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교양
스펀지 같은 어린 아이의 뇌붉게 물드는 노을을 보는 아이가 호기심에 가득 차 질문을 퍼붓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왜 하늘은 붉어지는가, 구름은 어디로 가는가, 태양은 언제까지 뜨거운가. 아이의 뇌는 짧은 순간에 스펀지처럼 정보를 흡수하고 또 흘려보낸다. 마치 빗속에서 종이컵을 들고 서 있으면 물이 금세 넘치듯이 아이의 뇌 안에는 수많은 시냅스 연결이 동시에 폭발해 정리 없이 쌓인다. 학자들은 이 현상을 두고 시냅스 가지치기 전 단계라고 부른다.뇌가 모든 자극을 빠르게 잡아채는 덕에 아이는 새로운 단어나 개념을 놀라울 정도로 쉽게 배운다. 하지만 그만큼 유지하기도 힘들다. 발가락으로 종이비행기를 접는 법을 익혔다고 해도 며칠 뒤에는 완벽히 잊어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어른들은 이 과정을 그저 어린아이니까라는..
반짝이는 음식? 식용 금의 세계금이라는 금속은 인류가 발견한 초창기부터 매혹의 상징이었다. 고대 사회에서 금은 단순한 화폐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때로는 태양을 닮은 빛깔로 영원성과 권위를 나타냈고 때로는 신과 소통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왕관이나 성궤, 귀걸이와 반지처럼 역사 속 문화유산을 살펴보면 황금은 어느 곳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이런 역사를 떠올릴 때 식탁에서 금을 맛볼 수 있다는 발상은 놀라움을 준다. 미묘하게 빛나는 금박이 뿌려진 디저트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 진귀한 장면을 오래 기억하게 된다. 초콜릿 표면을 감싸는 얇은 금박 혹은 시럽 위에 살짝 흩뿌려진 금가루가 만들어내는 비주얼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누군가에게는 과시적일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상징적 기쁨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손잡이 전쟁?병원의 긴 복도를 상상해본다. 매끄러운 바닥 위에 투명하게 닦인 유리창, 곳곳을 가로지르는 소독약 냄새가 뒤섞인 공기. 감염과의 전쟁이 일상인 곳에서 가장 자주 눈길이 가는 물건은 의외로 문의 손잡이다. 매시간 수도 없이 돌아가는 문고리에 얼마나 많은 손이 닿는지 모른다. 감염 전파가 이 표면에서 수도 없이 벌어졌을 것이다. 실제로 병원 내에서의 접촉성 감염 비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흔들던 시기에 주된 감염 경로가 공기 중 비말뿐 아니라 표면 접촉이라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손잡이나 침대 레일, 의자 팔걸이 등이 감염의 온상이 될 수 있음이 새삼 주목받았다. 이때 조명을 받은 항균 소재가 있었다. 바로 구리이다. 구리는 오래전부터 청동기 시대라는 말이 생..
시간의 궤적을 가두는 모래, 혹은 그 이상하루를 쉼 없이 쪼개는 디지털 시계 옆에 작은 모래시계를 두는 일은 이제 낭만적 취향처럼 보인다. 손안에 스마트폰이 들어온 뒤로 분침과 초침도 잘 안 보는데 하물며 모래시계라니.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래시계는 단순한 골동품이 아니라 독특한 물리적 매개체로서 가치가 높다. 투명한 유리관 안을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가루 입자는 사실 천연 모래보다 균일하게 가공된 유리 비드나 금속 분말일 때가 많다. 균등한 흐름을 위해 습기를 흡수하기 쉬운 자연 모래 대신 정교하게 처리한 인공 입자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고대부터 이어온 전통이라 해서 고집스럽게 사막이나 광산에서 채취한 모래만 담아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흥미롭다.사람들은 왜 모래시계에 정교함을 요구했을까. 항해 ..
위인들도 인정한 걷기의 특별한 효과바쁜 일상 속에서 가볍게 걷고 싶은 충동이 찾아올 때가 있다. 출근길 지하철 대신 한 정거장 정도 미리 내려 걷고 싶어지는 순간, 혹은 머릿속이 어지러울 때 휴대전화를 잠시 무시하고 바깥 공기를 마시며 한 바퀴 돌고 싶을 때. 이 사소한 선택이 삶의 방향을 바꿀 만한 크고 작은 ‘통찰’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흥미롭다.걷기는 몸을 움직인다는 기초적인 정의에서 벗어나 머릿속을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등 뇌를 활성화한다. 몸이 다소 자동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숨 가쁘지 않기에 생각이 흘러가도록 열어두는 여백이 생기기 때문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산책 학파(페리파토스)에서 걸으며 강의를 했다는 사실이나 독일 철학자 칸트가 매일 같은 코스를 느긋하게 걸으며 사유를 정련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