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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손님 같은 존재다. 그러나 이 흔한 손님과 마주할 때마다 매번 새롭고 때로는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구는 면역 체계가 강하다고 자부하지만, 무심코 길거리에서 재채기를 듣고 며칠 뒤 감기에 걸리는 자기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오렌지 주스를 열심히 마시면 감기가 빨리 낫는다고 믿어 왔고, 또 어떤 이는 비타민C 보충제만이 유일한 해답이라 여겨 왔다. 그런데 과연 그 믿음과 습관은 과학적으로 타당할까. 격렬한 운동선수나 군인처럼 극한 환경에 노출된 사람에게서 증명된 효과가 일반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까. 비타민C는 감기에 걸린 뒤에는 크게 소용이 없다는 연구 결과는 왜 이제 와서 널리 알려지고 있을까.
때로는 훌륭한 의학정보가 있어도, 거꾸로 오래된 믿음이 강하게 남아 사람들의 행동을 움직이기도 한다. ‘비타민C를 많이 먹으면 감기가 낫는다’ 같은 말이 대표적 사례다. 감기에 걸렸을 때 부모 세대가 유독 오렌지 주스를 권장했던 것은, 단순히 비타민C 때문이 아니라 수분 보충과 다른 항산화 성분을 함께 공급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비타민C만 맹신하면 중요한 다른 영양소나 생활습관을 간과하게 된다.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그동안 무심코 스쳐 왔던 감기와 면역력, 그리고 비타민C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살펴본다.
감기와 믿음은 어떻게 뒤섞였나
감기는 흔히 ‘코로나19’ 이전 시대부터 가벼운 질환으로 취급되어 왔다. 증상은 대체로 가볍지만, 바이러스의 종류는 수많은 변종이 존재한다. 면역 체계가 아무리 강해도, 새로운 유형의 바이러스 앞에서는 처참히 무력해질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면역력이 세면 모든 바이러스를 다 이겨낸다”라는 듯한 환상이 있었다. 그 환상에 불을 지핀 것이 라이너스 폴링의 비타민C 이론이었다.
라이너스 폴링은 노벨상을 두 번 받은 위대한 과학자였지만, 비타민C에 대한 개인적 확신을 지나치게 펼친 면이 있었다고 평가된다. 그가 제시한 고용량 비타민C 복용 이론은 무수히 많은 사람에게 감기 치료의 열쇠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제약 산업과 마케팅이 이 믿음을 더욱 견고히 다졌다. 기업은 많은 광고를 통해 비타민C의 이미지를 만병통치약처럼 포장했고, 소비자도 애써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속 연구와 임상 시험 결과, 감기에 이미 걸린 뒤 비타민C를 추가로 섭취한다고 해서 회복 기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지는 않는다는 점이 드러났다. 감기 증상이 조금 줄어들 수 있다는 결과가 일부 존재하지만,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요약하자면, 비타민C는 미리 꾸준히 섭취하는 것이 감기 예방에 어느 정도 이롭지만, 이미 시작된 감기를 ‘치료’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결론이다.
우리가 놓친 바이러스의 복잡성
감기는 리노바이러스뿐 아니라, 코로나바이러스 계열, 아데노바이러스 등 다양한 바이러스에 의해 생긴다. 이런 바이러스들은 일상 속에서 문고리나 휴대폰, 탁자 등의 표면을 통해 손쉽게 이동한다. 따라서 면역 세포가 아무리 강해도, 처음 접하는 바이러스가 몸에 침투하면 증상이 발현될 가능성이 있다.
면역력이 강하다는 것은 병원체를 더 빨리 제거하고, 몸을 원래 상태로 돌리는 데 유리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증상을 호전시키는 데에는 면역 반응에 의해 발생하는 염증도 큰 몫을 한다. 지나치게 강한 면역 반응은 오히려 콧물, 기침, 인후통 같은 불편함을 과도하게 키울 수 있다. 이렇듯 면역이 강하다고 해서 감기에 무조건 안 걸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바이러스가 자리를 잡아 몸 안에서 자리잡는 것을 방해하며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정도로 해석하는 편이 옳다.
위생 습관이 중요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손 씻기, 마스크 착용, 사람이 많은 곳에서 비말 노출을 줄이는 행동들이 감기 바이러스 전파를 현저히 낮춘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로 확인되었다. 면역이 강하다는 자부심을 갖더라도, 이런 예방 수칙을 무시한다면 결국 감기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비타민C보다 더 눈여겨볼 영양소
흔히 감기에 걸리면 비타민C를 먹으라는 말을 듣는다. 오렌지나 레몬, 파프리카 등을 찾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를 살펴보면, 감기 극복에 있어 비타민C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영양소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아연(Zinc)이다. 감기 초기에 아연을 섭취하면 바이러스가 세포 내에서 증식하는 과정을 어느 정도 억제해 감기의 지속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가 나온다.
비타민D도 무시하기 어렵다. 햇볕을 충분히 받지 못하거나, 식단에서 비타민D가 결핍된 사람은 감기에 걸릴 위험이 더 커진다는 역학 통계가 존재한다. 실제로 겨울철에 감기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 중 하나가 비타민D 합성 부족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단백질이다. 면역 세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충분한 단백질이 필요하다. 인체는 바이러스를 방어하기 위해 항체를 생성하고, 그 과정에서 각종 면역 물질이 생산된다. 이 전반이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기본적인 영양소인 단백질이 충분해야 한다. 달고 짠 음식을 피하고 단백질, 채소, 건강한 지방을 고르게 섭취하는 식습관이 결국 감기 극복에 도움이 된다.
비타민C는 허무한가, 아니면 여전히 가치 있는가
어떤 이들은 “결국 비타민C가 쓸모없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비타민C가 면역 체계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는 분명 존재한다. 항산화 작용을 통해 신체 세포가 산화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돕는 기능도 있다. 특히 격렬한 운동을 하는 사람이나 극한 환경에서 활동하는 이들에게 비타민C는 확실히 추가적인 이점을 제공한다.
예방적 차원에서는 비타민C 섭취가 어느 정도 의미가 있지만, 이미 감기 증상이 시작된 뒤에는 효과가 제한적이다. 주변에서 감기에 걸렸다 싶으면 얼른 비타민C 1,000mg짜리를 여러 알 집어 먹으라고 조언하는 일은 흔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방법이 기적 같은 치료 효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오렌지 주스나 귤 등의 자연식품을 통한 비타민C 섭취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수분과 항산화 성분을 공급하며 갈증도 해소하기 때문에 감기로 인한 불편감을 낮추는 데 여전히 도움이 된다.
자연식품과 영양제 사이의 고민도 이어진다. 자연식품에는 비타민C 이외에도 다양한 항산화물질과 식이섬유가 포함되어 있어 종합적인 이점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영양제는 빠르고 간편하게 고용량을 섭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결국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영양제로 보충하는 접근이 합리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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