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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익 채권의 스프레드(High Yield Spread)가 다시금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크본드와 국채 사이의 금리 차이를 가리키는 이 스프레드는 경기 둔화나 금융시장 불안이 감지될 때마다 어김없이 화두로 떠오른다. 예컨대 2016년 유가 폭락으로 인해 에너지 섹터의 디폴트 위험이 높아졌을 때, 그리고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 경제를 강타했을 때도 스프레드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한편, 상승한 스프레드가 항상 심각한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 역시 여러 사례로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이 지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경기 흐름을 읽는 나침반 구실을 하는 것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요약하자면, 하이일드 스프레드(High Yield Spread)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금융시장 위험을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로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중앙은행의 적극적 개입과 파생상품의 복잡성 등으로 인해, 이 지표 하나만으로 미래를 속단하기에는 변수가 변화한다는 사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정크본드의 심리학: 스프레드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정크본드, 혹은 고수익 채권이라 불리는 회사채는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이 발행해 비교적 높은 이자를 약속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부도 위험이 크다. 이를 정교하게 측정하기 위해 시장은 정크본드 금리와 국채 금리의 차이를 주시해 왔다. 국채는 정부가 보증하므로 이자 지급이 거의 확실하다. 반면, 정크본드는 이자율이 높아도 기업이 파산하거나 채무불이행을 일으키면 원금을 날릴 수 있다. 따라서 둘 사이의 금리 차이가 벌어지는 것은 투자자들이 위험 프리미엄을 크게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파란 선(하이일드 스프레드), 빨간 선(나스닥)

 

이 지표는 위기 때마다 눈에 띄게 출렁거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하이일드 스프레드 지표는 20%가량이 되었고, 시장 공포가 극에 달했음을 알렸다. 2016년 초에는 8% 안팎으로 상승했는데, 당시 유가 급락에 따른 에너지 섹터의 위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대형 은행이 연쇄 부도를 맞거나 신용경색이 전 산업으로 확산되지 않았다. 국채로 피신하는 자금은 많았지만, 다행히 위기는 국지적 수준에서 잦아들었다. 2020년 코로나 시기에도 스프레드는 단숨에 10% 부근까지 뛰어올랐으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빠르고 강력한 개입으로 채권시장이 안정을 찾았다.

 

흥미로운 점은 투자자들이 국채로 몰리는 이유다. 안전한 자산에서 낮은 수익률만을 기대하더라도, 불확실성의 공포가 그보다 크다면 시장은 자금을 안전자산에 밀어 넣는다. 이는 곧 국채 가격 상승, 국채 수익률 하락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정크본드는 반대로 매물이 쏟아져 가격이 떨어지고 금리가 상승한다. 이렇게 국채와 정크본드 사이의 스프레드가 커질수록, 시장은 위험에 민감해져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게 된다.


스프레드의 역학: 2016년과 2020년의 교훈

파란 선(하이일드 스프레드), 빨간 선(나스닥)

 

2016년의 스프레드 급등은 전 세계를 뒤흔들 금융위기까지는 아니었다. 이유는 비교적 명료하다. 당시 위기의 주무대가 에너지 섹터에 한정됐고, 은행 시스템이 받는 직접 충격이 제한적이었다. 유가가 폭락하자 미국 셰일오일 기업들이 발행한 정크본드의 리스크가 높아졌고, 투자자들은 급하게 손절하거나 국채로 이동했다. 결과적으로 해당 시점의 스프레드는 미칠 듯이 치솟았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 전반이 흔들렸던 2008년과 달리, 2016년의 충격은 특정 산업에 머물렀다.

 

반면,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은 더 광범위한 불확실성과 충격을 초래했다. 세계가 갑자기 멈춰 서면서 실물 경제 활동이 급감했고, 대부분의 기업이 현금 흐름에 심각한 문제를 겪었다. 주식시장은 일시적으로 폭락했고, 채권시장마저도 신용 경색 우려가 커졌다. 당시 하이일드 스프레드는 10% 가까이 치솟았고, 일부 투자자는 2008년의 악몽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연준이 다소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대규모 양적완화(QE)에 나섰다. 심지어 정크본드까지 사들이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그 결과 시장은 빠르게 안정됐고, 스프레드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

 

이처럼 스프레드는 단순히 시장의 '패닉 지수'가 아니라, 중앙은행 정책을 통해 얼마든지 바뀔 여지가 있는 변수이기도 하다. 한때 무소불위로 보였던 스프레드의 급등 현상이, 연준의 일련의 조치 후 급격히 진정된 사례는 많은 투자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과거에는 소방관이 불을 끌 도구가 제한적이었다면, 이제는 소방관이 직접 불길 주변에 방화벽을 설치하고 헬리콥터로 소나기까지 퍼부을 수 있게 된 셈이다.


미래의 스프레드,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가

 

하이일드 스프레드가 여전히 경기를 진단하고 리스크를 평가하는 데 쓸 만하다는 주장도 많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에게 자금을 빌려줄 때 시장이 요구하는 프리미엄은, 근본적으로 기업의 파산 위험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특히 채권시장에는 주식시장과 달리 단기 트레이딩보다 안정적으로 이자 소득을 추구하는 자금이 많고, 신용위험에 민감한 기관투자자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이 위험 프리미엄을 높인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시장의 불안 심리를 보여주는 징표가 된다.

 

하지만 중앙은행 개입이 잦아지고, 회사채 외의 다양한 파생상품·사모펀드·크레딧 상품이 등장하면서 스프레드 하나만으로 경기 흐름을 속단하기는 힘들어졌다. 예컨대 2020년처럼 연준이 직접 정크본드를 매입하면, 스프레드는 실제 리스크보다 훨씬 낮게 형성될 수 있다. 투자자들이 "어차피 중앙은행이 구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면, 고수익 채권을 발행하는 기업들은 자금 조달을 쉽게 할 것이고, 시장은 잘못된 시그널을 발생시킬 위험이 있다.

 

스프레드가 빠르게 상승한다 해도 기업들이 여러 방법으로 신용등급을 유지하거나, 부채 구조를 재조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는 중앙은행의 신용 보호막이 지속되는 한, 과거처럼 스프레드 급등이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따라서 스프레드만 바라볼 게 아니라, 고수익 채권 중에서도 특정 산업군의 디폴트 위험이 높은지, 은행 대출 태도와 자본 건전성이 어떤지, 기업 실적이나 배당 정책은 어떠한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스프레드와 다른 지표의 조합은?

스프레드를 미래에도 신뢰할 수 있으려면, 그 신호가 다른 지표들과도 일관되게 움직여야 한다. 예컨대 VIX(주식시장의 변동성 지수), TED 스프레드(은행 간 금리와 국채 금리 차이), BBB-AAA 스프레드(투자등급 회사채 간 신용 위험 차이) 등을 함께 관찰할 필요가 있다. 스프레드가 단독으로 급등했는데 VIX나 다른 신용 지표가 미동도 없다면, 일시적인 오버슈팅일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모든 지표가 동시에 신용 경색이나 공포를 알린다면, 그 신호는 훨씬 더 무게감이 크다.

 

더불어, 국채 수익률 곡선의 장단기 금리차가 역전되는지 여부도 중요하다. 장단기 금리차가 축소되거나 역전될 때, 그 시점으로부터 6~18개월 후 경기침체가 찾아왔던 사례가 과거에 여러 번 있었다. 스프레드가 상단 구간으로 치솟는 것과 이러한 금리곡선 역전이 동시에 일어난다면, 시장은 금융위기를 대비해야 할 수 있다. 결국 스프레드는 여전히 유효한 지표이지만, 과거와 달리 중앙은행의 개입 옵션이 다양해졌으므로 스프레드가 보여주는 시그널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하나의 참고 지표로 삼되 다른 데이터와 결합해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는 전략이 바람직하다.

 

찬성과 반대가 나뉘는 지점도 여기다. 아직까지 스프레드를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정크본드 시장이 잠잠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디폴트 우려가 줄었다는 뜻이며, 설령 중앙은행이 개입하더라도 그 자체가 한 경제 주체로부터 받은 직접적인 리스크의 조정 과정"이라는 의견을 낸다. 반면, 스프레드에 회의적인 목소리는 "거품을 키우는 정책 탓에, 신용시장이 인위적으로 부풀려져서 스프레드가 낮게 유지되면 결국 또 다른 거대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는다. 어떤 쪽이 옳은지는 결국 지나봐야 알 수 있지만, 적어도 스프레드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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