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앙화로 재중앙화 되었다고? BIS의 경고와 속내 morgan021 2025.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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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탈중앙화의 약속과 불편한 진실
적막이 흘렀던 2009년 1월 새벽, ‘사토시 나카모토’란 익명 사용자가 업로드한 논문 돌멩이 하나가 잔잔한 호수 한가운데로 던져졌다. P2P 전자화폐라는 실험은 중앙은행을 거치지 않고도 가치를 교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초기의 채굴자들은 PC 냉각팬이 내뿜는 열기 속에서 열악하게 비트코인을 캤고 푼돈의 전기를 소모해 거침없이 블록을 쌓아 올렸다. 그때만 해도 탈중앙화란 단어는 해방의 은유처럼 들렸다. 불균형한 글로벌 통화 체제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구원 서사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열세 해 남짓 지난 지금, 비트코인은 금융적 그라운드 제로라 불리던 2008년 금융위기가 남긴 폐허 위에 자신만의 불평등 서열을 세웠다. 한 조사에서 상위 2퍼센트 주소가 유통 물량의 92퍼센트를 보유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탈중앙화의 낭만은 아이러니한 집중화 통계와 뒤엉켰다. 후발 주자가 공급한 유동성이 초기 보유자의 퇴로를 열어 주는 구조가 반복됐고 시장은 가난한 참가자에게 레버리지의 달콤함을, 부유한 참가자에게는 출구의 신속함을 제공했다. 탈중앙 시나리오는 기술적으론 가능했지만 인간의 권력적 본능과 탐욕은 코드 위에 또 다른 위계 구조를 세웠다. 기술은 인간사를 재편할 수 있었지만 인간이 기술을 통제하는 한 불평등은 형태만 바꿀 뿐 사라지지 않았다.
BIS의 통제 논리와 기득권 유지
바젤 레만 강변에 위치한 국제결제은행(BIS) 본부 건물은 창문마다 햇빛이 비치는 오전이면 반짝며 위용을 뽐낸다. 그 안에서 작성되는 보고서는 종종 작은 활자로 세계 금융 시스템의 기류를 바꾼다. BIS가 올해 내놓은 ‘암호화폐와 디파이의 금융 안정성 리스크 탐구’ 보고서는 한 장 한 장이 유리 조각처럼 날카로웠다. 코인 시장에 위기에 찾아오면 소액 투자자는 포지션을 늘리는 반면 고래와 기관은 탈출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문장 중간마다 삽입된 역재분배(reverse distribution)라라는 표현은 논쟁적 함의를 숨기지 않았다. BIS는 탈중앙 자산이 전통 금융과 연결되면 충격이 증폭될 수 있음을 경고하며, 스테이블코인과 실물자산 토큰화 시장이 임계 질량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격리벽이 무너지면 전이 감염이 시작된다는 은유다.
한편 BIS가 주도하는 CBDC 실험 ‘mBridge’는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의 국경 간 결제를 실증한다. 비트코인과 같은 탈중앙화 자산이 야생이라면, CBDC는 울타리 안의 목장으로 설계된다. BIS는 블록체인을 배척하기보다 가이드를 내리고 중앙집중적 신뢰 메커니즘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제도권을 확장하려 한다. 통제는 위험 완화라는 명분뿐 아니라 통화 정책이라는 기득권 유지를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화폐 공급을 통해 매크로경제를 조정하던 중앙은행은 탈중앙화 자산이 확산될수록 지렛대가 짧아진다. BIS는 블록체인을 규율함으로써 통화 주권에 난입할 변수를 최소화하고 위기 시 최종 보스로서의 권위를 유지한다. 어느 조직도 스스로를 시대착오적 장식품으로 만들 수 있는 유토피아적 실험을 방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술적 대안, 사회적 담론, 그리고
탈중앙화 기술 진영에서는 기술적 장치로 위험을 봉합할 수 있다는 낙관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다중서명 지갑, 형식 검증, 탈중앙 거래소의 자동 시장 조성 알고리즘, 인터체인 감사 로깅 시스템 등은 매 분기마다 업그레이드를 거듭한다. 온체인 거버넌스 투표가 이사회처럼 작동하고, 예치증명 기반 프로토콜은 스테이킹 참여자에게 검증 보상을 나누며 보안 비용을 분산한다.
그러나 기술적 진화가 시스템적 리스크를 완전히 상쇄할 것이란 믿음은 인간 심리라는 변수를 과소평가하는 부분이 있다. 탐욕은 코드를 우회하고, 공포는 스마트계약을 우발적 연쇄 청산으로 몰아간다. 2022년 루나 사태가 증명했듯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은 설계 문서 안에서는 완벽해 보였지만 오너 리스크가 숨어 있었고 결국 극단적 매도 압력 앞에서 고정환율 방어 메커니즘은 자기파괴적 매도 루프를 야기했다.
기술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거버넌스, 규제, 사회적 합의가 병행돼야 한다. 블록체인 규범을 제도권에 접목하더라도 탈중앙화 원칙을 온전히 살릴 방법은 존재한다. 영지식 증명 기반 KYC, 프라이버시 강화형 CBDC, 투명한 오픈소스 코드 감사 등이 그 가능성이 될 수 있다. 중앙은행이 만드는 공공 인프라와 민간이 구축한 분산 프로토콜이 상호 견제와 협업으로 균형을 맞추면 기술과 제도는 상호 배타적일 필요가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시스템을 지배하느냐가 아니라, 시스템이 공동체 전체에 어떠한 편익과 위험을 배분하느냐다. 블록체인의 다음 단계는 투기적 자본 유치에서 벗어나 사회적 효용을 입증해야 하며, BIS의 다음 보고서는 공포보다 협력이라는 단어가 증가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권력 추구와 기술의 진보가 충돌하지 않고 접합되는 순간, 탈중앙화의 낭만은 데이터베이스 속 난수 문자열 이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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