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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춤추고 함께 두려워하는 이유
사람은 종종 이성을 뛰어넘는 집단적 행동을 펼쳐 왔다.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예시 중 하나가 바로 1518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벌어진 ‘춤 전염병’이다. 수십, 수백 명이 동시에 마치 악령에 홀린 듯 멈추지 않고 춤을 춰 대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심장마비, 탈진, 심각한 부상에 이르기까지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지만, 누구도 쉽게 설명하지 못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신의 분노로 보기도 했고, 독성 곰팡이에 중독된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 심리학은 이 기현상을 두고 ‘집단적 환각’ 혹은 ‘집단 히스테리아’라는 이름으로 분석한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이런 일이 벌어질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2011년 미국 뉴욕주의 리로이(LeRoy)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뚜렛 증후군 유사 사건, 2016년 페루 타라포토 지역의 악령 소동, 2019년 코스타리카 한 학교에서의 집단 기절 사례 등은 역사 속 춤 전염병이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형임을 보여 준다. 하지만 왜 어떤 시점에는 이러한 집단적 환각이 터져 나오고, 또 어떤 때는 조용히 스쳐 지나가는 것일까. 인간이 어째서 기계처럼 똑같이 불안과 두려움을 흡수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심리학적, 사회학적, 그리고 문화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탓이다.
역사를 관통하는 춤 전염병
“춤 전염병”이라 불리는 1518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사건은 흔히 교과서적인 집단 히스테리아 사례로 거론된다. 지방 기록과 의료 문서를 뒤져 보면, 한 여성이 길거리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고, 이를 본 사람들이 연달아 비슷한 행동을 보였다고 전한다. 당대 사람들은 “악령에 씌었다”거나, “성 비투스(Saint Vitus)의 저주를 받았다”는 식으로 표출했다. 일부는 맥각(Ergot)이라는 곰팡이 독소 섭취로 인한 환각을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춤을 도저히 멈추지 못했다는 점, 시간이 상당히 길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식중독이나 종교적 의식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았다.
현대 학자들은 이를 ‘집단 심인성 질환(Mass Psychogenic Illness, MPI)’의 사례로 본다. 미국심리학회(APA) 자료에 따르면,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 속에서 어떤 사람이 특이 증상을 보이면 주변인도 무의식적으로 이를 따라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비슷한 맥락에서 1962년 탄자니아에서 벌어진 ‘웃음 전염병’도 자주 인용된다. 학생 몇 명이 멈출 수 없는 웃음을 터뜨린 뒤, 이 현상이 학교에서 마을로까지 번지며 큰 혼란이 빚어졌다. 이미 20세기 중반에도 이 현상을 “집단적 환각” 또는 “집단적 히스테리”로 보는 시선이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뉴욕 투렛 증후군 유사 사건 등 또 다른 사례들이 학계와 대중의 관심을 모았다.
리로이 고등학교 사건을 예로 들면, 여학생 12명이 갑작스러운 틱(tics) 증상, 발작, 욕설 등 투렛 증후군을 닮은 이상 행동을 보였다. 의료진이 환경 오염, 바이러스 감염 등을 샅샅이 조사했지만 명확한 원인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전문의들은 이것이 강한 스트레스와 불안이 결합된 집단적 환각 혹은 집단 심인성 질환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사건은 SNS와 미디어로 인해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전파된 결과이기도 했다.
거울 신경 세포? 노시보 효과? 왜 집단은 함께 흔들리는가
개인의 신체적·심리적 반응이 주변에 영향을 주는 데에는 다양한 이론적 배경이 있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거울 신경세포(mirror neurons)’다. 뇌 과학 연구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행동과 감정을 관찰했을 때 마치 자기 몸이 직접 행동하는 것처럼 반응하는 신경세포가 존재한다. 누군가 하품하는 모습을 보면 따라 하품이 나오는 현상이 대표적 예시다. 이 무의식적 모방은 불안과 공포 같은 부정적 감정에도 적용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론이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다. 플라시보 효과(가짜 약을 복용해도 효과가 나는 현상)의 반대 개념으로, “이 물질은 위험하다”라는 믿음이 생기면 실제로 신체적 통증이나 이상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1980년대 초,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중금속 중독이 의심된다는 소문이 한 지역사회에 퍼지자 수십 명이 두통과 구토를 호소했는데, 실험 결과 독성 물질은 거의 검출되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공포가 만든 허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즉, 노시보 효과가 당시 집단적 불안을 촉발하고 증폭시킨 사례로 꼽힌다.
중세 유럽이나 탄자니아, 뉴욕 등 지역과 시기를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단서는 바로 사회적 불안이다. 특정 시점에 집단적으로 스트레스가 폭발하면, 누군가가 보여 주는 이상 행동이 거울 신경세포 작용과 노시보 효과를 통해 주변으로 급속히 확산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게 발생한 집단적 환각 현상은 한 번 불이 붙으면 꺼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현대사회의 또 다른 장작,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
집단적 환각이나 히스테리아가 오늘날 특별한 사건처럼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미디어와 SNS의 영향력 때문이다. 대중은 예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뉴스를 접하고, 또 다른 사람이 느끼는 공포나 불안을 간접 체험한다. 리로이 고등학교 사례에서 보듯, 지역 뉴스가 반복해서 틱 증상을 조명하자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안감이 극도로 고조됐다. 나도 혹시 저 증상이 생기는 게 아닐까 싶은 불안은 그대로 노시보 효과를 자극한다. 결과적으로 기존에 감춰졌던 또는 아주 미약했던 증상들이 더 쉽게 표면화된다.
여기서 논쟁이 생긴다. 어떤 이는 “대중은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미디어가 불필요한 공포를 조장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다른 이는 “그래도 원인 불명의 사건은 신속히 알리는 편이 낫다. 그래야 과학자나 전문가가 빨리 개입해 상황을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찬성과 반대가 교차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나친 공포나 불신이 누적되면, 실제로 의학적인 원인이 없더라도 집단적 환각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이 갈림길에 서는 순간
결국 개인의 스트레스나 트라우마가 주변 사람과 무관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계기에 의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결코 기계적이지 않다. 똑같은 조건이 주어져도 누군가는 흔들리고, 누군가는 휘둘리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비판적 사고가 강하거나, 심리적 탄력성이 높으면 집단적 불안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과학자들이 현장을 즉시 조사하고, 의학적·환경적 위험이 없다고 분명히 밝혀 주는 것 역시 중요한 방어 기제가 된다.
실제로 코스타리카 기절 전염 사건 중 일부 학교에서는 의사와 심리학자가 긴급 투입된 뒤 유해 물질이 발견되지 않았고, 심리적 스트레스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린 뒤부터 상황이 진정됐다. 반면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 악령 소문이 퍼졌을 때는 정식 조사가 지연되고 지역사회가 미신적으로만 접근한 탓에, 오랫동안 공포가 확산되었다고 전해진다. 막상 일이 닥치면 그 경계를 파악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확실한 점 하나는 집단적 환각이 일어나려면 그만큼 강력한 공포나 불안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 현상을 방치하면, 어떤 모습으로 재현될지 모른다. 백신 음모론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실제로 백신을 맞고 이상 증세가 발생한다는 노시보 효과가 드러날 수 있다. 반대로 집단적 심리 현상을 이해하고, 객관적 조사와 전문적 대처가 조화를 이룬다면, 공포 속에서 맹목적으로 춤추거나 쓰러지는 상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것이 거울 신경세포에 매여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비판적 사고를 통해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인간 존재의 역설이다.
신뢰할 수 있는 공식 기구들의 데이터와 연구 결과는 이러한 사건이 실제로 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하게 관찰된다는 점을 입증한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 세계보건기구(WHO), 미국심리학회(APA) 등은 꾸준히 집단적 스트레스, 대중적 공포, 유사 의료 현상 등을 추적하며 보고서를 내왔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핵심은 “속단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다. 눈앞에서 이상 행동이 벌어진다고 무조건 초자연적 현상으로 결론 지어서는 안 되고, 반대로 심리적 요인만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도 안 된다. 정확한 조사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실에 가까워진다.
오늘날에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면 대중은 즉시 스마트폰을 열어 촬영하고, SNS로 공유한다. 한편에서는 “그건 피해야 할 독한 증상이다”, “이건 특정 세력이 퍼뜨리는 음모다”, “악령이 돌아다니는 징조다” 같은 온갖 해석이 난무한다. 이런 뒤엉킴 속에서 집단적 환각은 마치 불에 기름을 붓듯이 자라날 수도, 반대로 사회가 현명하게 대응한다면 초기 단계에서 쉽게 진정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집단적 환각은 더 이상 중세의 전설이 아니라, 현대 인류가 공존해야 할 심리적·사회적 과제이자, 비판적 시선으로 이해해야 할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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