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선물 트레이더

12월의 사는 이야기

잊어버린 과거

12월의 어느 휴가날이다. 벌써 자대에 온지도 한달이 넘었다.


갖가지 역경을 이겨내고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데, 그 보다 더 어려운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는 것은 고통 그 자체라던 불교의 메인이 되는 주장이 떠오른다. 영원이 죽어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불교의 교리가 왠지 이해될 것만 같은 나날들이다. 


전임자 분도 작년 이맘 때 즈음 갖가지 어려움을 호소하던 일기 비슷한 그런 글을 썼었는데, 왠지 어떤 마음인지 이해갈 것 같다. 


작년 이맘 때 즈음엔 세상을 다 이해한 것만 같고 하루하루가 즐겁고 호기심 가득하고 대화도 나눌 때면 사람들을 웃겨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가득했었다. 환경만 바뀌었을 뿐인데 이렇게나 다른 나와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이 꽤나 슬프다. 하루하루 버티며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라는 일개의 일개미가 된 것만 같다.


들은 이야기들 중에 기억나느 이야기라면 뭐가 있을까. "장교는 멋이 있어야 한다"는 것 정도? 사실 이 이야기도 꽤나 마음에 안든다. 멋이 있어봐야 얼마나 멋있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애초에 멋있는 사람이었다면 저런 언급 자체를 안했을 것... 아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테니까.


지휘관의 책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부하들에게 일을 시켜놓고 잘 안될 경우 부하 탓을 하게 되는 경우를 처음으로 목격하기도 했었다. 아마 본인 스스로 그 것을 감당할만한 심적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리가 높을수록 할 일은 많고 시간에도 쫓기게 되어 여유가 없어지기 마련이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덕목으로는,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내가"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지휘관들에게는 그럴만한 심적 여유를 누릴만한 환경이 제공되지 않는다. 정도.. 때문에 작은 스트레스에도 화를 내고 부하들을 닦달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실 하루 동안 하는 일 자체는 별거 없는데 하루 종일 엄청나게 바쁘다. 같은 부대 내에 근무하는 서로가 서로를 쫒아 다니고 쫒김을 당한다. 업무 프로세스 자체가 스트레스를 유발하도록 되어 있달까.. 장기적으로 군에 인재들을 많이 남겨두고 싶다면 언젠가는 해결해야할 숙제일 듯하다. 통계적으로도 육해공을 막론하고 사관학교 생도들도 5년차 전역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해사의 경우 몇 년 전만 해도 1.4%였던 전역률이 20%대로 훌쩍 뛰었다. 부족한 복지보다도 일 자체가 스트레스 덜 받도록 프레임을 바꾸어야하지 않을까.


즐거운 일은 글쎄 뭐가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애초에 즐겁고 싶지가 않다. 퇴근마저 즐겁지가 않다. 다음날 다시 출근해야 하니까.. 잠만 안자고 살 수 있다면 차라리 퇴근을 안하고 싶다. 어차피 출근해서 일할 거 퇴근해봐야 해야 할 일이 쌓이기만 한다. 즐길 수 있는 부분은 어디에 있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분명 즐거워서 군복무를 오래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나쁘게 말하면 "소름"이고 좋게말하면 "와 대단하다" 정도..


그래도 좋게 표현하자면, 나라 지키는 일은 결코 쉬운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작은 바람이 있다면 누구나 나라를 지키고 싶어하는 우리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는 바람이다. 나라 지키는 거 정말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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