤섞여 있다.
이런 환경에서 “(전체 상장 주식 시총 ÷ GDP) × 100”으로 나온 수치가 과연 과열 판단에 유효한 근거가 될까. 여기에 대해 회의적 시각도 있다. 미국 기준으로 개발된 잣대를 다른 나라에 그대로 들이미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특히 세계 경제가 긴밀히 연결된 시대에는 환율, 각국의 통화정책, 무역 상황이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특정 지표 하나만 보면 오판할 여지가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지표를 절대 활용하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얼마나 GDP에 비해 주식시장이 확장되어 있는가”라는 거시적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미국에서 관찰된 특정 수준(가령 100%나 120%)을 기준으로 삼아 무턱대고 투자 방향을 결정할 수는 없다. 국가별 시장 특성과 경제구조, 금리 환경, 환율 등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시야가 필수적이다.
결국 무슨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워렌 버핏 지표는 “지금이 고점이니 다 팔아라” 혹은 “이제 바닥이니 전부 매수해도 된다” 같은 결론을 주지는 않는다. 단기적 시장 움직임까지 예측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버핏 본인도 이 지표를 여러 지표 중 의미 있는 지표로 언급했지, 이것만으로 투자 결정을 내려온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활용 가치가 있을까. 먼저 기업의 실질 가치 대비 거품이 얼마나 생겼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다른 거시지표와 함께 보완적으로 해석할 때 시사점을 얻는다. 금리는 어떠한지, 경기 사이클은 어느 단계에 있는지, 통화량은 얼마나 늘어나는지를 총체적으로 비교한다면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또한 극단적 수치를 향해 치달을 때, 최소한 이상 징후 정도는 감지할 수 있다. 2000년 닷컴버블 시점에서 이 지표가 급격히 상승하여 150% 가량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위험신호를 감지하고 현금을 확보해두었다. 물론 버핏 지표만 믿고 그 시기를 정확히 맞춘 것은 아니었겠으나, 매수 열풍이 극으로 치달을 때 확실한 객관적 반증 하나가 존재했다는 사실에는 의의가 있다.
장기적으로 주식시장이 우상향한다는 것은 매우 높은 확률로 옳을 수 있지만, 그 곡선 안에는 예상치 못한 급락이 언제든 숨어 있다. 따라서 시장이 과열되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중요한 습관이다. 우리가 단기로 매도나 매수를 결정할 때, 버핏 지표는 그 자체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지만, 거품 붕괴로 인한 대규모 손실을 피하고자 할 때 참고할 만한 방법론이 될 수 있다.
이 지표가 특정 구간을 넘어섰다는 뉴스가 보도되면, 마음이 흔들리는 투자자가 많아진다. 멈춰야 하나, 더 달릴 수 있나 하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지표를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GDP라는 실물 경제 지표는 결코 작은 시그널이 아니다. 주식시장이 아무리 세계로 뻗어가고, 글로벌 매출이 늘어난다고 해도, 그 뿌리는 결국 한 국가의 경제 기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답은 “버핏 지표를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이분법에 있지 않다. 결국 시장을 이해하는 다면적 시야가 필요한 시대다. 수많은 매크로 지표들 사이에서 거품 수준을 한 가닥이라도 빠르게 포착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리스크 관리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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