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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과 치아, 누구의 잘못인가
일반적인 통념에서 설탕은 곧 충치를 일으키는 악당으로 그려져 왔다. 오래된 치과 교본에서는 설탕이 충치의 주범이라는 단순 명제를 내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와 치과학계의 의견은 훨씬 더 미묘하다. 밥·빵·면 같은 탄수화물도 충분히 충치를 일으킬 수 있고, 산성 음료는 입안에 짧게 머물더라도 치아의 법랑질을 무력화하기에 충분한 강도를 지닌다. 설탕이 정녕 문제인가, 아니면 다른 데서 더 근본적 원인을 찾아야 할까. 치아가 손상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다음 다섯 가지 물음을 통해 탄수화물, 산성 음료, 구강 관리 습관을 통찰해보려 한다.
밥과 빵도 치아 부식의 원흉일까?
흔히 설탕이 가득 들어간 간식이 충치와 직결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입안에 들어온 탄수화물은 결국 당분으로 분해된다. 밥·빵·면류가 단맛을 내지 않는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는 말이다. 특히 빵은 촉촉하고 부드러워 치아에 달라붙기 쉽다. 설탕이 듬뿍 들어간 캔디보다도 오랫동안 치아 틈에 남아 박테리아의 먹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한편으로, 탄수화물의 일상적 섭취 자체를 무조건 금지하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빵이나 밥 같은 주식 없이는 균형 잡힌 식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점이다. 즉, 탄수화물 섭취가 필수적이라면 문제는 얼마나 철저히 치아 관리를 하느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맛이 없으면 괜찮다는 식의 안일한 생각은 경계해야 한다. 치아 표면에 남은 미세한 탄수화물 찌꺼기가 결국 충치 세균의 연료가 되기 때문이다.
WHO 등에서도 탄수화물 섭취가 충치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다수 연구로 검증해 왔다. 쉽게 말해, 당류인지 복합 탄수화물인지가 아니라, 입안에 얼마나 오랫동안 남아 세균이 이를 분해하느냐가 관건이다. 설탕의 양보다 치아 표면에 붙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달지만 끈적이지 않은 음식 vs 끈적하지만 단맛이 적은 음식, 뭐가 더 위험할까?
어떤 이들은 “어차피 단맛이 강한 음식이 충치를 더 빨리 일으키는 것 아닌가”라고 말한다. 실제로 초콜릿이나 사탕류는 설탕 함유량이 많다. 하지만 초콜릿(특히 다크 초콜릿)은 침에 비교적 빨리 씻겨 내려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단맛은 덜해도 끈적거리는 감자칩이나 빵 조각이 오히려 더 오랜 시간 치아에 달라붙어 충치를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성립한다.
반면 달콤한 음료나 디저트의 옹호자들은 “끈적한 음식이라 해도 탄수화물 함량이 적으면 큰 문제가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치과학적 관점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변수는 여전히 치아 표면 잔류 시간이다. 비록 소량의 당이라도 치아와 오래 접촉하면 그만큼 미생물이 산을 만들어낼 기회가 늘어난다.
결국 단맛의 강도와 끈적함 중 어느 쪽이 더 치명적인가 하는 문제는 “치아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특성”이 한 수 위라는 결론으로 기울고 있다. 달아도 빨리 흘러내리는 액상 형태의 음식은 상대적으로 해가 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즉시 헹구지 않고 방치한다면 그 역시 충치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달면서 끈적한 젤리는 정말 최악이다.
밤에 탄산음료 한 모금, 위험할까?
누군가는 “탄산음료는 목을 타고 바로 내려가므로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탄산음료의 가장 큰 문제는 산성도에 있다. 대부분의 탄산음료는 pH 2~4 사이를 기록한다. 예컨대 콜라는 pH 2.5 전후로, 치아 법랑질을 직접 부식시키기에 충분히 낮은 수치다.
보통 침은 산을 중화하는 완충 역할을 맡고 있지만, 밤에는 침 분비량이 감소한다. 결국 탄산음료가 치아 표면을 강타한 뒤 충분히 씻겨 나가지 않고 어느 정도 잔류하면, 법랑질이 손상되고 충치 세균이 공격하기 좋은 토양이 만들어진다. 특히 밤늦게 음료나 주스를 마시고 그대로 잠드는 습관이 가장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탄산수의 경우에는 일반 콜라보다는 덜 위험하다. 그러나 레몬이나 라임처럼 산미를 첨가한 탄산수는 pH를 더욱 낮추어 치아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게다가 무설탕 탄산수라도 자주 마시면 구강 환경이 계속 산성에 노출될 수 있다. 즉, 한두 번 마시는 것쯤은 큰 문제가 없지만, 조금씩 자주 마시는 습관은 치아 건강에 불리하다.
하루 3번 대충 닦을까, 하루 2번이지만 완벽하게 닦을까?
양치 습관과 횟수에 대한 논쟁은 오래되었다. “하루 3번 양치”라는 문구를 대다수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횟수 자체보다 얼마나 철저하게 플라크를 제거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루 3번 양치한다고 해도 몇 초 만에 대충 끝낸다면 치아 틈새나 구석에 남은 세균이 제거되지 않고 지속 활동할 수 있다.
특히 탄수화물이 풍부한 식사를 자주 하는 현대인에게는 양치질이 단순한 ‘행위 횟수’가 아니라 ‘질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꼼꼼하게 2분 이상 닦아야 치아 표면의 플라크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치간 칫솔이나 치실 사용도 큰 도움이 된다는 권고가 나온다. 한 기관에서는 “치실을 사용하지 않는 양치는 집을 청소하면서 구석구석 쓸지 않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양치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불평할 수도 있다. 아침에 바쁘거나 점심 식사 후 시간이 부족하면 양치에 소홀해지기 쉽다. 그럴 때는 구강청결제나 무설탕 껌(자일리톨이 함유된 제품)로 보완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한다. 침 분비를 유도해 산성을 중화하고 치아 표면을 어느 정도 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설탕이 충치의 상징이 되었을까?
과거에는 설탕 섭취가 늘어남에 따라 충치 발생률이 함께 높아졌기 때문에 “설탕=충치”라는 메시지가 대중에게 각인되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가공식품과 청량음료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치아 문제도 심화되었다. 1940~1950년대 광고와 교육 매체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경고를 퍼뜨렸다. 결국 사람들의 뇌리에는 “설탕이 곧 충치를 만든다”라는 도식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치과학이 발전하면서, 당분은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입 안에 남아 있는 시간, 치아 관리 수준, 개인의 침 분비량, 잇몸 상태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탕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위험 요소다. 가공식품과 음료 전반에 매우 넓게 퍼져 있고, ‘단맛’이 주는 즉각적 쾌감 때문에 쉽게 소비된다는 점이 크다.
한편, 탄산음료 회사들은 무설탕 제품이나 대체 감미료를 활용해 소비자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있다. 그러나 아스파탐·수크랄로스 같은 인공감미료가 들어간 음료 또한 산성이며, 구강 내 pH를 낮출 수 있다는 점이 여전히 주요 문제로 지적된다. 산성도를 관리하지 않고 설탕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탄수화물, 설탕, 산성 음료, 심지어는 무설탕 탄산수까지 충치 위험성과 연결되어 있다. 치아 건강을 지키는 핵심은 얼마나 자주, 얼마나 꼼꼼하게, 얼마나 즉시 구강 관리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예컨대 밤에 당류가 많은 음식을 섭취하고 양치를 소홀히 하면 위험이 커진다. 낮 시간에는 침 분비가 활발하므로 같은 양의 설탕을 섭취해도 충치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볼 수 있다.
치과학적 논의에 따르면, 치아에 붙은 음식 찌꺼기를 빠르게 제거하는 것이 결론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당류 자체만을 악당으로 생각하기 보다, 전체적인 식습관과 구강 관리 루틴을 개선해야 한다는 시각이 힘을 얻는다. 밥·빵·면류를 포함한 모든 탄수화물은 궁극적으로 당을 생성하지만, 이를 전혀 먹지 않는 삶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찬반양론을 떠나, 적당한 탄수화물 섭취와 제대로 된 양치, 자일리톨 등의 보조 수단을 적절히 활용하면 어느 정도 균형점을 찾을 수 있다. 인공감미료가 들어간 제로 음료도 완전무해하지 않고, 설탕이 든 제품도 즉시 씻어낸다면 치명적이지 않다. 치아의 운명은 극단적인 패턴이 아니라 일상 속 세밀한 습관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치아 건강이 전체적인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구강 위생이 나쁜 사람은 심장병, 당뇨, 치주염 같은 질환 위험이 높아진다는 통계도 있다. 결국 치아를 보호하는 일은 단지 미소를 아름답게 유지하는 문제를 넘어, 몸 전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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