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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확률, 그리고 11,000퍼센트의 진실
애초에 10,000 달러를 1,100,000 달러로 만든 1987년의 기록은 숫자보다 이야기로 유명해졌다. 블랙 먼데이가 터지기 전후로 변동성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고, 통화·채권·지수선물은 하루 만에 호가 단위가 다시 쓰일 만큼 흔들렸다. 래리 윌리엄스는 그 파고를 계절성과 거래량이라는 두 개의 단순 지표로 계산해 미리 잡아탄 뒤 버텼다. 그가 개최한 세미나 녹취록을 보면 “나는 숫자를 구경하러 온 게 아니다. 숫자가 말하는 패턴을 확인하러 왔다”는 대목이 있다.
누구는 이를 운이라 부르고 누구는 이를 드문 실력이라고 부른다. 두 해 전에 그가 세웠던 방향성 추종 모델은 손절 → 추적손절 → 익절이라는 고정 삼단계였고, 그 구조에 놀랄 만한 신기술이나 기법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11,000퍼센트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우연과 통제의 교차점. 라스베이거스식 확률 게임에서 전략가가 테이블의 흐름을 읽어내는 순간과 유사하다. 도박에서 영원히 앉아 있으면 결국 파산하듯이 시장에서도 한 자리에만 머물면 안 된다. 1987년은 변동성이 극단까지 솟구친 해였고, 실력은 그 물결에 올라탈 준비 태세였을 뿐, 파도를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투자자가 파도가 왔을 때 허겁지겁 뛰어들거나 겁내어 기회를 놓치는 사이, 그는 규칙을 따르며 이미 배를 띄웠다. 운은 그 배 아래 밀려온 해일이었고 실력은 돛줄을 단단히 묶어 둔 손길이었다.
성공의 핵심 요소, 리스크 관리와 인간 심리
성공 후 래리는 “트레이딩은 흥미를 느끼는 순간 실패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재미는 뇌 속 도파민을 자극하고 도파민은 승부를 더 걸라고 재촉한다. 그 재촉을 인간은 곧잘 받아들인다. 그래서 매매 기록은 감정의 빛깔이 먼저 묻는다. 백테스트로 단순 전략을 돌려보면 화려한 지표 합창보다 파라미터를 최소화한 구조가 더 견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변수는 적을수록 감정의 침투 경로를 막는다. 마크 더글라스가 ‘확률적 사고’라는 말로 정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손절 폭이 고정돼 있으면 패배가 작아지고, 패배가 작아지면 공포는 작동할 여지를 잃는다. 또한 승리 금액을 사전 고정해 두면 탐욕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사라진다.
리스크 관리의 정석은 확률을 수용하는 태도다. 매수 버튼을 누른 순간 이미 결과는 확률분포 안에서 결정됐고 인간은 그 결정을 수정할 수 없다. 그 이후 그의 자산 규모는 대회처럼 가파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붕괴하지 않았다. 계좌가 조용히 움직이는 동안 그는 책을 쓰고, 딸의 트레이딩에 조언을 주고, 강단에서 ‘지루함은 최고의 안전장치’라고 말했다. 오만이었을까. 만약 오만이라면 그는 다시 한번 대회에 나가 화려한 퍼포먼스를 증명하려 했을 것이다. 대신 그는 시장에 머무는 법, 즉 생존법을 가르쳤다. 오만 대신 겸허가, 재현 대신 회상을 택했다. 성공이 재현되지 않는 이유를 그 누구보다 먼저 인정한 사람은 다름 아닌 본인이었다. 인정은 심리적 부채를 없애고 부채가 사라진 자리에는 다음 전략을 실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는 그렇게 리스크 관리는 기교가 아니라 태도라는 사실을 몸소 실천했다.
오늘날 투자자에게 보내는 메시지
이제 오늘날 화면 앞의 투자자에게 시계를 돌려보자. 모바일 앱은 초 단위로 계좌잔고를 울리고 커뮤니티는 이번 주 급등 테마를 실시간으로 속삭인다. 파고는 어디에나 있다. 문제는 파고를 기다릴 의자와 돛줄을 묶을 의지가 있는가다. 그 방법은 이렇다. 첫째, 전략을 하나만 정하고 최소 수십 번의 거래를 거칠 때까지 수정하지 않는다. 둘째, 손절·익절·재진입 등 가격을 정확한 숫자로 기록한다. 셋째, 매매 일지에 시장 해석뿐 아니라 현재 심정이 어떤지 감정을 함께 기록한다. 흥분, 초조, 무감각, 환희 같은 단어가 떠오르면 빨간색으로 표시한다. 그 감정이 잦아들고 시시해서 재미 없어질 때까지 포지션 크기를 줄인다. 넷째, 통계 없는 개선은 모두 착각이라고 가정한다. 데이터 없이 전략을 바꾸는 순간,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기 시작한다.
시장은 앞으로도 블랙 먼데이 급의 변동성을 다시 연출할 것이다. 그 시점은 쉽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다음 해일이 올 때에 대비할 수 있게 절저히 돛을 세워 두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래리는 해일 위에서 불멸하지 못했지만 침몰도 피했다. 남은 것은 생존의 기술이다. 생존은 영웅담이 아니며 지루한 절차다. 그러나 절차가 쌓이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오래 살아남은 사람에게 운은 다시 찾아온다. 그때가 되면 돛줄을 묶어 둔 손이 그 실력을 증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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