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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산다는 것은 환상인가?
끊임없이 회자되는 초장수 전설이 있다. 중국에서 256년을 살았다고 전해지는 이청운 이야기나 800년을 살았다는 펑주 이야기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청운은 산중에서 약초를 캐며 명상을 통해 심신을 닦았다고 알려졌다. 펑주는 황제의 후손이라고 전해지는 상·주나라 시대 인물로, 그는 벽곡이라 불리는 곡식 섭취 금지법을 통해 장수했다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나 열자 같은 고대 기록에 등장하며, 훗날 도교적 색채가 덧입혀졌다. 이들은 많은 이에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징으로 남았다.
그러나 실제로 800세 혹은 256세라는 수치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고대 문헌에서 자주 보이는 과장과 도교 특유의 신선 사상이 결합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청운과 펑주 이야기는 계속 반복되어 왔다. 사람들은 왜 이런 전설을 흥미롭게 받아들이는가. 그 근저에는 불로장생, 장수, 신비라는 매혹적인 키워드가 자리한다. 한편으로는 과학이 발전한 현대에 이런 이야기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전설과 현실이 충돌하는 지점에 인간의 욕망과 상상력이 교차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의학에서는 공식적으로 가장 오래 산 사람으로 잔 칼망(122세)을 인정한다. 그 외에 116세, 119세까지 산 기록도 있으나 모두 800세나 256세와는 거리가 멀다. 장수 기록이 쌓이는 과정에는 출생일과 사망일이 검증되는 투명한 행정 체계가 중요한 요소이다. 고대에는 그런 체계가 부족했고, 전해지는 내용에 신화적 장식이 붙었을 가능성이 짙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고대에는 현대의 우리가 알지 못하는 특별한 수련법이나 약초가 있었을 것이라는 로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가늠하기 위해서는 전설에 내재된 은유와 함께, 검증된 사실들을 차분히 살피는 태도가 필요하다.
벽곡과 불로장생, 근거가 있는가?
펑주의 전설에는 곡물을 일체 섭취하지 않는 식이요법, 즉 벽곡이 핵심 비결로 거론된다. 곡물 대신 채소, 과일, 약초 위주의 식단을 유지하며 동시에 기공이나 명상을 곁들였다고 전해진다. 현대 시점에서 보면 칼로리 제한과 간헐적 단식, 저탄수화물 식단에 가까운 방식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 간헐적 단식은 노화 지연, 면역력 향상 같은 연구 결과가 일부 동물 실험에서 관찰되었다. 인체에 대입했을 때도 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 개선 효과가 보인다는 데이터가 나오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벽곡 자체가 무조건 허무맹랑한 주장이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소식을 통한 신체 리듬 안정, 과잉 영양소 섭취 차단, 채소와 약초를 통한 항산화 물질 섭취와 같은 요소가 맞물리면 일종의 장수에 도움이 될 개연성이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다만 곡물을 완전히 끊는 것은 현대 영양학적 관점에서 영양 결핍 우려가 크다고 본다. 비타민 B군과 무기질, 섬유질을 꾸준히 섭취해야 하는데 벽곡을 극단적으로 지속하면 영양소 결핍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인간이 체계적으로 영양을 설계하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벽곡이 곧바로 수백 년 살게 해주는 비결이라고 보긴 어렵다. 전설 속 인물이 벽곡을 통해 신비로운 장수에 도달했다는 주장은 결국 특정 종교나 사상의 이상향을 담아낸 것에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벽곡 전설이 전해지는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극단적으로 곡물을 끊는다는 행위에 담긴 의미가 단순한 식단 제한이 아니라, 세속적인 욕망을 줄이고 자연에 가까워지는 수행을 상징적으로 포함한 것일 수 있다. 식생활에서의 자발적 절제는 도교 사상에서 말하는 속세를 벗어나 신선이 된다는 목표와 접점을 이룬다. 벽곡을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정신적 성장을 이룬다는 메시지가 넣으려는 것일 수 있다.
장수 신화, 어떻게 보아야 할까?
펑주는 실제로 존재했을까.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다는 점을 들어 실존 가능성을 주장하는 이가 있다. 다만, 문헌의 기록이 대체로 장수 전설과 연결되는 내용에 그칠 뿐 아니라 실제 행적이 구체적으로 남아 있지 않다. 이는 신화적 요소가 후대에 많이 덧붙여졌음을 시사한다.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랐다는 서술은 도교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미지다. 그렇다면 펑주는 실제로 비교적 오래 산 일반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백 세나 그 이상 장수했다면, 당시 관점에서 매우 드문 사례였으므로 신선 대접을 받았을 법하다.
이청운의 사례 또한 마찬가지다. 그가 전설 속에서 256년을 살았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정확히 증명하지 못했다. 근대 시기의 뉴욕타임스 보도로 유명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나, 사실관계를 자세히 살피면 문헌상 오류가 잦다는 지적이 많다. 고증이 성립하지 않는 주장도 있으며, 생년 기록에 혼선이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 그럼에도 그가 약초학과 무예에 능통했던 장수 노인이라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인간은 장수의 신비를 갈망하고, 한편으로는 그 비결을 찾고 싶어 한다.
역사적 사실과 신화가 뒤섞여 전승되는 사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흔하다. 펑주, 이청운, 주나라 시기와 청나라 시대를 아우르는 화려한 설화는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한편으로는 현대의 기록 시스템, 과학 연구, 인구 통계가 정교해진 시대에 이르면 과거 전설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잔 칼망의 122세가 현재 기록상 최장수 사례라는 점을 보더라도, 256세나 800세는 과도한 신화로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어쩌면 가짜로만 치부할 수 없는 문화적 상징과 소망을 담고 있다. 펑주와 이청운은 단순한 나이의 기록이 아니라, 인류가 오랜 세월 꿈꿔온 건강한 수명과 자연과의 교감을 상징한다. 고대나 현대나 장수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어 왔고, 그런 관심이 전설을 매개로 더욱 극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전설적 인물의 장수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비합리적인 부분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전설 속 장수법을 완전히 부정할 이유도 없지만, 그것이 과학적 사실이라고 무조건적으로 맹신할 이유도 없다. 거기에는 신화와 상징, 그리고 한 시대의 염원이 함께 녹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열망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펑주와 이청운 같은 전설이 이를 대변하는 존재로 남아 왔다. 기록이 충분치 않은 가운데 전승 과정에서 과장이 첨가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나, 그 안에 담긴 삶의 지향이 완전히 터무니없다고 간주하기는 어렵다. 현대적 시선으로 고찰하면, 결국 절제된 식습관과 자연과의 조화, 그리고 정신적 수양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신화와 현실이 만나는 지점에는 언제나 장수에 대한 인류의 오랜 질문이 놓여 있었다. 펑주와 이청운의 이야기는 그 질문에 한층 색채를 입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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